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0

2010.08.16

소녀시대, 일본서 성공을 말해봐

9월 8일 ‘지니’ 발매하며 일본 데뷔 … 뛰어난 가창력과 외모 어떻게 소비될까?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입력2010-08-16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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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시대, 일본서 성공을 말해봐

    소녀시대는 ‘소원을 말해봐’의 일본어 버전인 ‘지니’로 데뷔한다. 이들의 뛰어난 ‘각선미’는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가 일본에 진출한다. 유니버설재팬 나유타웨이브와 계약을 맺은 소녀시대는 8월 25일 도쿄 오다이바의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쇼케이스를 갖고, 9월 8일 ‘지니(Genie)’를 발매하면서 정식 데뷔할 예정이다. ‘지니’는 ‘소원을 말해봐’의 일본어 버전이다. 과연 소녀시대는 일본 시장에서도 성공할 것인가. 대중가수의 성공 여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지만, 성공과 실패로 나눠 각각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성공 시나리오다. 현재 일본 대중음악 산업은 아이돌이 다시 뜨고 있다. ‘아라시’는 일본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었던 ‘스마프’에 필적한 만한 인기를 끌면서 싱글 앨범마다 50만~60만 장 팔아치우고 있다. 여기에 한국발 ‘동방신기’까지 가세해 아이돌의 판을 키운 상태.

    여성 아이돌 그룹은 더 주목할 만하다. 시장을 일으킨 주역이자 지지부진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한 ‘모닝구 무스메’는 결국 아성이 무너졌지만, 그 자리를 ‘AKB48’이라는 새로운 리딩 주자가 대체했다. 이 그룹은 음반 발매 첫 주에 50만 장을 팔며 슈퍼 아이돌로 등극했다. 이는 곧 소녀시대라는 ‘해외 상품’이 끼어들어도 바람몰이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소녀시대의 일본 매니지먼트를 담당할 유니버설재팬 측의 의욕이 대단하다. 유니버설재팬은 소녀시대 외에도 카라, 빅뱅을 관리하고 있다. 보아, 동방신기 등 될성부른 인재를 하나씩 골라 잠복했다가 기회가 왔을 때 일거에 띄우던 에이벡스와 다르게, 전반적으로 한국 아이돌 그룹 붐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외국 연예인, 여전히 특수 상품



    소녀시대의 음악 자체도 일본 시장에 잘 맞는다. 오히려 한국보다 ‘싱크로율’이 높다. 한국 아이돌 그룹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즐기는 ‘힙합’ 음악을 주로 하는 반면 소녀시대는 유로팝에 바탕을 둔다. 그런데 일본 주류 대중음악계는 유로팝에 근간을 둔다. 따라서 주류로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소녀시대 멤버들의 자질 역시 일본 아이돌보다 우수하다. 일단 일본 여성 아이돌보다 훨씬 예쁘다. 성숙미가 느껴지며 가창력도 뛰어나다. 일본에서 ‘아티스트형 아이돌’로 분류되는 동방신기처럼 소녀시대는 그저 편안한 즐거움만 선사하면 되는 일본 아이돌 그룹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음악성과 춤 실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공 가능성을 정확히 뒤집으면 소녀시대의 일본 시장 실패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일본 아이돌 산업이 다시 부흥하고 있고,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의 인기가 폭발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파이가 커져도 아이돌의 원칙은 언제나 같다. 버라이어티쇼 출연 등 예능 활동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 하지만 언어 장벽이 있는 소녀시대는 이 부분을 커버하기 어렵다. 아티스트형 아이돌로 인식된 동방신기는 일본어에 능숙해질 때까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여성 아이돌 그룹에게는 그런 인식이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실력파 테크노 뮤지션 나카타 야스타카의 곡을 완벽히 소화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 ‘퍼퓸’만 해도 버라이어티쇼에서 화려한 입담을 펼쳐 대중의 호응을 끌어냈다.

