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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T-50 또 쓴잔 … 방위산업 확 뜯어고치나

미래기획위 대통령 보고서 단독 입수 … ‘민영화와 합병 통해 경쟁력 확보’ 담겨

  • 이정훈 동아일보 논설위원 hoon@donga.com

T-50 또 쓴잔 … 방위산업 확 뜯어고치나

T-50 또 쓴잔 … 방위산업 확 뜯어고치나

국산초음속훈련기 T-50(위)과 차세대보병전투장갑차 K-21(아래), 최대 사거리가 40km인 K-9 자주포(오른쪽)의 위용.

지난 9월 말 싱가포르는 한국의 T-50이 고등훈련기 수주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공식 통보했다. 이로써 T-50은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또 한 번 고배를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었다고 하는 고등훈련기 T-50이 연거푸 고배를 마시자, 당국자들은 행여 정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쉬쉬하면서도 방위산업(이하 방산) 진작을 위한 출구를 찾느라 분주하다.

싱가포르에서 ‘축배’를 든 고등훈련기는 UAE 경쟁에서도 T-50을 ‘격추’한 이탈리아 아에로마키사의 M-346이다. M-346은 초음속 비행이 불가능하고 경(輕)전투기로의 전환도 어렵지만 가격 경쟁력이 좋아 승리했다. 이러한 M-346이 머지않아 세계 최대의 고등훈련기 시장인 미국에서 다시 T-50과 맞붙는다. 미국에서마저 패한다면 T-50은 영원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일본이 만든 F-2, 대만이 생산한 IDF 전투기처럼 자국 공군에만 비싸게 공급되고 사라지는 서글픈 항공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항공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항공산업은 수출 시장을 확보해 지속적으로 항공기를 제작해야 발전한다. 따라서 한국 항공산업계는 물론이고 방산업계가 해결해야 할 최대 과제는 어떻게든 T-50을 수출하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충격적인 패배

T-50이 수출에 실패한 첫째 이유가 비싼 가격이다. 항공 초보국인 한국이 T-50을 수출하려면 원가보다도 낮은 가격에 내놓아야 한다. 박리다매(薄利多賣)는 고등훈련기 시장에선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는 것이어서 한국은 전투기 같은 좀 더 정교한 항공기 개발에 도전할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상식 이하로 저가 입찰을 하려면 ‘주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T-50을 제작하는 한국항공은 산업은행과 관련 있는 한국정책금융공사 등이 대주주로 있는 일종의 공기업(公企業)이다. 정부에서 사장을 임명하는 주인 없는 회사이다 보니, 이 회사는 누가 사장으로 와도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반면 아에르마키 사와 모(母)그룹인 핀메카니카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사기업(私企業)인지라 박리다매를 내다본 출혈 수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항공은 국내 방산업체 가운데 가장 큰 회사인데, 이 회사가 T-50 수출 실패로 활력을 잃으면 국내 방산 전체가 침체된다. 이 때문에 대통령 직속의 미래기획위원회(위원장 곽승준, 이하 미래기획위)는 방위산업을 발전시키는 내용을 담은 두 건의 보고서를 제작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관계 부처로 하여금 이를 실행케 할 예정이다.

미래기획위가 만든 보고서는 ‘국방과 산업의 융합’ ‘방산 중소기업 육성’을 주 내용으로 한다. 방산을 국방력 증강에 필요한 산업으로만 보지 않고 수출까지 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문한 것이 방산업체의 민영화와 합병이다. 이는 한국항공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한국정책금융공사가 갖고 있는 지분을 민간 기업에 매각해 한국항공을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항공의 지분은 정부를 대신한 한국정책금융공사가 31%를 갖고, 나머지를 현대와 삼성, 두산이 균분하는 구조다. 그런데 2009년 6월 두산은, 오딘 홀딩스라고 하는 사모(私募)펀드에 한국항공 지분을 헐값에 팔았다. 두산의 재정 사정이 어려웠고, 항공업의 미래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항공산업을 일으키려면 경쟁력 있는 대기업이 한국항공을 인수해야 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정부는 삼성이 한국항공 지분을 인수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한다. 한국항공은 본래 삼성 계열의 삼성항공이었으나 현대와 대우그룹이 항공산업을 장밋빛으로 보고 뛰어들어 항공회사를 세움으로써 과당경쟁이 일어나자, IMF 때 정부는 세 회사를 합병해 한국항공을 만들었다. 하지만 두산이 한국항공 지분을 매각한 데서 유추할 수 있듯, 지금의 대기업들은 벌이가 시원찮은 항공산업에 부정적이다.

