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4

2010.07.05

책의 전설 50권 중 몇 권 읽어봤니?

‘책 vs 역사’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07-05 13:3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책의 전설 50권 중 몇 권 읽어봤니?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 뤼디거 마이 지음/ 추수밭 펴냄/ 336쪽/ 2만2000원

    책 읽는 시간은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심심할 땐 ‘오징어 땅콩’, 심사가 어지러울 땐 ‘자가 테라피’, 스스로가 못마땅할 땐 ‘반성의 거울’로 얼굴을 바꾼다. 책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 이불 속에서 평생 책만 읽고 싶다가도 금세 한 줄을 넘기지 못하고 스르륵 잠든다. 그러면서도 ‘책’과 ‘나’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우리는, 사람은 왜 책을 읽는 걸까.

    ‘책 vs 역사’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나침반 겸 애피타이저 같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널렸는데 넌 왜 책을 읽니”라는 듯한 서문으로 시작,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책의 전설’ 50권을 소개한다. 선뜻 도전하지 못한 고전부터 해리 포터 같은 동시대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한 책을 한데 모았다.

    저자는 50권의 책을 연대기별로 소개한다. 고대에서는 ‘사자의 서’ ‘일리아스’ ‘논어’ ‘기하학 원론’ ‘구약·신약 성서’ ‘신국론’ 등 7권이 목차에 올랐다. 첫 페이지를 장식한 ‘사자의 서’는 기원전 2350년 이집트에서 나온 최초의 책이다. 일종의 하계 여행서로, 저승길에 명심해야 할 165편의 금언이 실렸다. 고대 이집트인의 내세관과 삶을 대하는 태도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 뒤를 잇는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최초의 이야기이자 고대 그리스의 베스트셀러로, 동양의 ‘삼국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트로이 전쟁을 중심으로 아킬레우스·헥토르·파리스 등의 사랑, 전쟁, 음모가 펼쳐진다. 희생, 복수, 사랑 등 현존하는 모든 플롯의 어머니로 통하는 작품.

    중세에서는 ‘코란’ ‘벽암록’ ‘니벨룽겐의 노래’ ‘독일어 설교’ 4권이 소개된다. 기술의 발달로 중세에 들어 책은 차츰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기원후 100년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자 책의 제작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화형대에서 불태워지는 이단 서적도 늘어갔다. ‘낭독하다’라는 뜻의 ‘코란’은 아랍어로 된 설교집이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하느님의 계시를 전한 내용으로 구성됐으며 기원후 650~656년에 쓰였다. 그리스에는 ‘일리아스’, 프랑스에는 ‘롤랑의 노래’가 있다면, 독일에는 ‘니벨룽겐의 노래’가 있다. 1200년경 출간된 이 작품은 ‘지크프리트의 죽음’ ‘에첼 왕의 궁성에서 일어나는 부르군트족의 몰락’ 등으로 구성된 영웅서사시다. 미상의 작가는 이 작품에서 문학적인 힘과 노련함으로 좌절과 몰락을 탁월하게 그리고 있다.



    근대에서는 ‘유토피아’ ‘로미오와 줄리엣’ ‘방법서설’ ‘로빈슨 크루소’ ‘순수이성비판’ 등 19권이 목록에 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로맨스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매력은 여러 가지 감상이 어우러졌다는 것. 비극과 희극, 숭고와 저급이 뒤섞여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1595년 탄생한 이 작품은 당대 연극무대는 물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영화로 각색되는 등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다. 현대에서는 ‘정신현상학’ ‘프랑켄슈타인’ ‘공산당 선언’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꿈의 해석’ ‘반지의 제왕’ 등 20권이 실렸다. 당대 청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본격적인 정신분석 시대의 장을 연 ‘꿈의 해석’, 수십 년간 이어진 문화혁명의 불씨를 지핀 ‘마오쩌둥 어록’ 등이 상세한 배경설명과 함께 소개된다.

    “책은 사람과 똑같은 존재다. 일단 세상에 태어나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러다가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시대마다 금서가 된 책은 다르지만, 그 이유는 같다. 바로 책 속의 정신이 퍼져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리고 금지할 만큼 두려운 생각은 대개 인류사를 획기적으로 바꿀 만한 것이다. 그런 책은 단순한 종잇장을 넘어 역사가 된다. ‘책 vs 역사’는 그런 책들을 쓴 지은이와 내용을 야무지게 소개하고 있다.

    책은 원 텍스트로 봐야 한다지만, 때론 해설서나 요약본이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한다. ‘책 vs 역사’는 역사가 된 책들을 한 권으로 훑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이 책으로 시작해 테트리스처럼 50권을 차곡차곡 정복해나가는 건 어떨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