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4

2010.11.29

까막눈, 레이더 먹통, 축소 응사 80발만 쏜 이유 있었다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작동 안 돼 … 옹색한 변명에 의혹만 커가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0-11-26 1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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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막눈, 레이더 먹통, 축소 응사 80발만 쏜 이유 있었다

    11월 23일 북한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이홍기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북한의 첫 포격 도발이 있은 후 100발 이상을 난사할 동안 해병대 연평 포부대는 13분 동안 응사를 하지 않고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북한이 170여 발을 쏠 때까지 우리는 1분에 6발까지 자동으로 쏠 수 있는 K-9이라는 세계적 명품 자주포를 가지고도 왜 80발밖에 쏘지 않았나.”

    “북한 쪽도 80발을 맞아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고 했는데 왜 피해상을 빨리 공개하지 않나.”

    북한 해안포의 연평도 포사격 도발 이후 일반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의아해하는 부분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연일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과 군 당국에 따져 물은 것도 이 부분이었다. 이에 대한 김 전 장관과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의 답변이나 해명을 모아보면 각각 이렇다.

    “북한의 첫 포격을 받았을 때는 우리 K-9 자주포가 막 일반 사격훈련을 마쳤던 때라 일단 북한의 공격을 피하느라 시간이 걸렸고, 이후에는 자주포의 방향을 북쪽으로 틀고 북한 대포진지의 정확한 좌표를 잡는 데 또한 시간이 걸렸다. 13분이면 짧은 시간이다. 잘 훈련된 부대만이 할 수 있다. 현실은 스타크래프트 게임 같지 않다.”



    포병 출신들 “해병 포부대 이해할 수 없다”

    “북한군이 170여 발을 쐈지만 연평도 내륙에 떨어진 것은 80발이기 때문에 한국군의 대응사격 80발은 교전수칙상의 비례성을 갖춘 셈이다. 현장 지휘관이 적정하게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적의 포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포탄을 갈아 끼우며 대응사격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대응사격 80발은 당시 상황에서 모든 화력을 쏟아낸 것이다. K-9 자주포의 화력이 북한 측 해안포의 10배나 되기 때문에 북측 해안포 기지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적의 피해 상황에 대해서는 국방부 내에 자체 TF팀을 만들어 확인하겠다. 현재 북측 기지 위에 구름이 많이 끼어 있어 위성 판독이 힘들다.”

    그러나 국방부와 합참의 계속된 해명에도 새로운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온다. 북한의 포격 도발 당시 해병대 연평 포부대가 대포병(상대방 포진지에 대한 사격을 담당하는 업무) 야전예규를 어겼다는 지적과 함께, 북한 측 해안포의 발사궤적(좌표)을 추적하는 레이더 시스템(AN/TPQ-37)도 원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 상태. 최근까지 대포병 K-9 자주포 사격지휘관을 지냈거나 포병으로 있었던 예비역 장교와 사병들은 “북한군의 공격에 대한 연평도 해병 포부대의 응사과정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먼저 늑장 대응 포격에 대한 부분.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가한 북한의 해안포부대는 인민군 제4군단 직할 또는 예하 제28보병사단 포병연대 소속으로 옹진반도 남단의 개머리 포진지와 개머리와 연평도 사이에 위치한 무도 진지로 밝혀졌다. 개머리 진지는 연평도에서 약 13km, 무도 진지는 약 7km 떨어져 있다. 이번 포격에는 122mm급 견인포(사거리 24km) 또는 76.2mm급 해안포(사거리 12km) 그리고 다인명살상용 로켓포탄인 122m 방사포(사거리 20km)가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사포를 제외한 해안포는 평상시에는 갱도화된 진지에 있는데, 사용할 때는 레일을 이용해 포상(포진지)이 있는 곳까지 끌고 나온 후 포문을 열고 발사한다.

