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8

2010.08.02

“축구는 일상, 칼럼은 놀이터”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 씨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송인광 인턴기자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입력2010-08-02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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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는 일상, 칼럼은 놀이터”
    기자가 직접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며 심판자격증에도 도전했다. 다음에는 K3리그 선수 등록을 하고 정식 경기에 나섰다. ‘김현회 기자의 무한도전’은 대중에게 그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축구 칼럼부터 공중파 방송 출연까지, 이제 축구를 좀 봤다는 사람이라면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29) 씨의 얼굴이 낯익다.

    남다른 축구사랑은 그의 오른팔에 새겨진 한 노인의 얼굴 문신이 오롯이 드러낸다. 주인공은 원로 축구선수 고(故) 김용식 선생.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1936년 베를린올림픽, 19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해 8강 신화를 이룩한 주역이에요. 은퇴 후에는 축구 행정가로 변신, 후진 양성에 평생을 바치신 한국축구의 대부죠. 한국에 축구가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어요. 국내에도 기억해야 할 축구 영웅이 많습니다.”

    축구 칼럼니스트지만 그의 이력은 축구 칼럼과 거리가 멀다. 그의 전공은 작곡이다. 그가 자신의 글쓰기 재능을 축구와 접목하게 된 계기는 내셔널리그(K2리그)의 강자 ‘고양 국민은행’을 응원하면서부터다. 1, 2부 리그 간 팀 승강제가 없어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도 2부 리그에 맴돌아야 하는 고양팀의 억울한 상황을 알리고 싶었다.

    “내셔널리그 명예기자단으로 활동했습니다. 기자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었어요.”



    당시 김씨는 협회와 국민은행을 상대로 1인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의 튀는 언행은 협회의 눈 밖에 났고, 결국 명예기자직에서 해임됐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축구 잡지 ‘풋볼 위클리’가 손을 내밀면서 김씨는 본격적인 기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의 이력에서 보듯 그의 칼럼은 매우 날카롭다. 비판의 대상이나 에이전트가 직접 전화를 걸어 따지기도 한다.

    그에게 축구는 ‘일상’이다. 칼럼을 재미있게 쓰기 위해 TV나 영화를 볼 때도 어떻게 하면 저 아이템을 글에 녹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도, 밥상머리에 앉아서도 온통 축구 이야기다.

    “차 한 대를 끌고 오늘은 전주에 가서 경기를 봐요. 끝나면 전주비빔밥을 먹죠. 다음 날은 다시 차를 끌고 부산에 가서 경기를 봐요. 그리고 회를 먹죠. 평생 축구만 보고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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