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6

2010.10.04

한국 자본시장 인프라 세계로 간다

해외시장 개척 뛰어든 코스콤 … 말레이,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서 ‘경제 꽃’ 피우기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0-10-04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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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자본시장 인프라 세계로 간다

    라오스거래소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코스콤 해외개발TF팀.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김계영 부장.

    자본주의 국가에서 증권거래소는 경제의 꽃에 비유된다. 꽃이 활짝 피려면 물관과 체관이 튼튼해야 한다. 그래야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포도당과 물이 식물 전체에 골고루 공급된다. 물관과 체관이 허약하면 개화는 언감생심, 식물 자체가 죽을 수 있다.

    한국거래소(KRX)가 우리나라 경제의 꽃이라면 IT 자회사인 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은 물관과 체관이다. 거래소와 각 증권사의 IT시스템을 개발 운용하고, 50여 개에 이르는 국내외 금융투자회사의 전산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 코스콤이다. 뿌리나 잎의 영양분(돈)을 안정적으로 돌게 하는 곳이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금융거래 속도전을 지휘하고 공인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코스콤이다.

    최근 코스콤이 외국에서 ‘한국식’ 물관과 체관을 만들고 있다. 지난 7월 베트남 증권시장 IT시스템 현대화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는 거래소 인프라를 통째로 만들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아르헨티나, 페루 등과는 IT시스템 수출에 대해 협의 중이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남미에서 거점 국가를 만들어 코스콤의 인지도를 높인 뒤 선진국 시장에 뛰어든다는 장기 계획의 일환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475일간 장기 파업으로 잘 알려졌던 코스콤이 이처럼 2년 사이 해외시장 개척에 공세적으로 나선 것은 ‘파업 회사’ 이미지를 벗으려는 직원들의 의지와 김광현(57) 사장의 경영 마인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해외시장은 코스콤 장기 성장동력



    김 사장은 LG EDS(현재는 LG CNS) 등을 거친 IT업계 출신. 여기에 10여 년간의 외국 생활로 해외사업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 2008년 10월 취임 이후 코스콤의 장기적인 성장동력으로 해외시장 개척을 선언했다.

    “때가 되면 의례적으로 한 번씩 외치는 해외진출이 아니라 세계시장의 트렌드와 우리의 역량을 면밀히 따져보고 추진했습니다. 마침 한국거래소의 해외진출 전략과 맞아떨어지면서 추진동력이 배가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시장 개척은 ‘산 넘어 산’이었다. ‘경제의 꽃’을 피게 하고 물관과 체관을 만드는 것도 어렵거니와 언어와 문화, 경제 수준이 달라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외국 거래소 개장 작업을 하면 예상치 못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래도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노하우를 쌓아야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

    라오스거래소(LSX)의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코스콤 해외개발TF팀 김계영(45) 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코스콤이 해외시장 개척에 본격 나선 후 1년에 3개월을 해외에서 지내야 했다. 내년 1월 11일 라오스거래소 개장을 앞두고도 10월부터 3개월간은 라오스에 머물 예정이다. 라오스거래소의 경우 주식·채권 매매시스템과 정보시스템, 외국인시스템을 총괄 관리하며 증권사의 원장시스템, 예탁시스템과 연계를 통해 모든 경제 인프라를 ‘통째로’ 만들어야 하므로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한번 부여된 주민등록번호가 일생 동안 바뀌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라오스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갱신할 때마다 바뀐다. 이 때문에 주민등록증과 면허증의 주민등록번호가 다른 사람이 많다. 이렇게 주민등록번호가 다르면 그 사람이 얼마나 거래했고, 또 얼마나 세금을 냈는지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김 부장은 고민 끝에 증권시장에서는 우리 식으로 ‘거래소용 주민번호’를 만들자고 제안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통장 거래내역을 인쇄하는 통장인쇄기도 당초 한국식 마그네틱통장 시스템을 갖추기로 협의했지만, 막상 통장인쇄기를 구입할 때가 되자 라오스 측이 한국형 인쇄기의 가격이 비싸다며 태국식 인쇄기를 구입하자고 해 진땀을 뺐다. 이때도 설득을 통해 결국 한국식 통장인쇄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한국 자본시장 인프라 세계로 간다

    마지막 외관 단장이 한창인 라오스거래소.