    11월 23일 북한군은 무도 진지에서 오후 2시 34분부터 46분까지 60~80발의 포탄을 연평도 포진지와 민간인 거주지에 무차별적으로 퍼부었다. 우리 군은 북한의 1차 공격이 끝나고 난 1분 후인 오후 2시 47분부터 59분까지 약 30발의 자주포 포탄을 무도 진지(막사)를 향해 쏘았다. 왜 13분이나 걸렸느냐는 질문에 국방부와 합참은 “사격훈련이 끝난 지 얼마 안 됐고 자주포의 방향을 틀고 어느 곳에 쐈는지 북한군 진지 좌표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으며, 13분이면 잘하는 포대”라고 주장했다.

    까막눈, 레이더 먹통, 축소 응사 80발만 쏜 이유 있었다
    해안포 추적 레이더 제 기능 못해

    하지만 육군의 대포병 야전예규 ‘즉각 사격 준비태세’에 대한 규정을 보면 연평 해병 포부대 같은 GOP 지역의 대포병 포부대는 적이 포문을 열면 5분 이내에 병력을 전개해 사격준비를 완료하고, 포탄이 날아오는 순간 바로 대응사격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미리 대포병 추적 레이더를 가동시킨 상태였다면 포탄이 10km를 날아오는 데 1분가량 걸리기 때문에 첫 포성이 울린 직후 응사가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야전예규로 보면 해병대 연평 포부대가 규정을 어긴 셈이다. 또 규정대로라면 연평 포부대의 K-9 자주포는 아무리 일반 사격훈련 중이었더라도 북한의 해안포 기지의 포문이 열리는 순간, 훈련을 접고 즉각 사격 준비태세에 들어갔어야 했다.

    더욱이 북한의 해안포는 올 1월 이후 우리 측이 서해 5도에서 훈련할 때마다 포진지 갱도 앞 포문을 열고 발사준비를 하며 으름장을 놓았던 상황. 다시 말해, 이날 해병대 연평 포부대는 훈련에 치중한 나머지 북한 해안포부대의 포문이 열려 있는 것을 전혀 몰랐거나 알았어도 즉각 사격 준비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셈이다. 퇴역 포병들은 “대포병 포부대들은 상대방 포진지가 망원경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정찰비행기와 위성 등 각 정보를 통해 포문이 열려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이번 경우는 북한이 기분이 나쁘면 관행적으로 해안포 갱도 진지의 포문을 열기 때문에 우리가 방심하고 무시했다가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23일 오전 합참은 북한의 방사포 16대가 개머리진지로 이동하고 해안포의 포문이 열린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무시하고 훈련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포병 사격 지휘관 출신 예비역 중위 이모 씨는 “연평 포부대는 무도와 개머리 등 건너편 북한 측의 1000여 문이 넘는 해안포 좌표를 눈 감고도 안다. 다만 1차 사격이 시작된 곳이 개머리인지 무도인지 어느 곳인지를 파악할 수 없었을 뿐인데 사실 대포병 레이더가 포탄이 발사된 위치를 즉각 찾아줘야 했다. 야전예규가 5분 이내 응사를 규정한 것도 이것이 레이더가 포탄 발사 좌표를 찾는 데 걸리는 최대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우리 군의 늑장 대응에는 대포병 레이더 시스템도 한몫을 했다. 포격을 가한 상대방 진지의 좌표를 적어도 5분 내에 찾아 자주포 자동발사장치에 전달해줘야 할 레이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실제로 김 전 장관은 11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의 포사격 당시) 대포병 레이더로 (해안포 위치를) 잡지 못했느냐”는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의 질의에 “처음에는 잡지 못했고 2차 사격 때는 잡았다”고 답변했다. 김 전 장관에 따르면 우리 군은 1차 대응사격을 했을 때 북한이 포를 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채 K-9 자주포에 이미 입력돼 있던 무도 해안포기지로 자동사격을 했고, 2차 대응사격에서야 타격지점을 찾아 정조준을 할 수 있었다는 것. 퇴역 포병들은 이에 대해 “AN/TPQ-37 레이더를 써본 포병이라면 다 알겠지만 정말 문제가 많은 레이더 시스템”이라고 입을 모은다.

