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7

2010.07.26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 그래도 지른다, 왜?

복권 구입 확률 과대평가인가, 도박사의 오류인가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07-26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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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 그래도 지른다, 왜?
    “여보, 우리도 복권 사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내 캐머런이 걱정스럽다는 듯 남편 마크를 쳐다본다. 마크는 힘없이 손가락으로 TV 화면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쉰다. 마침 복권 판매대마다 장사진을 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톱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매진으로 미처 복권을 사지 못한 사람들의 행패 때문에 경찰력이 동원됐다는 보도가 뒤따른다.

    1988년 7월 미국 전체가 ‘파워볼’ 복권 때문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21개 주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던 ‘파워볼’ 복권이 계속 당첨자를 내지 못해 당첨액이 무려 2억2000만 달러(약 2500억 원)로 뛰어오른 탓이다. 5달러짜리 복권 한 장으로 여차하면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 보니 곳곳에서 복권 구매를 위한 전쟁이 벌어졌다. ‘파워볼’을 운영하지 않는 곳에선 인근 주(州)로 복권 구입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로또 1등 당첨될 확률 814만분의 1

    복권 열풍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 엄청난 당첨금에 매료돼 복권을 구입한다.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명 중 약 2명에 해당하는 640만 명이 매주 복권을 구입하고 평균 7018원을 구입비로 사용한다. 하지만 숫자 6개를 맞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분의 1에 불과하다. 맑은 날에 벼락 맞을 가능성보다 낮으니 로또 1층 당첨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이런 복권을 사람들은 그저 재미삼아 구입한다고 말한다. 큰돈 들이지 않고 일주일이 행복할 수 있다면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재미’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단순히 재미 때문에 수십 장씩, 한 주도 빼놓지 않고 복권을 사는 것일까? 혹자는 사람들이 ‘위험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1000원을 기준으로 ‘위험을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궁색한 답변으로 들린다. ‘희박한 확률임에도 사람들이 복권 구매에 아낌없이 돈을 지불하는 이유’를 경제학과 심리학 그리고 이를 조합한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통계학적으로 복권 당첨금의 기댓값(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얻어지는 양과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곱해 얻어지는 가능성의 값)은 복권 가격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1000원을 주고 복권을 사봐야 500원 남짓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기댓값 이론’으로는 전혀 설명이 안 된다.

    이때 기존 주류경제학에선 ‘기대효용 이론(행동의 귀결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경제주체의 판단은 결과에 관한 효용의 기대치에 입각해 이루어진다는 이론)’으로 복권 구매 이유를 설명했다. 복권을 구매해 얻을 수 있는 기대효용이 구입하지 않을 때의 기대효용보다 크다면 합리적 인간들은 복권 구매라는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

    이에 대해 ‘인간이 반드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반론을 제기하며 복권 구매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났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카너먼(Kahneman) 교수와 그의 동료인 트베르스키(Tversky)는 인지심리학을 바탕으로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한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을 주창하며, 복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실험했다.

    복권 생산유발효과 2조3656억 원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 그래도 지른다, 왜?

    2008년 유럽 로또복권이 10주째 당첨자를 내지 못해 당첨금이 2억2000만 달러(약 2500억 원)까지 올라갔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의 담배 가게에서 한 복권 구입자가 복권 숫자를 살펴보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당첨될 확률을 주관적으로 해석해 자신이 기대할 수 있는 만족과 효용을 계산한 결과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0.01은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상당히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과대평가하고, 0.99와 같은 높은 확률은 1보다 낮다는 생각에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이때 중간지점은 통상적으로 확률 0.36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객관적 확률에 따른 기댓값은 매우 낮지만 자신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확률에 의한 기댓값은 높다. 다시 말해 로또 당첨확률인 814만분의 1은 중간지점인 0.36보다 훨씬 낮은 상태지만 구매자가 당첨 가능성을 과대평가함으로써 기꺼이 복권을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위험을 선호하는 사람은 더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회피하는 사람은 더 비관적으로 해석할지 모른다. 연세대 경제학과 정갑영 교수는 “당첨금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의 주관적 평가는 더욱 비이성적이 될 것이다. 도박사가 룰렛을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복권을 사는 사람들도 복권 판매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도박사의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복권의 효용가치가 심리적 만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복권을 구입하면 이는 국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복권은 ‘복권 판매→복권기금 조성→복권기금 공익사업 사용’이라는 사이클을 거치면서 경제적 효과를 미친다. 한국은행의 ‘2005년 산업연관표’(2008년 12월 발표)를 바탕으로 복권사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복권구매 고객의 총 지출액 1조4098억 원을 기준으로 분석해보면 생산 유발액은 2조3656억 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1조3210억 원, 수입 유발액은 888억 원, 취업 유발효과는 2만6000명에 이른다.

    이뿐 아니라 정부는 복권 발행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막대한 재정수입을 확보하게 된다.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은 복권을 두고 ‘이상적인 재정수단’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한국 사회에서 복권은 1990년대 초반까지 서민주택 건설, 올림픽 등 특정 목적 사업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톡톡히 역할을 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는 “한국 정부도 복권을 손쉬운 재원조달 방법으로 즐겨 쓴다. 그 예 중 하나가 주택복권인데, 1969년부터 현재까지 이를 통해 수천억 원의 주택건설기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들 처지에서 복권은 일종의 자발적인 세금이다. 특히 저소득층에서 복권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은 탓에 상당히 역진적인 조세로 평가받는다. 세금을 더 거둘 경우 강력한 조세저항에 부딪히지만 복권 구입은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까닭에 국가가 재원을 확보하는 데 정치적 부담이 없다. 또한 복권은 기금 조성을 통해 저소득층 주택 지원, 문화사업 지원, 다문화 가정 지원 같은 사업을 벌여 일정 부분 소득재분배 기능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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