주간동아 764

2010.11.29

단호한 응징 없으면 北 ‘살라미 전술’에 또 당한다

북한 끊임없는 ‘공갈과 타격’ 악습 끊어내는 힘 보여줘야

  • 이정훈 동아일보 논설위원 hoon@donga.com

    입력2010-11-29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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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호한 응징 없으면 北 ‘살라미 전술’에 또 당한다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를 출발해 앞바다에서 전술 기동훈련을 하는 윤영하함.

    북한은 왜? 북한이 연평도로 170여 발의 포탄을 날린 이유를 찾을 수만 있다면 북한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모든 사건이 그렇듯 여기에도 역사의 더께와 지정학(地政學) 문제가 첨부돼 있으니, 하나씩 벗겨가며 살펴보기로 하자.

    서해 5도는 한마디로 북한의 코앞에 떠 있는 초대형 다용도의 ‘불침(不沈)항모’라 할 수 있다. 백령도에서 평양까지 직선거리는 150여km에 불과해, 사거리 180km의 현무-1이나 300km인 현무-2 미사일을 배치하면 평양을 비롯한 북한 핵심 지역을 모두 공격할 수 있다. 또 백령도에서는 남포항, 연평도에서는 해주항에 드나드는 배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북한 움직임을 살피는 훌륭한 정탐기지이기도 하다. 북한에 서해 5도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서해 5도 앞에 유엔이 설정한 북방한계선(NLL)이 있다. 북한은 1953년 서명한 정전협정에서 서해 5도에 대한 유엔의 관할을 인정했기에 정전협정을 깨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서해 5도를 탈취할 수가 없다. 1953년 이후 북한은 황해도 해안을 봉쇄하고 있는 이 선을 돌파한 적이 없다.

    NLL 부인 툭하면 침범하고 무력도발

    6·25전쟁 중 유엔군은 평안북도의 섬까지 아우를 만큼 완벽하게 서해를 장악했다. 이런 상태에서 정전을 논의하게 되자 북한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 북위 38도선 이북의 섬은 북한에 돌려주고, 38도선 이남의 섬만 영유하겠다고 했다. 북한은 이 제의를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결정에 강력히 반발하며 38선 이북 섬을 다시 장악하고자 했다. 유엔은 어렵게 성사시킨 정전협정이 깨질 것을 우려해 한국인이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선을 그었다. 그것이 NLL이다. 이 시기의 NLL은 북한을 보호해주는 구실을 했기에 북한은 이 선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북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살아나자 NLL을 봉쇄선으로 보고 돌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1973년 10월부터 11월 사이 북한 군함이 43회나 NLL을 넘었다. 정전협정은 선제사격을 금지한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사격은 하지 않고 NLL을 넘어왔다. 이에 우리도 고속정으로 들이받기 공격을 퍼부으며 정전협정을 지키고, NLL을 지켜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북한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다시 NLL을 침범했다. 이때도 우리는 들이받기 작전으로 대응했는데 1999년 6월 15일 예외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 고속정이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에 들이받기 공격을 가하자, 북한 경비정이 선제사격을 한 것이다. 이에 우리가 대응사격을 해, 북 경비정이 격침됐다(제1차 연평해전).

    그 후로도 북한 군함은 NLL을 넘어오는 도발을 계속했으나 조준사격을 자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2년(제2차 연평해전)과 2009년(대청해전)에는 선제사격을 해 양측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올해 3월 26일 연어급 잠수정을 동원해 천안함을 격침하는 전대미문의 도발을 했다. 천안함 사건에서는 어뢰를 사용했으니 이는 중대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천안함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북한은 NLL이 정전협정에 따라 그어진 것이 아니라 유엔이 일방적으로 그은 것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은 정전협정 직후 상당 기간 이 선을 지켰고, 동구권의 붕괴로 고립된 1992년에는 이 선을 인정하는 남북한화해불가침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때그때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제1차 연평해전 이후 1999년 9월 2일 북한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그린 해상군사분계선을 발표하며 NLL을 대체하고자 했다. 이 선은 서해 5도 훨씬 남쪽으로 그어져 있다. 그러나 정전협정을 어겼다는 지적을 피하려는 듯 북한은 서해 5도에 대한 유엔 관할을 인정했다. 서해 5도는 유엔 관할이나 그 주변 바다는 북한 것이라는 주장이지만 이는 억지다. 바다에 관한 국제조약인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섬은 12해리의 영해를 가질 수 있다.

