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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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이혼 안타까워… 그래도 미래는 설계해야죠”

서울북부지법 변민선·김용두 판사 “아이들 양육 문제만큼은 확실히 매듭”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11-01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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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컥 이혼 안타까워… 그래도 미래는 설계해야죠”

    김용두(왼쪽), 변민선 판사는 이혼 방지 대책이 훌륭한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있으며, 이혼상담제도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의이혼 판사를 흔히 ‘이혼 주례’라 부른다. 협의이혼 재판 때 판사가 이혼을 결심한 부부에게 “이혼 의사가 있습니까” “진정 이혼할 생각입니까”라고 묻기 때문이다. 이는 결혼 주례가 “진정 배우자를 사랑합니까”라고 묻는 것과 닮았다.

    10월 20일 서울 도봉구 도봉동 서울북부지방법원(이하 북부지법)에서 ‘이혼 주례’로 소문이 난 변민선, 김용두 판사를 만났다. 대부분의 판사가 이혼 의사를 간단히 묻고 판결문에 도장을 찍는 일에서 그치지만, 이들은 이혼 부부의 미래까지 설계해준다.

    ‘양육 및 이혼상담제’ 놀라운 성과

    두 판사는 ‘양육 및 이혼상담제’를 전국 최초로 고안했다. 미취학 아동을 둔 부부가 북부지법에서 협의이혼을 하려면 상담위원에게 자녀의 복지 상담을 꼭 받아야 한다. 이혼 결심 부부는 교육 정도, 직업, 월수입, 이혼 사유, 양육비 부담 정도 등을 묻는 설문지를 먼저 작성한다. 상담위원은 이를 토대로 일반적인 이혼상담 외에도 재산분할, 위자료 등 법률 정보와 이혼 가정이 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 자녀의 교육 문제까지 일일이 상담해준다. 북부지법은 상담 뒤 부부관계가 회복될 수 있겠다 판단되면 이혼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회복할 수 없는 관계면 이혼을 권하지만, 양육 문제만큼은 확실히 매듭짓도록 돕는다.

    도장만 찍어주는 관행대로 했다면 편했을 터, 왜 없는 제도를 고안해 일을 벌였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변 판사는 “과거에는 당직 판사가 돌아가며 협의이혼 재판을 했다.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협의이혼을 처리하니 이혼 문제를 깊이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 지난해부터 김 판사와 북부지법의 협의이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한 달에 약 500쌍의 부부를 만났다. 이들을 만나면서 갈라서는 부부와 방치되는 아이들의 미래가 안타까웠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판사도 “이혼이 한 가정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임에도 간단히 처리되는 상황이 슬펐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3월에 상담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들도 명함에 직책 한 줄 넣고 만족하기보다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북부지법 관내에는 형편이 넉넉지 못한 가정이 많아 복지제도를 알려줄 필요성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50대 남성 A씨도 두 판사의 도움을 받았다. A씨는 실직한 뒤에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한 달 수입은 80여만 원에 불과했다. 고생해서 돈을 벌어도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힘들었다. 일감을 찾아 고시원을 전전하다 보니 자연히 부부 사이도 소원해졌다. 결국 아내와 갈라서기로 결심하고 A씨 부부는 북부지법을 찾아왔다. 북부지법은 A씨의 협의이혼 도장을 찍어주는 한편 복지 지원을 받는 방편을 알려주었다. A씨는 담보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쓰던 집을 판 뒤 무주택자 혜택을 받게 됐다.

    가슴 아픈 생이별도 줄었다. 흔히 부모 중 양육을 맡은 이는 헤어진 배우자가 자식을 만나는 것을 막아왔다. 면접교섭권이 있는데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김 판사는 “양육에 관한 협의서를 쓸 때 친권은 누가 가질지, 양육은 누가 할지, 양육비 부담은 얼마로 할지 부부가 직접 결정한다. 남편 중에는 아내에게 양육비를 내지 않을 거면 면접교섭권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다. 양육비로 흥정을 하는 것이다. 상담위원이 면접교섭권은 양육비 부담과 상관없는 기본 권리임을 설명해주어 이런 일을 막는다”고 말했다. 매일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으로 시설로 보내지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7월 1일부터 시작된 제도는 북부지법 직원들도 놀랄 정도로 성과를 내고 있다. 상담을 받은 150여 쌍의 부부 중 90% 정도가 “제도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변 판사는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이 상담을 거부할까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이혼을 하더라도 양육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의 미래가 달린 만큼 진지하게 임했다”고 설명했다. 협의이혼 신청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 이혼을 허가해주는 이혼 숙려기간을 단축하려고 마지못해 상담을 받던 이혼 결심 부부들도 상담이 도움이 되니 적극적으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객관적인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혼 숙려기간의 면제 건수가 크게 늘어난 것. 제도 시행 전 월평균 약 13.7건에서 시행 뒤 약 23.3건으로 늘었다. 상담위원은 상담과정에서 이혼 결심 부부의 상황을 파악해 재판부에 보고한다. 재판부는 가정폭력 등으로 당장 이혼이 필요한 부부에게 숙려기간을 면제해준다. 성급한 이혼을 막으려고 만든 이혼 숙려기간제도가 혼인관계를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부부에게는 도리어 고통이었는데, 북부지법 상담제도가 이 제도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협의이혼 취하 건수도 늘고 있다. 올 상반기 6개월간에는 상담 후 취하 건수가 한 건도 없었지만, 제도 시행 후 10월 18일까지 취하 건수는 14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혼보다는 자녀를 위해 같이 살아보기로 결심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 방증일 터.

    “덜컥 이혼 안타까워… 그래도 미래는 설계해야죠”
    “이혼 주례, 아직 갈 길 멀어”

    협의이혼 비율이 70%에 이르지만 상담제도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아 협의이혼 희망 부부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두 판사의 노력으로 협의이혼 희망 부부도 실질적인 상담을 받게 됐다. 이런 공로에 대한 칭찬이 북부지법 안팎에서 자자하지만 두 판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겸손해했다. 앞으로 상담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내실화에 더 힘쓰고, 다른 가정법원이나 전문 상담기관과의 교류도 늘릴 계획이다. 각 구청의 복지제도, 면접교섭제도, 양육비 집행제도 등 이혼 부부에게 필요한 안내매뉴얼 제작도 구상 중이다. 당장 상담실과 상담위원이 부족하지만 11월부터 미취학 아동을 둔 부부에서 초등학교 3학년 아동을 둔 이들까지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 부부의 이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인 지금, 이혼도 하나의 문화가 됐다. 두 판사는 이혼 결심 부부에게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혼 문제를 너무 감정적으로 성급하게 처리하지 말길 바란다. 특히 양육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협의이혼을 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이혼 관련 전문기관의 도움을 6개월 이상 받아보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변민선 판사)

    “서양 영화를 보면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린 뒤에도 자녀를 찾아온 전 부인이나 남편을 환영하고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나오는데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대부분 상대 배우자가 자녀를 못 만나도록 한다. 이혼한 뒤에도 친모, 친부를 만나게 해주고 함께 어울릴 때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된다.”(김용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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