이제 정치적으로 한국항공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증여와 조세포탈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회장직을 내놓았던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2009년 12월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고 올해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한 만큼, 정부 측의 요구가 있으면 한국항공을 인수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적 합의로 한국항공이 삼성 계열사로 들어가 다시 삼성항공이 되면, 이 회사는 삼성이라는 브랜드 파워와 삼성의 재력을 이용해 세계시장을 뚫을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삼성그룹에는 비행기 엔진을 만드는 삼성테크윈과 항공전자 장비를 생산하는 삼성탈레스가 있으니 세 회사를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글로벌 기업으로 단일화 필요

T-50 또 쓴잔 … 방위산업 확 뜯어고치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한국항공을 인수해 T-50을 수출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삼성테크윈은 K-9 자주포를 터키에 수출했다. 자주포는 전차, 장갑차와 함께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지상기동무기의 대표. 그런데 미국과 유럽에서는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지상기동무기 제작사들을 합병해 하나의 대형 회사로 만들고 있다. 경쟁력을 가진 대형 회사가 수출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K-9 자주포는 삼성테크윈이, K-1과 K-2 전차는 지하철 차량과 KTX 차량 등을 만드는 현대차 그룹의 현대로템이, K-200과 K-21 장갑차는 두산그룹 산하의 두산 DST가 생산한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방산에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삼성은 항공무기로 전문화하고, 삼성과 두산이 갖고 있는 지상기동장비 부문은 현대로템으로 넘겨 단일화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대전에서는 레이더를 비롯한 전자장비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국내에서 이러한 시스템 제작은 LIG넥스원(이하 LIG)과 삼성탈레스가 양분해왔으나, 두 회사 사이에 묘한 경쟁심이 있어 적잖은 마찰이 일고 있다. 그로 인한 간접비용 손실도 적지 않다. 때문에 삼성탈레스는 한국항공과 합쳐 항공전자 개발에 전념하게 하고, 일반적인 시스템 개발과 제작은 LIG로 단일화하자는 안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를 대표 기업으로 하는 삼성그룹은 항공, 자동차와 철차(鐵車·기차류)를 제작하는 현대차 그룹은 지상기동무기, LIG는 전자시스템 제작을 전담케 한다면, 이 회사들은 그룹 브랜드와 그룹의 해외 마케팅 망을 이용해 방산 수출을 해내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기업들이 방산 수출을 뚫어줘야 방산 부품을 제작하는 중소기업들도 발전할 수 있는 상생구조가 형성된다.

한국 방산 가운데 국산화가 가장 잘된 것은 함정 분야다. 이유는 한국 조선업계의 실력이 세계 1위이기 때문이다. 민영화를 통해 선박 수출 능력을 극대화해놓은 상태에서 함정을 제작하니 함정 분야는 쉽게 발전했다. 그렇다면 항공과 지상기동장비, 시스템 장비도 세계를 뚫을 수 있는 민간 기업에 맡기는 것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수출도 하는 방안일 수 있다.

그러나 미래기획위의 방안이 현실화하기까지에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첫째가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왜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빅딜을 하느냐’는 시비를 제기할 가능성이다. 둘째는 합병 대상이 되는 기업의 근로자들이 신분 불안을 느껴 노조를 통해 합병 거부운동을 하는 경우다. 셋째는 대기업 간의 이해 문제로 빅딜이 무산되는 경우다.

한국 방산은 그동안 비리의 온상인 양 툭하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지만, 실체를 살펴보면 처연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 방산의 1년 수출액(10억 달러 내외)은 대한민국 수출액(3600억 달러)의 하루치에 그칠 정도로 미미하다. 이러한 방산을 살려 수출산업화하고 국방력도 높이려면 글로벌 기업으로 단일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도 그런 방법으로 세계 방산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0.10.11 757호 (p16~17)

이정훈 동아일보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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