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3

2010.09.06

8월의 깜짝쇼 … 北‘대화공세’에 나서나

김정일 訪中 이후 동북아 정세 변화 조짐 … 신의주 수해 물자 지원이 풍향계 될 듯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0-09-06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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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6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올해 두 번째 중국 방문은 여러 면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심혈관계 질환의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절 정도로 몸이 불편한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한 해 두 차례 중국을 방문한 것은 우선 강화된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반영한다. 북한도 중국도 급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북한은 중국이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을 후원하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를 바랐을 것이고, 중국은 북한이 천안함 폭침 같은 한반도에서의 무력도발 행위를 일으키지 않도록 관리하고 2008년을 끝으로 중단된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다시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두 번째 방중은 올해 6월 15일로 1막이 끝난 북한의 대외적 현상타파 정책의 제2막을 알리는 포성이기도 하다. 북한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2009년 미국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이후 공세 → 대화 요구의 사이클을 한 번 돌리며 현상타파를 시도했다. 3대 세습 프로세스의 시작과 2012년 강성대국 완성을 위해 미국과 한국의 ‘전략적 무시’ 대북정책을 깨고 다시 과거 좋은 시절과 같은 대북 경제지원을 이끌어내는 게 목표였을 것이다. 북한은 2008년 이후 대남 공세, 2009년 상반기 대미 공세를 펴다가 지난해 7월 이후 전방위 대외 유화정책을 취하면서 구애 공세를 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실패에서 ‘학습효과’를 얻은 미국과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남한의 보수 정부는 북한의 낡은 ‘때리고 어르기’ 전술에 말려들지 않았다. 2009년 8월부터 시작된 남한과의 정상회담 논의가 무위로 돌아가고 남한에 내줄 것은 다 내주고 원하는 것을 하나도 챙기지 못한 북한은, 마침내 올해 3월 26일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다. 북한은 이후 천안함 사건의 책임을 놓고 벌어진 국제무대에서의 여론전에 몰입하다 6월 15일을 기점으로 대외정책의 손을 놓은 듯 보였다. 김 위원장의 첫 방중은 천안함 책임공방이 한창이던 5월 3~7일 이뤄졌다.

    “6자회담 재개 희망” 복잡한 메시지

    김정일은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4박5일의 방중을 통해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30일 오후 8시를 기해 중국 신화통신과 북한 조선중앙통신으로 발표된 방중 일정과 김 위원장의 발언내용은 국제사회에 복잡한 신호를 보냈다.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27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긴밀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빠른 시일 안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또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빠른 발전을 이룩했고 어느 곳이든 생기가 넘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중앙통신은 6자회담과 개혁개방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 주석에게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 조중(북-중) 친선의 바통을 후대에게 잘 넘겨주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중국 동북3성 내 유적지를 돌아보고 중국의 3대 세습 후원과 경제지원을 얻어내는 ‘국내용’에 국한된 것으로 읽혔다. 그가 향후 어떤 대외정책을 펼 것인지를 암시하는 어떠한 대목도 북한 발표에는 없었다.

    북한의 대외적 현상타파 정책 2막의 방향에 대해 엇갈린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갈래는 한·미·일과 북·중의 대결구도가 강화될 것이라는 ‘동북아 신냉전’ 기류론이다. 실제로 방중 이후 한·미·일과 북·중은 대화 재개에 대한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넘긴 꼴이 됐다. 중국과 북한은 한·미·일을 6자회담으로 압박하면서 ‘천안함 사건은 잊자’고 주장하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은 김 위원장의 귀국 다음 날인 8월 31일 새로운 대북제재 조치를 내놓으면서 천안함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온 김영철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을 제재 대상 인물로 지목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대화 재개의)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천안함 사건의 출구전략과 남북, 북미 간 대화 재개를 기대할 수 있는 조짐도 감지된다는 점에서 전열을 정비한 북·중이 한·미·일을 상대로 대화 공세에 나설 시점이 머지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 직전은 물론 이후에도 중단하지 않고 미국 및 남한과의 대화를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남한에 대해서는 천안함 사건 직전인 올해 2월 말까지, 그리고 이후에는 7월부터 여권 정치인들을 통해 정상회담과 경제지원을 골자로 한 지난해 ‘임태희 비선 합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미 국무부 대북정책 ‘신선한 대안’ 논의

    당국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도 북한을 그대로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올해 11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북한 문제의 안정적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다. 한 고위 당국자는 “동해에 미국 군함을 띄워놓고 G20 정상회의를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오바마 미 행정부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 문제로 발목이 잡혔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최근 국무부 내에서는 대북정책과 관련한 ‘신선한 대안(fresh option)’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선(先)천안함 후(後)6자회담’ 기조를 점차 완화하는 것도 이런 정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예측에 필요한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일은 가능하다. 가장 가까운 이벤트는 9월 초로 예정된 북한의 당 대표자회다. 북한 지도부가 김정은 후계의 공식화,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하고 미국과 한국을 유혹하는 대외정책 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 언급을 할지 주목해야 한다. 북한이 대한적십자사가 제의한 신의주 수해 지원물자를 받아들이고 대승호와 선원들을 석방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풀지는 향후 남북관계의 가장 가까운 풍향계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손을 내민다면 중국과 합의한 비핵화 추가조치를 단행할 수도 있다. 영변 핵시설 가동을 다시 멈추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상주시키는 조치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미국과 남한은 북한의 대외적 현상타파 정책 2막에 발을 들여놓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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