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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책장으로 들어온 한 권

기부금 내면 하버드대학도 식은 죽 먹기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

기부금 내면 하버드대학도 식은 죽 먹기

기부금 내면 하버드대학도 식은 죽 먹기

대니얼 골든 지음/ 이기대 옮김/ 동아일보사/ 410쪽/ 1만3000원

류승완 감독의 신작 ‘부당거래’가 화제다.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제목에 충실하다. 엔딩 자막이 올라간 뒤에도 부당거래의 먹이사슬이 계속되리라는 씁쓸한 뒤끝. 영화를 본 사람들은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자조했다.

“이 영화 보면 공부하고픈 생각이 든다더니, 정말 그러네요.”

“결혼을 잘해야 한다는 결론 같기도….”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를 읽은 뒤에도 비슷한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이 책은 미국 입학사정관제의 부당한 진실을 담았다. 퓰리처상 수상 기자인 대니얼 골든이 2년 넘게 취재한 내용을 촘촘히 써내려갔다. 실력과 노력보다는 집안과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합격을 결정짓는다는 메시지는 모른 척하고 싶었던 교육계의 치부를 아프게 들쑤신다.

책은 모두 10개 장으로 구성됐는데, 그중 8개 장은 은폐된 대학들의 부정 선발을 다루고 있다. 성적이 나빠도 명문대에 갈 수 있는 대표적 방법은 기부금 입학 동문 특혜, 귀족스포츠 특기자, 명사의 자녀다. 저자는 “실력 중심으로 알려졌지만 특혜 없는 인재들은 정원의 40%를 놓고 경쟁한다”고 고발하며 다양한 근거 사례를 꼽는다.



“하버드대학 입시 경쟁률은 10대 1이 넘으며 SAT 만점자도 절반 이상이 불합격한다. 그러나 거액기부자 모임인 하버드 자원위원회 회원 424명 중 218명이 하버드대학에 자녀를 보냈다. 자원위원회 회원이 되려면 최소한 100만 달러는 기부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유한 동창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거액을 끌어들인 솜씨 좋은 이들은 약간 적어도 회원이 될 수 있었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조카, 제이 록펠러 상원위원의 아들, 전직 부통령 앨 고어의 아들 등 상류층 자녀는 다른 학생들에 못 미치는 성적에도 명문대 입학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처럼 특권층 자녀들은 거액기부자 못지않은 특혜 대상이다. 저자는 브라운대학을 취재한 결과 “정재계 유명 인사나 할리우드 스타급 연예인의 자녀들은 이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브라운대학이 특권층 자녀를 위한 ‘특별학생’ 제도를 마련했기 때문.

대학에는 동문 특혜와 귀족스포츠 특기생을 위한 배려도 넘친다. 미국 정상급 가톨릭 대학인 노트르담대학은 고교 수석 졸업에 우수한 SAT 점수를 받은 존 시몬스에게 불합격을 통지했다. 반면 합격자 평균에 못 미치는 SAT 점수를 받았지만 가족 여럿이 노트르담대학 출신인 케빈 데스몬드는 합격시켰다. 이와 관련해 노트르담대학 부총장은 한 인터뷰에서 “동문 자녀의 절반은 특혜가 없었다면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쿼시, 요트, 스키, 조정, 펜싱, 승마 등 귀족스포츠는 특권층 지원자들의 ‘틈새 전략’으로 각광받고 있다.

대학들이 특권층 학생을 뽑는 것은 대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재력 있고 유명한 학부모들은 대학 홍보와 경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하지만 이런 대학문화에 반기를 든 학교도 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이 대표적이다. 이 학교는 순수하게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며, 부유한 동문 모임단을 구성하기 위해 입학 기준을 조정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대학만큼 넉넉한 재정을 확보한 것은 우수한 학생들에게 거는 기대 덕분이다. 저자는 “특혜가 사라지면 기부금이 쇠락하리라는 걱정은 기우다”라고 주장한다.

불공정한 대학 입시를 다룬 기사를 본 학부모들은 울분을 토하는 대신 “도대체 돈을 얼마나 줘야 할까요?”라고 물어왔다고 한다. 이들을 보면서 저자는 제이미 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제이미는 천재적인 재능과 창의력을 인정받았지만, 그가 지원한 아이비리그 7군데에서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은 아시아 청년. 그는 관련 기사가 보도되고 나서야 다트머스대학의 신입생이 될 수 있었다.

오랜 논의를 거쳐 국내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지 3년.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투명성이다. 학생의 다양한 능력을 보겠다는 취지로 만든 입학사정관제가 힘 있고 가진 자들을 위한 제도로 변질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자율”을 외치며 자체 검증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특목고 우대 등의 사건으로 국민의 인심을 잃은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세상이 ‘정당거래’로만 돌아간 적은 없었다. 하나의 부당을 바로잡으면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민의 끈을 붙드는 것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믿기 때문.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입학사정관제를 둘러싼 현재의 갑론을박도 긍정적 에너지의 분출이다.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깎고 다듬어도 골칫덩이인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던진다.



주간동아 2010.11.15 762호 (p88~89)

  •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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