    어깃장에 가까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 바로 연평도 사태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서남쪽 바다로 포사격 연습을 하기 전 우리 군은 북한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유엔해양법협약대로 명백히 우리 영해로 사격을 한 것인데, 북한은 그 바다가 자기들 소유라며 “우리(북한) 영해로 사격을 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전통문을 보내왔다. 인정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이므로 23일 해병대는 예정대로 두 차례 사격 연습을 했다. 우리가 오후 사격 연습을 끝낸 지 9분 뒤 북한은 돌연 연평도를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경고대로 좌시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북한의 행동에는 일관성이 없다. 지난 8월 해병대는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비슷한 사격훈련을 했다. 그때도 북한은 유사한 전통문을 보내왔다. 그리고 우리가 사격을 끝내자 북한은 바다를 향해 무차별로 사격을 했다. 8월에는 바다로 쐈지만 11월에는 육지(연평도)로 쏘는 ‘그때그때 다른’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전술은 우리를 지치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연평도 주민들이 위험한 곳이 싫다며 육지로 떠나고, 연평도에 배치된 해병대 장병들도 사지(死地) 근무라며 기피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서해 5도가 텅 비면 북한은 눈엣가시를 없애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전쟁 피하고 공갈효과 극대화 노렸을 가능성

    공갈과 타격을 병행하는 것은 전형적인 북한의 전술이다. 지난해 5월 2차 핵실험을 한 북한은 올해 11월에는 미국 핵과학자를 불러 원심분리기를 공개했다. 핵실험이 타격이라면, 원심분리기 공개는 공갈이다. 그러나 북한 전술에는 한계와 속임수도 보인다.

    지난해 북한의 2차 핵실험은 ‘짝퉁’일 가능성이 높다. TNT 2.5kt에 약간의 핵물질을 섞어 터뜨려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퍼지게 한 뒤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공갈을 쳤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11월 북한이 미국 과학자에게 보여준 원심분리기도 성능이 미달하는 짝퉁일 수 있다. 원심분리기는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170여 발만 쏘고 사격을 멈췄다는 것은 이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공갈을 무기로 쓰겠다는 뜻이다.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전쟁은 피하고 공갈 효과를 극대화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핵으로 공갈을 치고, 한국을 상대로는 전쟁 도발 위기로 공갈을 치는 것이다. 이 공갈이 통하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다시 퍼주기를 한다. 미국은 북한과 평화조약을 맺어 북한 권력을 인정하고, 북한은 이를 토대로 더욱 한국을 협박해 주체사상으로의 통일을 이루겠다는 속셈이다.

    이탈리아 전통 햄으로 ‘살라미(salami)’가 있다. 고기를 공기 중 발효시켜 만든 것인데, 이탈리아인들은 필요할 때마다 칼로 조금씩 잘라 먹는다. 상대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양보를 받아내다 결국 다 받아내는 것을 가리켜 ‘살라미 전술’이라 한다. 북한은 ‘막장’(전쟁)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상대를 굴복시키는 벼랑 끝 전술과, 상대를 조금씩 물러서게 해 결국은 다 삼키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질척질척하고 끈적끈적한 북한의 도발을 없애려면 단호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게 안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적극적 억제를 주장했으니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짝퉁 핵무기와 의지만 보여준 북한의 전쟁 수행 능력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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