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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배반의 딱지’ 서러움, 보약이 됐나

김부겸 - 눈물의 편지로 존재감 알리기 성공 … 김영춘 -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화려한 부활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배반의 딱지’ 서러움, 보약이 됐나

‘배반의 딱지’ 서러움, 보약이 됐나

2007년 9월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회견을 연 김부겸 의원(왼쪽). 김 의원은 당시 손학규 후보 캠프 선대본부본부장을 맡았다. 3년간 ‘정치적 유배’를 끝내고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여의도로 돌아온 김영춘 전 의원.

“왜 영남 출신, 한나라당 출신 때문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까. 지명직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이 동시에 영남 출신이면 큰일 나는 당입니까? …눈물로 다시 호소드립니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낙인과 멍에를 내 어깨에서 좀 벗겨주십시오.”

민주당 김부겸 의원(52·경기 군포)은 10월 13일 자당 소속 동료의원 86명에게 친필 편지를 보냈다. 10월 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대표가 선출되면서 사무총장직 0순위에 꼽혀온 그가 불과 열흘 뒤 눈물 젖은 편지를 보낸 것이다. 편지 속 지명직 최고위원은 김영춘(49) 전 의원이다.

전당대회 이후 “당원들이 놀랄 만한 결단을 내렸다. 2년 뒤 반드시 정권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열망에서 내린 결단이고 가능성을 만들어보자는 차원의 도전”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던 그였다.

“한나라 출신 멍에 벗겨주십시오”

손 대표 측근이자 경선과정에서 선거캠프 좌장 노릇을 한 김 의원이 손 대표 체제에서 한몫을 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손 대표는 10월 11일 사무총장에 3선의 이낙연 의원(전남 함평·영광·장성)을 임명했다. 대변인에는 초선 이춘석 의원(전북 익산)을, 대표 비서실장엔 재선 양승조 의원(충남 천안)을 임명했다. 막판까지 ‘김부겸 사무총장 카드’를 고민했지만 호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박지원 원내대표, 권노갑 전 의원 등의 조언을 감안했다는 분석이 흘러나왔다. 지역 안배와 당내 기반 확대를 위한 인선이라는 것이다.



앞서 손 대표가 10월 7일 영남 몫 지명직 최고위원에 김영춘 전 의원을 내정하면서 김 의원 인선은 물 건너갔다는 후문이다. 사무총장 인선에 앞서 영남(김부겸은 경북 상주, 김영춘은 부산)과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김 전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지명되자 민주당의 정통성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장악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에 부담을 느낀 손 대표가 시·도당 위원장은 당직 인선에서 배제하는 관례를 깨고 이낙연(전남도당위원장), 양승조 의원(충남도당위원장)에게 당직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따지고 보면 김 의원은 지금까지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서러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18대 국회에서 원내대표에만 3차례 출마해 연거푸 고배를 마셨을 때도 그랬다. 김 의원이 눈물의 편지를 보낸 이유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먼저 2007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부터 줄곧 손학규 대표를 지지한 그가 손 대표 체제에서도 ‘역할’을 맡지 못하는 데 대한 통탄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란 추측이 많다.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한나라당 출신이란 멍에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같은 길을 답습한 데 대한 울분이라는 것이다.

편지에서 밝힌 대로 김 의원은 1991년 ‘꼬마 민주당’에 입당했다. 1995년 민주당 분당 당시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을 지켰고,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조순 두 후보가 신한국당과 민주당 합당을 결정하면서 한나라당 창당 멤버가 됐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법안을 놓고 한나라당 의원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고 이른바 ‘독수리 5형제’(이우재, 이부영, 안영근, 김부겸, 김영춘 의원)와 동반 탈당을 했다. 그해 11월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한 뒤 현재의 민주당에 몸담게 됐다. 그만큼 김 의원으로서는 한나라당의 멍에가 억울한 측면이 있다.

게다가 3선 의원으로서 뭔가를 보여줘야 할 결정적 시기에 발목이 잡혀 그 울분이 더 컸을 것이다. 김 의원을 잘 아는 민주당 관계자의 말이다.

3선으로 역할 고민 그동안 불만 폭발

‘배반의 딱지’ 서러움, 보약이 됐나

2007년 6월 손학규 후보가 지지를 선언하고 사무실을 찾아온 김부겸 의원과 손을 맞잡고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천재적인 대중연설가로 정평이 난 김 의원이 2년 후배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서울대 경제학과 78학번)이 급부상하면서 70년대 후반 학번의 상징성을 유 전 장관에게 넘겨준 것 아니냐고 말한다. 아마 김 의원은 손 대표 당선으로 당 내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며 자신의 상징성도 되찾으려 했을 텐데 시작부터 가로막히면서 그 충격이 컸을 것이다.”

이러한 관측은 물론 손학규 대표를 향한 항변으로 귀결된다. 전국정당화와 2012년 정권 탈환을 위해 당심은 손 대표를 택했지만, 손 대표는 자신의 인선보다 ‘외부의 인선’을 받아들인 데 대한 항변이다.