    퇴역 포병들에 따르면 연평도 해병 포부대에는 육군 포병여단에서 파견한 AN/TPQ-37 레이더 1개 반이 배치돼 있다. 그러나 이 레이더는 포탄 동시추적 능력이 10개에 불과해 이번처럼 적 1개 대대병력이 연속적으로 포탄을 발사하면 그 절반은 추적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자동발사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 원래는 레이더 시스템이 발사 지점의 좌표를 찾아 그 데이터를 K-9 자주포의 사격통제장치(BTCS)로 넘겨주면 자주포가 자동으로 좌표를 설정하고 그 즉시 발사가 이뤄져야 하지만 현재는 이 두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포맷이 달라 실시간 데이터 공유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전언이다.

    사격지휘 장교 출신 이씨는 “레이더 전산장비 제작업체와 자주포의 BTCS 제작업체가 경쟁 관계라 소스 코드의 공개를 거부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안다. 이 때문에 최근까지 TPQ 레이더 시스템은 레이더가 좌표를 찾아내면 레이더병이 포병 연락병에게 무전을 쳐서 좌표를 불러주고, 포병 사수는 포병 연락병으로부터 받은 좌표를 일일이 손으로 사격통제장치에 입력해야 했다. 이번에도 그러느라고 대응시간이 그렇게 늦어졌을 것”이라고 혀를 찼다.

    K-9 자주포 한 번에 48발 연속 장전 발사

    다음으로는 북한의 공격에 비례해 충분한 대응을 못했다는 부분이다. K-9 자주포는 일반 포와 달리 포탄의 장착과 발사가 자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분당 6발을 연속 발사할 수 있다. 군 당국은 “자주포 6문 중 2문이 북한군의 1차 포격으로 사용 불가능해 4문으로만 쏘기 때문에 80발이면 최대성능을 발휘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K-9 전차포는 북한의 152mm급 해안포탄을 맞아도 파괴되지 않을 만큼 강하게 설계됐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의 말처럼 “참호에 피신해 있다 조용해진 후 공격을 했다”는 것은 상식 밖의 행동이라는 것. 실제로 이번에 자주포 안에 있던 사병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북한군의 공격에 자주포 2대가 대응사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는 군 당국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K-9 자주포 제작사가 당초의 설계 안전성과는 동떨어지게 제품을 만들었다는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퇴역 포병들은 “비록 자주포가 4문이 남았다 해도 30분이 넘는 시간에 80발밖에 쏘지 못했다는 건 자주포를 쏴본 사람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연평도 해병 포부대가 3차례 반격에 소요한 시간은 최대 39분으로, 적어도 30분은 확실히 넘어간다. 군 당국은 이런 의문이 제기되자 “적의 포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포탄을 갈아 끼우며 대응사격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옹색한 변명처럼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자주포는 한 번에 포탄 48발을 연속으로 자동장전하고 발사할 수 있는데, 재장전 없이 자주포 1문에 포탄 48발씩만 30분간 발사해도 4문이 총 192발을 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연속으로 쏘면 포신이 달아 무리가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30분에 48발은 1분에 1.5발씩밖에 쏘지 않은 꼴이므로 K-9 자주포의 분당 최대 발사량 6발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양이다. 더욱이 이번에 한국군의 대응사격은 1차 반격 후 3차례 반격 때까지 중간에 쉬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연속 발사가 힘들다거나 80발이 최대 화력”이라는 군의 변명은 궁색하게 들린다.

