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3

2010.09.06

대학 구조조정 신호탄을 쏘는가

교과부 ‘블랙리스트’ 발표 예고에 대학가 ‘술렁’ … “2년 전 자료로 평가 공정성 결여” 반발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9-06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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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구조조정 신호탄을 쏘는가
    “그동안 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해 해온 노력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지방 사립 A대학은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로부터 ‘교과부 학자금대출제도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 심사 결과 B등급으로 판명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는 2009년 입시 평균경쟁률이 7대 1이 넘었던 A대학에게 날벼락이었다. 이 대학 관계자는 “학교에 ‘부실대학’이라는 낙인이 찍힌 건데 앞으로 어떤 학생, 학부모가 우리 학교를 지원하겠는가”라며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8월 25일 교과부는 “운영 상태가 좋지 않은 대학의 명단을 발표하고, 해당 대학 신입생에게 정부의 학자금 대출한도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평가를 맡은 심의위는 교과부, 기획재정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금융위원회 등이 추천한 15명 내외 공무원과 전문가로 구성돼 올 1월 출범했다. 심의위는 전국 345개 대학을 대상으로 △취업률(20%) △재학생 충원율(35%) △전임교원 확보율(5%) △학사관리(5%) △저소득층 학생 지원 실적(15%) △대출금 상환율과 등록금 인상 수준으로 산정한 재정건전성(20%) 등을 평가해 하위 15% 대학을 선정한 뒤 B, C등급으로 나눴다. B등급 대학의 신입생은 등록금의 70%까지, C등급은 30%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8월 31일 교과부 대학장학지원과 담당자는 “현재 해당 대학에 통보해 이의신청을 받아 종합하는 중”이라며 “대학 수시모집이 시작하는 9월 8일 전후로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이 지방 영세사립대인 B, C등급 대학은 조사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평가는 2008년 자료를 바탕으로 실시됐다. A대학 학생처장은 “10여 년 전 개교한 우리 학교는 한 해에 정원이 200여 명씩 늘어나는 등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2년 전 자료로 평가해 불이익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공정한 비교를 위해 대학공시지표 공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에 공개된 자료로 평가하다 보니, 각 대학이 2009년 제출한 2008년 자료로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실대학 낙인은 사실상 사형선고”



    대출금 상환율과 등록금 인상 수준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산정한 것도 논쟁 대상이다. C등급으로 선정된 B대학 입학홍보처장은 “재정건전성을 객관적으로 알려면 대학의 부채비율, 자산 상태, 이월잉여금 규모 등을 평가해 실제 투자 및 운영 여력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 교직원에게 월급 잘 주고 학교를 원활히 운영하는데 재정건전성이 부실하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C등급을 받은 C대학 관계자 역시 “지방 사립대학은 수도권 대학과 비교했을 때 기본적으로 등록금이 저렴했고, 현재 급속도로 발전해 재정 상태와 관계없이 등록금 인상폭이 높은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또한 평가에 신입생 충원율이나 중도탈락률이 아닌 재학생 충원율을 반영한 것도 반발을 사고 있다. 오래된 학교일수록 재학생 충원율이 높아 신생 학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10여 년 전 개교한 A대학은 2008년과 2009년에 신입생 충원율이 99% 이상이었으나 재학생 충원율은 84% 수준이었다. 또한 지방대 중 상당수가 최근 중국의 대학과 결연을 맺고 중국 학생들을 몇 년간 교육하고 있는데, 이들은 정규 편입학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지적한 대학도 있다.

    대학의 자구 노력이나 발전가능성 등을 평가하지 않은 것도 비판받는다. B대학 입학홍보처장은 “매년 입학 정원을 100여 명씩 줄이고 학과를 통폐합하는 등 구조조정을 해왔지만, 이런 노력은 지표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한 A대학 관계자는 “학교 앞에 고속전철이 생겨 수도권 접근성이 좋아졌고 특성화 학과도 경쟁력이 강화됐는데, 앞길을 막아버리니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왜 사립대학만 닦달하냐”

    대학 구조조정 신호탄을 쏘는가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인사 청문회에서 ‘대출 제한 리스트 공개는 대학 구조조정의 신호’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부실대학 명단이 발표되더라도 학생들에게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소득분위 8~10등급(소득수준 상위 30% 이내)에 드는 일반학자금 대출 희망자에게만 대출제한이 적용되고, 소득분위 7등급 이하인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일명 든든장학금) 희망자는 대학과 관계없이 100%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 재학생 역시 종전처럼 전액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 측은 “선의의 피해를 보는 학생이 생길 가능성이 충분하고, 학생 학자금 대출을 제한하는 것은 현행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을 위반한다”고 주장한다. 특별법 제1조에는 “취업 후 상환 학자대출제도는 현재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의지와 능력에 따라 고등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고 규정돼 있다.

    수시모집 지원을 일주일 앞둔 고3 교실은 혼란 그 자체다. 충청북도 모 고등학교 진학담당교사는 “교과부가 8월 31일경 발표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한 주 연기되면서 학생들이 고민이 많다. 안경광학과, 치기공학과 등 지방 사립대 내 취업률 높은 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도 많은데, 학자금 대출제한 학교에 포함되는지를 알 수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서울 모 여고의 진학담당교사는 “만약 발표가 나면 그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수시모집 시작 당일 리스트가 발표되면 학생들은 고민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지방 사립대 사이에도 ‘머지않아 고교 졸업생보다 대학 입학정원이 더 많아지므로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됐다. 다만 시장경제에 맡겨두면 자연스럽게 통폐합될 텐데, 국가가 돈줄을 조이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D대학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국·공립대학이 스스로 구조조정해 대학교육의 질을 높였고 이에 시장이 반응하면서 자연히 사립대학의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국·공립대학의 변화 없이 사립대학만 닦달하니 문제다”라고 말했다.

    교과부 측은 “이번 발표는 대학선진화위원회에서 진행하는 부실대학 구조조정과는 별도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와 관련한 사업”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8월 23일 이주호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출제한) 대학의 명단 공개가 대학 구조조정의 신호가 될 것”이라고 밝힌 만큼, 부실대학 구조조정과 별개라고 할 수 없다. 또한 교과부는 선정 대학에 공문을 보내 ‘대학평가와 대출한도액 설정의 연계는 1년 단위로 적용한다’고 했지만, 해당 대학들은 “언론에 일단 한번 발표되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C대학 관계자는 “교과부가 던지는 작은 돌멩이에 지방 사립대들은 영원히 살아나지 못할 수도 있다. 불이익은 재학생들의 몫”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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