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8

2010.10.18

“당신 아이도 명문대 보내줄게!”

대치洞 에듀 맘, 사교육 좇다 사교육 시장 주도 … 일부는 반짝 학원도 차려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10-18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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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아이도 명문대 보내줄게!”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에 ‘에듀 알바 맘’이 늘어나고 있다.

    자녀를 특목고나 명문대에 보낸 대치동 엄마는 종종 학원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자녀교육 노하우를 바탕으로 학원 상담실장으로 모시고 싶다는 청이다. 전문가 수준의 정보력을 갖춘 데다 엄마들과 ‘눈높이 소통’이 가능한 이들은 학원 영업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이런 ‘엄마 상담실장’이 등장한 것은 구문. 하지만 최근 대치동 학원들의 ‘엄마 상담실장 마케팅’은 날로 휘황찬란해지고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 몰라도 대치동 엄마들의 서열은 성적순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엄마는 어디에서나 대접받고, 성적이 시원찮은 엄마는 그 반대다. 전자는 모르는 엄마들이 ‘언니’라 부르며 먼저 다가오지만, 후자는 온갖 끈을 동원해야 가까스로 좋은 그룹과외에 낄 수 있다. 다소 이상해 보이는 엄마들의 관계. 하지만 대치동에서는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아이 성적 따라 엄마 서열 매겨

    이뿐 아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짭짤한 부수입을 올릴 길도 열린다. 자녀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학원가에 진출하는 사람이 많은 것. 보통 대치동 학원가 강사들과 인근 학교 최상위권 아이들을 훤히 꿰고 있는 프리랜서 ‘리더 엄마’로 시작해 학원 상담실장을 거쳐 학원장으로 독립하는 순서를 따른다. 다음은 대치동에서 20년간 학원을 운영한 입시학원장 A씨의 말이다.

    “인근 고교 1, 2학년생 중 최상위권 자녀를 둔 엄마가 1순위 섭외 대상이다. 최소 성적이 전교 4% 이내에 들어야 엄마들에게 ‘말발’이 먹힌다. 자녀를 막 명문대나 의대에 보낸 엄마에게도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진다. 보통 학원장과 학부모 관계로 인연을 맺었다가, 아이가 대학에 가면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학부모 상담직원은 세 부류로 나뉜다. 전화·방문 상담만 하는 내근형, 내근을 하면서 이따금 그룹과외를 짜는 중간형, 프리랜서로 영업만 하는 외근형이 그것이다. 이들은 학원가와 입시 제도를 아우르는 방대한 정보력을 자랑하는데, 자녀의 ‘스펙’에 따라 전문 분야가 나뉘기도 한다. 다음은 한 학원 상담실장으로 일하는 B씨의 설명.

    “자녀를 과학고에 보낸 엄마는 수학·과학을, 민족사관학교에 보낸 엄마는 영어 상담을 한다. 또 자녀가 대학에 입학한 학부모는 같은 학교나 학과를 지망하는 엄마들을 주로 상대한다. 자신 있는 분야를 맡아야 엄마들도 신뢰를 보낸다.”

    이런 엄마 상담직원의 활동은 날로 전문 영업인을 닮아가고 있다. 이는 최근 상당수 학원이 인센티브제를 도입한 배경과 관련이 깊다. A씨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그룹과외와 수강 등록 유도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학원이 늘었다. 기본급에 더해 그룹과외 하나를 꾸릴 때마다 수강료의 15~ 20%를 인센티브로 주고 있다. 그는 “그룹과외 수강료가 200만~500만 원 선이니, 팀당 20만~75만 원을 받는다. 모 학원은 인센티브로만 월급을 준다는 이야기도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영업활동을 할까. 기본은 ‘리더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 은근슬쩍 학원과 강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뒤, 곧장 ‘바람몰이’를 해 우르르 학원으로 몰려간다. 그런 뒤 미리 준비한 학원 설명회를 열고 그룹과외를 만들면 ‘게임 끝’이다. 다음은 상담실장으로 일하다가 7년 전 학원장으로 독립한 C씨의 말이다.

    “보통 학부모 모임 등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던진다. 엄마들이 관심을 보이면 ‘학원에 한번 가보자’고 분위기를 잡은 뒤, 학원에 전화를 걸어 설명회를 준비하도록 한다. 설명회를 듣고 장시간 상담하고 나면 등록을 안 할 수 없다. 전화 영업도 활발하다. 보유한 자료를 토대로 무작위로 전화를 건 뒤, 반응을 보이면 상담 약속을 잡는다. 보험사 영업체계가 학원가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인센티브로 대단한 수입을 올리는 일은 드물다. 그룹과외 인원은 4~10명 선. 한 팀을 꾸리려면 학습 수준이 비슷한 아이들을 모으고, 이들과 강사 간 시간 조율을 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한다. 학원장 C씨는 “열심히 뛰어도 한 달에 10팀 이상 짜는 것은 무리다. 5팀을 짜면 기본급 약 120만 원에 100만 원을 더해 한 달에 200여만 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 영업 닮은 인센티브제 도입

    “당신 아이도 명문대 보내줄게!”
    대치동 모든 학원 상담직원이 학부모인 것은 아니다. 강사진이 탄탄하거나 이미 자리를 잡은 학원에는 학부모 상담직원이 없다. 막 문을 열어 공격적인 홍보와 영업이 필요한 신생 학원이 경쟁적으로 학부모를 고용한다. 그렇다면 엄마 상담직원들의 강점은 뭘까. 다음은 중2, 고2 자녀를 둔 학부모 D씨의 말이다.

    “일반 상담직원은 학원 정보에는 해박하지만 아이의 개별 상황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 하지만 엄마 상담직원에게는 살아 있는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사춘기 등 공부를 시키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 간식거리를 사들고 찾아가 이들과 친해지려 노력하는 편이다.”

    상담직원으로 일하는 학부모는 일석이조다. 자녀에게 장학생 신분이 주어져 학원비를 아끼는 동시에 수입도 올릴 수 있다. 한 학원의 상담실장 B씨는 “학원에서 일하는 엄마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렵다. 한 달 수백만 원이 넘는 사교육비 부담을 더는 것은 굉장한 매력이다. 무엇보다 자녀교육에 충실하면서 중년에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라고 말했다.

    대치동 ‘에듀 알바’의 종착점은 학원장이다. 자녀가 재학생 때 상담실장으로 일하다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학원을 창업하는 학부모가 대부분이다. 해당 학교 후배 엄마들과의 친분과 스타강사 인맥을 활용해 2, 3년간 반짝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A씨는 “학부모가 경영하는 학원 중 잘되는 곳은 10군데 남짓이다. 인맥 관계를 바탕으로 창업하기에 생명력이 짧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학원부동산’을 경영하면서 방을 구하는 지방 유학생들에게 학원을 소개한 뒤 인센티브를 받거나, 다른 집 아이의 입시 컨설팅을 담당하는 신종 ‘에듀 알바’도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사교육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한 대치동 엄마들은 “자녀교육과 본인 인생 두 가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센티브제까지 끌어들인 최근의 학원 마케팅은 위험해 보인다. 학원 간 영업경쟁이 붙으면 양심 있는 상담이 불가능하고, 결국 그 비용은 수강료에 보태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달리 적극적으로 특정 학원과 강사를 홍보하는 엄마가 있다면, 그 정보는 꼼꼼히 검토해보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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