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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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8개월 준비 후 전격 ‘3대 세습’

김정일, 김정은 세력 키우기 치밀한 인사 … 후계체제 구축 처절한 가지치기 계속할 듯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0-10-04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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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8개월 준비 후 전격 ‘3대 세습’

    김정은의 후견인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중앙위 후보위원). 북한 노동신문에 첫 공개된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중앙위 위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중앙위 정치위원).(왼쪽부터)

    TV로 축구 경기를 관전하다 보면 선수들의 스피디한 드리블과 패스 끝에 공이 골대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을 목격하는 재미를 맛본다. 필자가 더 좋아하는 것은 골이 난 다음의 슬로 리피트 모션이다. 방송사 중에는 어떤 선수가 후방 어디에서 달려와 어디로 어시스트를 하고, 어떤 공격수가 수비수를 따돌리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어시스트를 골로 성공시키는지를 느린 화면에 실선 이동 궤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 화면은 어쩔 수 없는 결과론이다. 골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 이전 선수들의 행동이 의미를 가진다.

    9월 28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당 대표자회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줄 것임을 공식화했다. 김 위원장이 당 내에 포진시킨 다양한 엘리트는 모두 3대 세습 체제를 확립 및 공고화할 사명을 부여받고 미리 잘 선발된 인사임이 분명해 보였다. 이날 당직 인사에서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1월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이후 매우 치밀한 계획과 의도를 가지고 다양한 형식의 인사를 통해 엘리트를 선별해 승진시키고 강등시켰음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축구 경기의 슬로 리피트 모션을 보는 것처럼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1년 10개월 동안 북한에서 일어난 인사를 되돌아보면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김정일의 고도로 치밀한 ‘인사술’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전 정지작업 거쳐 사명 부여

    대표적인 인사가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과 여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부부다.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가 김정은 후계자설을 확신하지 못했던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를 소집해 돌연 장성택을 국방위 위원에 앉혔다. 김 위원장은 올해 6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3차 회의를 열어 장성택을 국방위 부위원장에 임명했다. 28일 당 대표자회에서 장성택은 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에 이름을 올리는 데 만족했지만, 실제로는 몸을 낮추고 자신의 측근들을 최고위직에 두루 배치하는 일을 해냈다. 자신을 배려한 매형의 의중을 받들어 3대 세습을 위한 엘리트 그룹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 지난해 6월 동생 김경희를 당 경공업부장으로 복귀시켰다. 같은 달 가극 ‘예브게니 오네긴’ 창조사업 지도를 위한 현지 지도에 동생을 데리고 나타난 이후 그해 말까지 17차례나 김경희를 현지 지도에 수행시키며 외부에 노출했다. 당시 정부 당국자들은 “늙고 병든 김정일이 동생을 옆에 두고 마음의 위로를 받으려 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김경희는 9월 27일 일약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으며 중앙 정치무대에 우뚝 섰고 당 대표자회에서는 단번에 당 중앙위 정치위원으로 선출됐다. 역시 김정은의 후계체제 확립에 동원된 것이다.



    이번 당 대표자회의 조명을 한 몸에 받은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군단장급인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냈지만 김정은에게로 권력 승계 작업이 본격화된 지난해 3월 일약 총참모장으로 승진했고, 이번 인사에선 인민군 차수 칭호와 함께 당 정치국 내 ‘톱 5’인 상무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영호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만경대혁명학원 동문이기도 하므로 친구를 통해 김정일의 마음을 사서 3대 세습을 지켜낼 군의 최고위직 자리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김 위원장이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를 강화하면서 체제유지에 필수적인 국가 내 ‘하드 파워(hard power)’의 책임자를 모두 국방위에 끌어들인 것도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인사 포석이라 하겠다. 당시 국방위 부위원장에 오른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군부, 국방위 부위원장), 장성택 당 행정부장(검찰과 사법기관, 국방위 부위원장)과 국방위원에 배치된 주상성 인민보안상(경찰),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간첩색출기관), 주규창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장거리로켓 등 개발),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군부) 등은 이번에 모두 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오극렬이 최대 패배자

    1년 8개월 준비 후 전격 ‘3대 세습’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김일철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올해 초 사망한 이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왼쪽부터)

    김 위원장이 올해 6월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내각 요직에 충성심 강한 당료를 전면에 포진시킨 것이나, 이에 앞선 4월 군 장성 100명에 대한 승진 인사를 단행한 것도 돌아보면 모두 아들 김정은을 위한 엘리트 그룹 형성이 목적인 인사였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김 위원장은 아들의 후계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사는 가차 없이 버렸다. 이번 인사의 최대 패자로 확인된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에 대해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오극렬이 김정은 후계 공식화에 반대하다 김정은, 장성택 등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후계자 지명 이후 군부 신진 실세인 김영철을 앞세워 당과 군의 대남 정찰조직을 통폐합해 이들 조직이 벌어들이는 달러를 수중에 넣으려 했다. 이 과정에 당 작전부장이던 오극렬이 극렬히 반발하다 김정은의 눈 밖에 난 것으로 알려졌다. 오극렬은 장성택과도 해외자금 유치 권한을 놓고 다툰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초 각각 교통사고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북한 당국이 발표했던 이제강, 이용철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사실은 김정일의 계획적인 인사에 따라 의도적으로 제거됐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강, 이용철은 특히 후계 문제를 놓고 2남 김정철을 두둔하며 장성택과 경쟁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80세가 됐다는 이유로 국방위원직에서 쫓겨난 김일철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도 마찬가지 이유로 쫓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김일철이 평소 입이 걸고 말실수가 잦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김정은에 대한 모종의 발언이 문제가 돼 시범 케이스로 밀려났을 수 있다.

    과거 김정일의 등장 시기(1970년대)와 유일지도자 등극 직후(1990년대) 등 북한의 최고지도자 교체 기간에는 어김없이 ‘낙오자’에 대한 숙청이 이뤄졌음을 감안하면 2년에 걸친 ‘승진 인사’가 끝난 뒤 앞으로는 대대적인 숙청 형식으로 김정일의 인사술이 발휘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3대 후계체제 구축에 걸림돌이 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인사는 사고사, 자연사, 철직 등의 형태로 정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고한다. 고위직 탈북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들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기 위한 김정일의 처절한 인사술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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