    규정만 제대로 지켰어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연일 축소 대응 논란이 빚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퇴역 포병장교는 “교전수칙상 적의 공격에 비례해 2배 이상 공격해야 하는데, 적의 포탄이 쏟아지는 상황이라면 현장지휘관은 열이 받아 숫자고 뭐고 따질 틈 없이 모든 화력을 동원해 응사하게 돼 있다. 최대 화력을 동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 윗선에서 ‘그만 쏘라’는 지시를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1차 포격 4분 후 합참까지 보고가 모두 이뤄졌다는데 이런 경우는 현장지휘관이 자신의 판단으로 대응타격의 양을 결정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이명박 대통령이 진짜로 “확전은 방지하라”는 말을 했는지를 두고 실랑이를 하는 것도 모두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쏜 자주포 80발에 북한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군 당국의 주장은 사실일까. 퇴역 장교와 포병들은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답한다. 1차로 포탄을 쏘고 포문을 닫고 갱도로 숨는 북한 측 해안포대의 성격상 우리가 사격을 시작한 때는 이미 갱도 안 대피소로 모두 몸을 피한 후라는 얘기다. 더욱이 K-9 자주포는 곡선을 그리면 날아가는 곡사포탄이기 때문에 갱도 안에 있는 적에게 직접 타격을 주기는 매우 어렵다(상자기사 참조). 군은 1차 사격이 해안포대가 아니라 부대 건물이 있는 무도 진지의 막사를 목표로 이뤄졌기 때문에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고도로 준비하고 작정한 후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이 부대 건물에 병력을 놓아둘 리 없지 않겠느냐는 게 퇴역 포병들의 설명이다. 피해라고 해봐야 건물 일부가 무너지는 정도일 것이라는 것.

    상황이 이런데도 국방부와 합참 관계자들은 “무도 막사에 있던 북한군도 수십 명이 사상을 입었을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개머리 진지 갱도 안 인민군도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내놓고 있다. 그러고도 정작 북한군 측의 정확한 피해 상황에 대해선 “알아보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는 상태다. 기존 연평해전 사례에서 보듯 북한군의 무전 내용을 감청하거나 실제로 배가 가라앉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북한군이 자신들의 피해를 스스로 말할 리 없다. 결국 추측만 무성한 상황에서 추후에 국방부의 발표가 있더라도 이를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한편, 공대지(空對地) 미사일을 장착한 F-15K 전투기가 북한 측이 1차 포격이 끝난 시점에 연평도 인근 상공까지 갔으면서도 북한의 해안포 기지를 정밀 타격하지 못해 2차 공격을 받았다는 국회 국방위원회의 지적이 있었지만, 이는 “공격받은 무기로 받은 만큼 비례해 2배로 공격한다”는 우리 군의 교전수칙 때문에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국방부는 “‘반드시 공격받은 무기로 대응한다’는 수칙조항에 대한 개정작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북한군 해안포대는 항상 감시대상인데 야전예규를 지키고 레이더만 제대로 작동했더라도 최소한 군 병력의 희생은 막을 수 있었다. 즉각 사격 준비태세가 제대로 돼 있었다면 북한 포탄이 공중에 떠 있던 1분 사이에 경보를 전파하고 노출된 인원들을 엄폐호에 소개시킬 수 있었다. 어쨌든 ‘사전에 감시만 잘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K-9 자주포 사격지휘관 출신 예비역 장교 이씨는 우리 군의 늑장 대응이 못내 아쉬운지 같은 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K-9 자주포와 북한의 해안포

    대포병 레이더와 연동됐다면 초정밀 사격 가능


    까막눈, 레이더 먹통, 축소 응사 80발만 쏜 이유 있었다
    연평도 사태에서 거론된 해안포의 정확한 명칭은 ‘평사포(平射砲)’다. 우리는 이러한 포를 ‘직사포(直射砲)’로 부른다. 평사포(또는 직사포)의 가장 큰 특징은 포탄을 직선에 가깝게 쏜다는 것이다. 직선으로 날아가기에 이 포탄은 멀리 가지 못한다. 하지만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고 단번에 표적을 박살내는 강한 타격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예가 전차포다.

    전차는 30cm 정도의 장갑을 두르고 있어 웬만한 사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이런 적 전차를 한 번에 잡는 것이 아군 전차에 달려 있는 전차포다(물론 적 전차포도 아군 전차를 단번에 박살낼 수 있다). 직선으로 날아간 전차포탄은 30cm 정도의 장갑을 찢고 들어가 상대 전차를 폭발시키는데, 이런 전차포의 수명은 전차보다 길다. 따라서 전차를 폐차할 때 전차포를 떼어내 적 함정을 잡는 포로 재활용한다. 이 포를 직벽(直壁) 해안을 파서 만든 진지에 설치해, 접근하는 적 함정을 격침하는 임무를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연평도 사건에서 자주 거론된 해안절벽에 설치한 북한의 해안포다. 우리 군도 주요 직벽 해안에 폐전차에서 떼어낸 전차포를 설치해 북한 함정의 접근에 대비하고 있다.

