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1

2010.08.23

딸 남자친구가 일흔 살? 웬일이니!

이해제 연출, ‘너와 함께라면’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8-23 15: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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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남자친구가 일흔 살? 웬일이니!
    학벌, 연봉, 외모…. 아무리 따져봐도 나보다 ‘스펙’ 좋은 남자친구.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그를 가자미눈으로 쳐다보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트집이다. 20년 넘게 애지중지 키운 딸을 시커먼 놈에게 주기 싫은 소심한 투쟁이랄까. 그런데 70대 노인이 스물아홉 살 딸의 남자친구라며 찾아온다면? 연극 ‘너와 함께라면’은 평온했던 집에 어느 날 나이가 ‘조금’ 많은 딸의 남자친구가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오늘은 도쿄 변두리 이발소 집에서 ‘나가시 소멘(흐르는 물에 국수를 띄워먹는 일본 전통풍습)’을 먹는 날. 그런데 딸 아유미의 남자친구 기무라 켄야가 약속도 없이 집을 방문한다. 일본 인기배우 기무라 다쿠야와 이름이 비슷해 당연히 잘생긴 ‘청년’ 사업가일 거라 생각했던 가족. 그런데 등장한 건 백발 노신사니 누군들 놀라지 않으랴. 아유미의 아버지는 딸의 남자친구를 보고 켄야의 아버지로 오해한다.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아내가 깜짝 놀랄까봐 두 딸과 짜고 켄야가 예비 시아버지인 것처럼 속인다. 마침 “새 어머니감을 보겠다”며 켄야의 아들 역시 방문했는데 아유미의 어머니는 그를 딸의 남자친구로, 켄야의 아들은 아유미의 어머니를 아버지 재혼 상대로 오해한다. 아유미를 전에 사모했던 이발소 종업원 역시 켄야의 아들이 아유미 남자친구인 줄 알고 질투의 주먹을 날리고, 켄야의 아들은 아버지의 연인인 아유미에게 호감을 느껴 데이트 신청을 한다. 모두 자신의 상식 안에서 상상하는 데다, 가족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아유미가 쉴 틈 없이 거짓말을 하는 통에 관계는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다.

    글로 설명해도 이해가 잘 안 되게 꼬일 대로 꼬인 줄거리. 하지만 극을 보면 저절로 무릎을 치게 될 정도로 척척 맞아떨어진다. 아유미와 여동생, 아버지의 순발력과 재치 덕분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부끄러워 계속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에 켄야는 상처받고, 아유미는 연인을 위해 마침내 용기를 내 진실을 말한다. 모두 힘을 합쳐 어머니의 ‘오케이 사인’을 끌어내려 애쓰고, 마침내 어머니는 “내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관없다”고 선언한다.

    이런 행복한 결론이 가능한 것은 모두 ‘진심’이기 때문이다. 너무 늙어서 대나무통 위로 흐르는 국수 덩어리 하나 못 집는 70대 켄야를 보며 ‘귀엽다’고 말하는 아유미,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기보다 어린 ‘예비 장인’에게 머리 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켄야, 딸과 아내 둘 다 다치지 않길 바라며 게이 흉내까지 내는 아버지까지. 마침내 마음을 먹은 어머니의 승낙은 ‘진심은 통한다’는 사소하지만 확고한 진리로 다가온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 극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배우들의 호흡이다. 척척 맞는 팀워크의 중심에는 아버지 역을 맡은 서현철이 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서 이미숙의 내연남 ‘털보 장씨’로 주목받았던 그는 늙은 사윗감에게 딸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70대 노인을 끊임없이 구박한다. 또한 브라운관에서 낯이 익었으나 최근 출연이 뜸한 켄야 역의 송영창, 아유미 역의 이세은 역시 반가운 얼굴. 요즘 대학로 극장에서 보기 드물게 40대 이상 부부 관객이 많은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부부가 손을 잡고 목젖이 보일 정도로 꺽꺽 웃는 모습은 기분 좋은 광경이다.



    극의 반전. 어머니는 딸과 나이 많은 사윗감을 허락한 것 같지만 켄야의 아들을 “우리 첫째 사위”라며 다독인다. 게다가 믿었던 둘째 딸까지 마음에 드는 사윗감을 데려오기는 글렀다. 오해는 여전하고 넘어야 할 산 또한 아직 많지만, 그런들 어떠랴. ‘즐거운 곳에서 날 아무리 오라 하여도’ 떠나지 않는 이곳은 영원한 내 편, 우리 가족이 사는 스윗, 스윗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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