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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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이 또 ‘朴 - 李’를 싸움 붙이나

이재오 구애 공세에 박근혜 수수방관…한 배 타고 가기엔 그동안 상처 너무 커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11-01 0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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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헌이 또 ‘朴 - 李’를 싸움 붙이나

    2008년 1월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집무실에서 4개국 특사단에 포함된 박근혜 전 대표와 이재오 장관이 기념촬영을 준비하고 있다.(사진은 일부 편집)

    “독재자의 딸이 당 대표가 되면 한나라당은 망한다.”(이재오) → “이재오 의원은 이전에 탈당하겠다고 했지만 탈당하지 않았고, 나에게 총선 지원유세를 요청했다.”(박근혜)

    “유신시대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박근혜 대표는 사과해야 한다.”(이재오) → “20년 동안 사과는 셀 수 없을 만큼 했다. 몇 번을, 몇 년을 더 해야 하나.”(박근혜)

    “박근혜 대표는 유신 그 자체이며, 독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이재오) → “제가 대표가 되면 탈당하겠다고 한 말을 지켜라.”(박근혜)

    이재오 특임장관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004년 당 대표 경선을 전후해서 벌인 언쟁이다. 그때 이미 두 사람은 상극(相剋)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은 구원투수로 ‘박근혜 대표’를 내세운 뒤 천막당사까지 꾸리며 심기일전했다. 하지만 유독 이 장관은 박 전 대표를 인정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선제공격을 했다. 이에 박 전 대표도 적절히 반격했다.

    두 사람의 악연은 이어졌다. 이 장관은 2006년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다가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받은 강재섭 전 대표에게 역전패당했다. 이어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는 이 장관이 이명박 후보 진영을 지휘해 박 전 대표에게 패배를 안겼다. 경선 후에도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자 이 장관은 “아직도 경선 중인 걸로 착각하는 세력이 있는데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박 전 대표는 “오만의 극치라고 본다”고 쏘아붙였다.



    이 장관은 박 전 대표의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고초를 겪었다. 과거사를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앙숙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이 장관이 먼저 자세를 낮췄다. 그는 관훈클럽 토론회와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박 전 대표와 가깝고 친하게 지내겠다. 어떤 형태로든 기회가 있다면 생각을 맞춰보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박 전 대표를 “훌륭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라고 치켜세웠다.

    과거 ‘독재자의 딸’ 발언에 대해서도 “당시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근대화 지도자의 딸’이란 말도 함께 했는데, 그 부분만 강조됐다”고 해명했다. 이 장관은 최근 기자와 만나서도 “박 전 대표에게 개인적인 유감은 없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만나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특임장관 2개월 회동 요청 없어

    이 장관의 ‘구애’에 박 전 대표의 화답은 아직 없다. 이 장관은 정기국회 개회일인 9월 1일 본회의장에서 박 전 대표를 찾아가 특유의 ‘90도 인사’를 했다. 이 장관은 “오랜만에 뵙습니다”고 말을 건넸고, 박 전 대표는 “주로 (국회에) 와 계시느냐”며 안부를 물었다. 그게 전부다. 이 장관이 정무장관 업무를 하는 특임장관을 맡은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박 전 대표에게 회동을 요청한 적이 없다. 지난 8·21 청와대 회동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 화해 무드가 조성된 것과 조금 다른 기류다.

    이 때문에 친박계 일각에서는 이 장관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친박계 핵심 의원은 과거 이 장관이 박 전 대표를 공격한 발언들을 쭉 상기시킨 뒤 “솔직히 이 장관 혼자서 멀어졌다가 다가섰다가 하는 것 아니냐”고 시큰둥해했다. 다른 친박계 의원도 “이 장관이 다가서는 데 대해 박 전 대표는 별다른 감정이 없다. 우리로선 특별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고 무시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이 장관 측에서는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의 한 측근은 “이 장관은 모든 것에 열린 마음이다. 박 전 대표와도 과거 대표 경선 때 부딪친 적이 있으나 지금은 다 잊고 진심으로 화해하고 싶어 한다. 아직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회동을 제의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계기가 생기면 박 전 대표를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장관이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자의반 타의반’으로 10개월가량 미국에 머물며 엄청난 자기반성을 했고, 제도정치권으로 다시 돌아온 뒤 그때의 반성을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측근은 특히 “박 전 대표가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된다면 이 장관이 보수세력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지금은 이 장관이 과거의 앙금을 씻자며 다가서고 있지만 박 전 대표는 좀 더 지켜보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재의 여권 권력구도를 고려하면 두 사람이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하기보다는 대립과 갈등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당장 최근에 불거진 개헌론에 대한 생각부터 다르다. 이 장관은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는 데 앞장서면서 대통령의 권력 분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박 전 대표는 ‘4년 중임제’ 개헌론자다. 더구나 친박계 의원 사이에서는 이 장관이 이원집정부 방식의 개헌논의를 이끄는 것은 차기 대권경쟁의 주도권을 쥐고, 나아가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힘을 빼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여기다 2012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둔 힘겨루기가 사실상 시작된 시점이어서 두 사람이 겉으로나마 한 배를 탈 가능성은 더욱 낮다. 요즘 들어 박 전 대표와 이 장관이 계파를 넘나들며 교차행보를 하는 것은 계파화합이란 측면도 있지만, 속을 뒤집어 보면 서로 집토끼를 지키면서 산토끼를 잡는 세 불리기 경쟁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박 전 대표는 계파를 초월해 당 소속 의원들과 ‘식사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10월 25일에는 국회 본회의 참석을 위해 회의장에 들어서자마자 한나라당 의원석을 돌며 친이계 의원들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날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 자리로 가 현 정부의 감세기조를 철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자료를 전하고 담소를 나눠 눈길을 끌기도 했다.

    마지막 남은 한판 대결 어떻게

    차기 대권경쟁과 관련해 ‘킹’에 도전할 것인지, ‘킹메이커’ 노릇을 할 것인지를 놓고 관심을 모으는 이 장관도 특임장관 직함을 활용해 친박계 의원들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최근 수도권 친박계 의원들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선 “대선후보 경선 때는 친박, 친이가 있었지만 다 털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내년 상반기 경선구도의 윤곽이 드러나는 시점에 직접 대권도전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친이계 의원들을 결집해 ‘박근혜 불가론’을 설파하며 다른 카드를 제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재 가장 유력한 대안은 김문수 경기도지사다. 이 경우 박 전 대표와 김지사-이 장관 라인이 외나무다리에서 마주 설 수도 있다.

    이 장관은 지난해 7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와의 향후 관계에 대해 “이제 ‘삼세판’이 남은 거지”라고 말했다. 그는 “경선 때는 내가 반대캠프를 지휘해 박 전 대표가 졌고, 그전에 내가 당 대표에 출마했을 때 박 전 대표가 강재섭을 밀어 다 이긴 판을 엎어버렸다. 그때 중립만 지켰다면 내가 당 대표가 됐고 오늘의 분열이 없었을 것이다. 서로 주고받은 것이 1대 1이 됐다”고 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그의 속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낸 말이다. 이제 마지막 한 판이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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