    이 해안포(평사포, 폐전차에서 떼어낸 포)의 사거리는 10km 미만이다. 따라서 북한에서 13km 떨어진 연평도에는 포탄을 떨어뜨릴 수 없다. 11월 23일 북한이 쏜 170여 발의 포탄 중 90여 발은 바다에 떨어졌다는데, 이 바다에 떨어진 것의 대부분이 평사포에서 발사된 포탄이다.

    곡사포(曲射砲)는 포탄을 하늘로 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게 한다. 사거리가 매우 길고, 중간에 산(山) 등의 장애가 있어도 목표 지점에 포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사격은 하지 못한다. 평사포(해안포, 직사포)가 전차나 함정 같은 점(點) 표적을 잡는다면 곡사포는 면(面)을 때린다. 지상전에서는 적진을 초토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지상군은 대부분 곡사포를 보유한다.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지상군이 보유한 포는 곡사포다.

    북한은 연평도 도발에 평사포, 곡사포보다 위력이 8배나 큰 122mm 방사포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사포는 로켓탄이 들어갈 여러 개의 발사관을 한곳에 모은 것으로 국내에서는 ‘다연장 로켓포’라고 부른다. 북한이 이번에 사용한 방사포는 옛 소련의 다연장 로켓포 BM-21을 개량한 M1985로, 장전된 로켓탄 30발을 15초 만에 모두 발사할 수 있다. 사거리가 20km에 이르고 갱도 안에 넣지 못해 군단급 방사포여단에서 사용한다. 북한은 이번 공격을 위해 후방에 있던 방사포를 개머리 진지 후방까지 끌어왔다. 방사포는 대량 발사 능력 때문에 일시적으로 한 지역을 제압하거나 사거리가 긴 곳을 공격할 때 주로 쓴다. 또 단시간에 집단 표적을 공격할 때도 사용한다. 이 때문에 공격을 당하는 쪽에서는 대비책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응사격을 한 우리의 K-9 자주포는 곡사포다. 곡사포 중에는 전차처럼 스스로 달릴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이를 자주(自走)곡사포, 줄여서 자주포라고 한다. 트럭으로 끌고 다녀야 하는 것은 견인(곡사)포라고 한다. K-9은 자주포였지만 연평도에 포탄을 떨어뜨린 북한 포는 모두 견인포였다.

    방산업계에서는 K-9을 미국의 ‘팔라딘’, 독일의 ‘PzH 2000’과 함께 세계 3대 자주포로 꼽는다. 일각에서는 K-9이 독일을 이기고 터키에 수출된 것을 근거로 K-9을 최고의 자주포로 꼽는다. 전문가들은 K-9의 화력은 북한의 130mm 곡사포보다 10배 정도 강하기에 정확한 사격이 이뤄졌다면 북한이 훨씬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본다.

    K-9과 연동된 무기가 대(對)포병 레이더다. 이 레이더는 상대가 쏜 곡사포탄의 궤적을 잡아 수학적 계산으로 산 너머에 숨어 있는 상대 곡사포 진지의 위치를 알아내는 임무를 맡는다. 지난 1월 말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으로 무더기 사격을 한 후 우리 군은 연평도에 이 레이더를 설치했다. 이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K-9 포탄은 북한의 곡사포 진지를 정확히 때렸을 것이다.

    그러나 K-9 포탄으로는 해안직벽에 설치된 평사포 진지는 부수지 못한다. 이러한 진지는 현무-3 크루즈미사일로 잡아야 하는데, 연평도에는 이 무기가 배치돼 있지 않다. 북한의 해안포 진지가 파괴되지 않았다고 해서 K-9의 성능을 의심하는 것은 K-9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분석이다.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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