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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味食生活

그놈의 꼭지, 맛없는 수박 만든다

잘라야 할 수박 꼭지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그놈의 꼭지, 맛없는 수박 만든다

그놈의 꼭지, 맛없는 수박 만든다
최근 수박 산지 선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열심히 취재를 하고 있는데, 공무원 둘이 나타났다. 그들은 선별장의 사람들에게 “윗분에게 드릴 수박을 찾는데 맛있는 것으로 다섯 통만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그 자리에는 20년 수박 재배 경험의 작목반장이 있었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슬쩍 발을 뺐다. “내 수박은 다 나가고 남의 수박을 골라야 하는데, 거참.” 공무원은 “반장이 추천해주면 비파괴 당도계로 검사해 고르면 될 것’이라 제안했지만, 반장은 당도계가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대충은 맞지만 껍질 두께며 수분도에 따라 당도계 숫자가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철저하게 관능으로만 선별하는 미션이 주어진 셈.

선별장 안에는 ‘수박 도사’가 많아 보였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도사는 선별기 라인에 서서 수박을 손으로 두들겨 상했거나 덜 익었거나 속이 빈 것을 고르는 작업을 하는 분이었다. 하루 종일 이 일만 해서 관절 이상이 생겼다며 손가락에 테이프를 돌돌 감고 있었다. ‘생활의 달인’에 나와야 할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분도 두 공무원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했다.

수박 고르기 정말 어렵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몇 가지 방법으로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수박 재배 농민과 상인 등을 통해 알아낸 맛있는 수박 고르는 요령이다. 아니, 실패 확률을 줄이는 방법이다.

첫째, 배꼽을 확인해야 한다. 수박 꼭지 반대편에 있는, 수박꽃의 자리가 배꼽이다. 이 배꼽이 큰 것은 심이 박혀 있을 수 있다. 배꼽이 큰 수박은 수박꽃을 수정할 시기를 놓친 것인데, 이런 작은 일이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둘째, 하얀 분이 묻은 수박이 당도가 높다. 수확과 유통 과정에서 많이 닦여 나가지만 그래도 흔적은 있다. 분이 있는 포도가 당도가 높은 이치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셋째, 검은 줄무늬가 진한 수박을 고르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여기에 더해 그 옆의 녹색 줄무늬도 봐야 한다. 녹색의 줄이 8월 나뭇잎 색처럼 짙을수록 잘 익은 것이다. 또 검은색과 녹색의 줄무늬 간격이 일정할수록 좋은 것이다. 한쪽이 비뚤어져 자라면 줄무늬 간격이 불규칙해지고 내용물도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두들겨보고 고르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철저히 ‘감’으로 하는 일이라 고수가 아니면 어렵다. 맑고 탱글한 느낌의 소리가 나야 한다. 실제 두들겨보면 그 소리가 그 소리라 구별이 쉽지 않아 이 방법은 포기하는 게 좋다.

수박은 꼭지를 붙여 유통된다. 꼭지는 싱싱한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실수로라도 꼭지가 떨어지면 ‘등외’로 밀려 저가품이 된다. 그래서 농민들은 “수박이 2만 원이면 꼭지가 1만 원”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 꼭지 때문에 소비자는 맛있는 수박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꼭지는 줄기다. 꼭지를 남겨놓으면 수박은 꼭지로 호흡을 하게 된다. 잎과 뿌리가 없으니 들어오는 영양분은 없고 오직 이 꼭지를 통해 수분과 영양분이 밖으로 나가는 일만 남는다. 꼭지는 말라가는 제 몸을 지탱하려고 수박 몸통의 수분과 영양분을 끌어다 쓴다. 따라서 꼭지가 붙어 있으면 보관성도 상당히 떨어진다. 그러니 수박 꼭지는 잘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수박은 모두 이 쓸데없는 꼭지가 ‘당당히’ 붙어 있다. 소비자가 싱싱하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이 꼭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때 일부 수박 농가가 꼭지를 제거해 판매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꼭지 없는 수박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꼭지 없는 수박을 내놓은 적이 있는 농민들을 만나보니 참 묘한 말을 했다. 농민들도 꼭지 없는 수박을 내면서 등외로 버려야 할 것을 슬쩍 끼워넣을 수 있으니, 꼭지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신이 쓸데없는 꼭지로 달랑달랑 남아 있다. 일본의 수박은 꼭지 없이 유통된다.



주간동아 2010.07.26 747호 (p83~83)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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