    유니버설재팬의 한국 아이돌 그룹을 붐업하려는 의도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외국 연예인은 일본에서 여전히 특수 상품에 속한다. 한꺼번에 한국 아이돌을 시장의 주류로 끌어낸다는 발상은 지나치게 과격하다. ‘겨울연가’의 성공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한류 드라마가 결국 쇠퇴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한국 아이돌 그룹을 수적으로 밀어붙였을 때 대중이 기대한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면, 더 빨리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유로팝 위주의 소녀시대 음악이 일본 시장에 더 잘 맞지만, 그렇기에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소녀시대가 어떤 변별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소녀시대의 음악이 일본 아이돌 시장에 내놓기엔 지나치게 수준이 높다는 점. 이는 꽤 중요한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나카타 야스타카는 퍼퓸에게 음악을 줄 때 ‘아이돌 음악치고 너무 세련됐다’는 소속사 아뮤즈의 지적을 받아 ‘촌스럽게’ 곡을 고쳤다. 일단 아이돌로 규정되면 아이돌 소비층이 원하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 접근해야만 하기 때문. 여기서 벗어나려면 아티스트형 아이돌로 인식돼야 하지만, 소녀시대의 경우 여성 그룹이기에 갈 길이 멀다.

    소녀시대의 자질 역시 같은 맥락에서 위험할 수 있다. 여성 아이돌 그룹을 ‘소비’하는 남성층은 편안한 소녀들을 선호한다. 즉 만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키가 작고 외모도 평범하며 춤, 노래도 그저 그런 소녀들이 인기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소녀시대는 ‘너무 잘나서’ 일본 남성층에게 불편한 존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가볍게 소비하기엔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쁘고 키 크고 노래도 잘하며 춤도 잘 춘다. 보아는 일본 진출 당시 뛰어난 가창력과 춤 솜씨로 아티스트형 아이돌로 인식되긴 했지만, 옆집 소녀처럼 ‘평범한’ 외모였기에 인기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제2의 동방신기 될 새 시장 만들어야

    소녀시대의 일본 진출 딜레마는 이처럼 복잡하다. 장점이 곧 단점이 되고, 단점을 좀 더 전향적으로 바라보면 장점으로 승화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소녀시대는 일본 데뷔 즉시 화제를 모을 수밖에 없다. 보아, 동방신기에 이어 빅뱅까지 일본 진출에 성공한 터라 미디어의 관심이 매우 높기 때문. 데뷔곡 ‘지니’ 역시 좋은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다. 외국 연예인이 자국 연예인보다 어려운 입장인 이유는 데뷔 때 성공이 곧 시장 안착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소녀시대도 데뷔 이후부터 앞서 이야기한 여러 불안 요소와 차례로 만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 소비층이 동경하는 섹시하고 파워풀하며 뛰어난 가창력을 뽐내는 아이돌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이는 주 소비층인 남성팬을 배제하는 것이라 커다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어떤 길을 가느냐는 소녀시대에게 달려 있다. 이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추후 한국 여성 아이돌 그룹의 일본 진출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동방신기 역시 데뷔했을 때는 일본에 아티스트형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인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예 멤버 본인이 ‘나는 음치’라고 외쳤던 스마프 등이 아이돌 시장 주류로 자리 잡고 있었다. 노래도 잘하고 음악성도 있는 건 아티스트의 몫이지, 아이돌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방신기는 악전고투 끝에 아티스트형 아이돌로 독보적 위상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소녀시대도 이미 형성된 시장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일본에서 탄탄한 발판을 얻을 수 있다. 일본 시장에서도 소녀시대 열풍이 지속될 수 있길 기대한다.

    소녀시대, 일본서 성공을 말해봐

    동방신기는 ‘아티스트형 아이돌’로 자리매김하면서, 보아는 옆집 소녀 같은 친근함을 내세워 일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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