    “라오스 사람들은 의견이 다르다고 화를 내는 경우가 없다. 대체로 느긋한 편이다. 목소리를 높이면 머리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하나씩 풀면 결국 일이 해결된다. 해외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직원들이 그 나라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김 부장이 박재현 전 라오스 대사가 쓴 책 ‘사바이디 라오스’ 일독을 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라오스나 캄보디아와 시장개척 방식이 달랐다. 라오스와 캄보디아 거래소는 한국거래소가 각국 정부와 공동투자를 하고 코스콤이 거래소 인프라를 공급했지만, 지난 7월부터 시작한 말레이시아 파생상품청산결제시스템(DCS) 구축사업은 한국거래소가 마케팅 및 영업을 담당하고 코스콤이 개발주체로 뛰어들었다. 앞서 채권시스템(ETP)과 이슬람상품매매시스템(BCH) 개발 성공으로 코스콤의 기술력을 인정받아 추가사업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세계 최초 이슬람상품거래시스템 개발

    코스콤은 2010년 3월 세계 최초로 이슬람상품거래시스템을 개발했는데, 샤리아(Shariah·이슬람 율법)에 부합하는 금융거래 때문에 고민을 거듭했다. 즉 이자 수수와 원금보장 약정, 율법에 금지된 아이템(술과 돼지고기 등) 투자 등 이슬람 율법이 금지하는 금융거래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의에 회의를 거쳐 만든 ‘작품’이 상품거래 시 은행이 개입해 매매를 대행하면서 금융 기능을 담당하는 무라바하시스템(CMH·Commodity Murabaha House)이다. 은행이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하고 상품을 구입해 일정한 마진을 붙인 뒤 구매자에게 재판매하는 거래로, 이때 추가된 마진이 금리가 된다. 율법을 준수하면서도 이자를 수수하는 묘안을 낸 것. 코스콤 대외협력부 정남섭 부부장의 설명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시스템 개발에 성공한 후 중동 등 이슬람 국가에서 코스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신흥시장을 공략할 때는 한국거래소와 공조해 시장제도는 한국거래소가 맡고 IT시스템은 코스콤이 맡는 윈윈 전략을 쓰고, 선진시장을 공략할 때는 증권사와 선물사를 대상으로 코스콤이 독자적으로 금융·보안 솔루션을 판매하는 투 트랙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

    이러한 ‘한국식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외화 획득이라는 점에서도 기여하고 있지만, 앞으로 한국거래소와 교차상장, 공인인증서비스(Sign Korea) 사업 진출 등 다양한 파생사업 진출이 가능해 효용 가치가 크다는 게 코스콤 측의 설명이다.

    김광현 사장은 “처음 진입하기는 어렵지만, 인지도를 쌓은 뒤에는 오히려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방어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면서 “잦은 출장과 문화적인 차이 등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자세로 코스콤의 비전인 ‘글로벌 금융IT 솔루션 리더’가 되는 그날까지 해외시장 개척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해외 사업을 전담하는 코스콤 해외개발TF팀 직원은 10명. 이 밖에 수십 명의 직원이 시스템 개발 중간 중간 협업을 통해 해외사업에 참여한다. 10월 10일부터는 라오스거래소 출범을 시작으로 모의시장 테스트를 할 예정이라 코스콤 직원 30여 명이 라오스행 비행기를 탄다.

    개발 중간에 돌발변수가 튀어나오면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데다 해외 출장까지 잦아서 개발팀에는 “아빠를 집에 보내달라”는 자녀들의 ‘항의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김 부장은 “이런 업무환경 때문에 부부관계가 나빠지는 직원들도 있어서 집안일은 무조건 아내 의견을 존중해주라는 가정사의 조언도 하고 있다”며 웃는다. 코스콤의 해외진출이 앞으로 해외에서 어떤 꽃을 피울지 주목된다.

    한국 자본시장 인프라 세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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