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2

2010.06.21

원조 홍대 여신의 성숙한 목소리

이아립 ‘세 번째 병풍 -공기로 만든 노래’

  • 현현 대중문화평론가 hyeon.epi@gmail.com

    입력2010-06-21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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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조 홍대 여신의 성숙한 목소리

    이아립의 산뜻한 음악은 녹색과 잘 어울린다.

    2008년경부터 ‘홍대 여신’이 화제로 올랐다. 고양이, 홍차, 꽃, 나비가 난무하는 가사에 소녀적인 감성, 하늘거리는 멜로디라인으로 무장한 ‘미녀’ 여성 보컬리스트가 잇따라 등장해 나름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진정한 ‘홍대 여신’의 칭호를 받을 만한 아티스트는 이아립 한 명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아립은 홍대 앞 모던록 2세대라고 볼 수 있다.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등 이제는 ‘대가’의 위치를 넘보는 무시무시한 밴드들과 크라잉 넛, 노브레인이라는 대중적 파급력을 가진 록 밴드들을 선배로 두고 등장한 2세대 밴드로는 줄리아 하트와 스웨터를 들 수 있다. 이아립은 신세철과 함께 스웨터를 이끌었던 보컬리스트 겸 작곡자다. 이아립과 신세철의 조화는 스웨덴 록밴드 ‘The Cardigans’의 노래 같은 1990년대의 달콤한 팝을 한국화했다. 다양한 악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록적인 박력을 잃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아립의 존재감이었다. 독특한 비음과 어딘가 모르게 중성적인데도 섹시한 느낌의 음색을 지닌 이아립은 뛰어난 비주얼 감각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이아립이 미술가이기 때문이다. 한국 모던록계 명곡을 꼽는다면 결코 빠질 수 없는 쾌작, ‘별똥별’이 수록된 1집 ‘Staccato Green’을 시작으로 3장의 앨범을 낸 스웨터는 2005년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이아립은 자신의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직접 세운 레이블 ‘열두 폭 병풍’에서 만들기 시작한 앨범 중 이번 ‘공기로 만든 노래’는 세 번째 ‘병풍’이다.

    이아립이 이전까지는 미술 작업의 병행으로 음반을 발표했다면, 이번에는 순수하게 음악을 위한 음반을 내놨다. 그리고 미니멀한 악기 배치로 자신의 목소리를 더욱 부각했다. 그 특이하면서도 정감 가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건조하면서도 청아한 멜로디라인이 앨범 전체를 휘감고 있다. 자연의 배경음 속에서 산책하며 노래하는 듯한 인트로 ‘흘러가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프로모션 트랙으로 선정된 ‘이름 없는 거리 이름 없는 우리’는 하강하는 베이스 음이 우울한 정서를 자극하는 기타 아르페지오 위에 ‘회상’이라는 콘셉트에 어울릴 만큼 성숙한 목소리가 얹혔다. 이것은 이아립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알게 하는 소중한 노래다. 단정하게 들려오는 멜로디라인은 은근 화려하고, 소박하게 들려오는 하모니카 솔로 역시 생각보다 화사하다. 꾸미지 않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을 보는 느낌이다. 캔사스의 명곡 ‘Dust In The Wind’, 케런 앤의 히트곡 ‘Not Going Anywhere’를 통해 익숙한 ‘스리 핑거 주법’의 기타 아르페지오가 인상적인 ‘신세계’나 발랄한 멜로디의 ‘꿈의 발란스’ 역시 귀 기울일 만하다.

    이아립이 없었다면 지금의 ‘홍대 어린 여신’들은 어떤 노래를 들으며 사춘기를 보냈을까. 스웨터가 없었다면 브로콜리 너마저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했을까. ‘세 번째 병풍 -공기로 만든 노래’는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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