물론 ‘한나라당 멍에를 벗겨달라’는 편지글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있다. 열린우리당 분당 이후 다양한 정치적 색깔을 가진 사람이 뒤섞여 있는 민주당에서 ‘한나라당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당직에서 제외됐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감성적일 수밖에 없는 편지를 통해 ‘당직 배제=한나라당 멍에 때문’을 강조하면서 한나라당 이미지를 벗어냄과 동시에 당원과 의원들을 대상으로 인정받으려는 ‘인정(認定) 투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결과적으로 편지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되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한나라당 출신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알렸고, 동정표를 얻는 데 성공한 셈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이철희 부소장의 설명이다.

“그동안 김 의원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서 7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다. 한나라당을 깨고 나온 것은 오히려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김 의원이 원죄 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편지로 호소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원대대표 경선에서의 낙선과 사무총장 인선 배제의 이유도 출신 성분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잃어버린 600만 표를 찾아오겠다’며 김영춘 최고위원처럼 고향인 TK 지역에서 출마해 전국정당화로 승부수를 띄웠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쯤 되면 김영춘 최고위원에게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김 최고위원은 ‘주간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최고위원으로 지명되면서 김 의원에게 ‘불똥’이 튄 게 아닐까 싶다. 나로서는 미안한 마음이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김 의원과 같은 문제에 봉착(영남·한나라당 출신)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과 함께 열린우리당 창당에 나선 그는 열린우리당이 간판을 내리면서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3년간 ‘자기 유배형’에 처했다. 그해 대선에서는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를 지지했다.

그는 3년 만의 복귀에 대해 ‘뜻밖의 복귀’라고 표현했다. 손 대표가 당선되고 이틀 뒤(10월 5일) 연락이 와서 만났는데 선뜻 영남 몫을 맡아달라고 해서 어리둥절했다는 것이다.

“손 대표가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이루고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같이 하고 싶다’며 최고위원직을 제의했다. 뿌리칠 만한 명분이 없어 다음 날 제의를 받아들였다. 사전 교감은 없었다. 전격적인 제의였고, 2012년 총선에서 부산지역 출마를 이야기한 것도 전국정당화 포석 차원에서 생각한 거지 (최고위원직 수락에 따른) 옵션은 아니었다.”

그는 6·2지방선거 당시 정세균 대표로부터 부산시장 후보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까지는 시간이 충분해 부산 발전의 청사진을 만들 수 있지만 지방선거 당시는 전혀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에게도 ‘울분의 기자회견’이 날아들었다.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민주당 정체성’을 꺼내들며 김 최고위원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김 전 장관은 “한나라당 출신 김 전 의원을 최고위원에 지명하는 것은 민주당을 내걸고 번번이 낙선한 저와 당원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한마디 상의도 없이 영남 대표성을 일방적으로 지명하고 ‘제2의 노무현’ 운운하며 영남과 노무현 정신을 능멸하고 있다”며 손 대표와 김 최고위원을 싸잡아 비난했다. 손 대표가 10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의원을 최고위원으로 내정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희생과 헌신의 정신으로 제2의 노무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정체성 시비 ‘울분의 기자회견’

‘배반의 딱지’ 서러움, 보약이 됐나

2003년 7월 7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한나라당 김영춘, 안영근,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의원(왼쪽부터)이 탈당선언을 하고 있다.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이들은 5개월 뒤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의 기자회견 내용과 민주당 부산시당 당원들의 생각에는 다소 온도차가 있다. 김 전 장관이 ‘민주당 정통성’을 들어 공격했지만, 사실은 부산시장 선거에서 45%라는 기록적인 득표를 한 자신에게 상의 없이 ‘영남 몫’을 지명한 데 대한 서운함의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다음은 부산시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인사는 전격 발표가 ‘제맛’이라지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사전에 손 대표가 지역 당원들과 상의를 했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김 전 장관이 기자회견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젊고 개혁적인 후보가 부산에서 출마해 선거 분위기를 일으키는 것을 환영한다. 기대가 크다.”

통일민주당 시절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에 반대한 김 전 장관과 달리 김 최고위원은 YS를 따라가 개인적인 서운함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최고위원은 “1년여 삼수회(민주당 전현직 486의원 모임)를 통해 민주당 의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반성도 했다”며 “제2의 노무현은 내가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지역 맹주가 될 생각도 없다. 심부름꾼으로서 김 전 장관과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민주당 정통성’ 문제로 김부겸 의원과 김영춘 최고위원이 고심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플러스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종훈 iGM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는 이렇게 평가한다.

“손 대표 체제에서 김영춘 전 의원은 최고위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민주당 인선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김부겸 의원도 ‘눈물의 편지’를 보냈지만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다. 개혁세력의 한 핵이었던 김 의원이 그 존재감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제 막 당 대표가 된 손 대표로서는 김 의원까지 (당직 인선에) 넣기에는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하지만 손 대표의 대권가도를 고려하면 현재 김 의원의 숨고르기가 더 나을 수 있다.”



주간동아 2010.10.25 759호 (p32~34)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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