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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로코코 한복’

‘방자전’ 의상디자이너 정경희 씨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로코코 한복’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로코코 한복’
김대우 감독의 영화 ‘방자전’ 시사회. 여느 관객처럼 이야기에 취하지 못하고 불안한 시선으로 옷자락만 좇는 이가 있다. 바로 영화 의상을 맡은 디자이너 정경희 씨다. 그는 “감독은 편집 상태를, 배우는 연기를, 촬영감독은 화면을 보느라 정신없다. 나도 어떤 의상이 들어가고 빠졌는지 점검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의상은 ‘몸에 걸치는 것’ 이상이다. 캐릭터를 설명하는 동시에 대사로 드러내지 못한 부분을 보충하는 ‘시각 사전’ 노릇을 해야 한다. 인물, 시대 배경, 스토리 어느 하나 소홀해선 안 되는 까다로운 작업. ‘방자전’ 대본을 받고 정경희 디자이너의 머릿속에는 실타래가 한 움큼 엉켰다.

“모방을 하기보다 상상으로 콘셉트를 잡는 편이에요. ‘방자전’은 기생의 이미지를 통해 전체 그림을 그려갔어요. 무겁지 않으면서도 다채롭고 밝은 이미지를 고민하다 로코코 시대를 떠올렸어요. 마침 ‘시대의상으로 보여주지 못한 요소를 적극 표현해달라’는 김 감독님의 요청도 있었고요.”

큰 그림을 잡은 뒤에는 캐릭터를 분석했다. ‘방자전’은 춘향전을 뒤집어본 이야기다. ‘몽룡-춘향-방자’의 삼각관계에서 신분에 괘념치 않는 몽룡은 야심가로, 정절의 대명사인 춘향은 신분상승에 목매는 영악녀로 탈바꿈했다. 자연히 의상에도 마음껏 상상력을 덧입혔다.

“춘향에게는 마리 앙투아네트 스타일 한복을 입혔어요. 허리가 잘록한 풍성한 치마에 가슴이 비치는 짧은 저고리를 만들었죠. 무게감을 덜고 화사함을 더하기 위해 시폰 소재와 파스텔톤 색을 주로 썼고요. 결과적으로 이국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한복이 탄생했죠.”



정 디자이너는 롯데월드 퍼레이드 의상 작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섬유를, 대학원에서 무대의상을 전공한 뒤 8년간 회사에서 신나게 옷을 만들었다. 하지만 색감 튀는 옷만 다루다 보니 갈증이 왔다. 회사를 나와 영화 ‘유리’를 시작으로 무대의상을 시작했다. 영화 ‘혈의 누’ ‘음란서생’ ‘신기전’, 드라마 ‘탐나는도다’ 등 사극 작업을 주로 하며, 2005년과 2006년 대종상영화제 의상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영화, 연극, 뮤지컬, 드라마 등을 넘나들면서 사무실도 열었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의 사무실에서 직원 6명과 동고동락하며 옷을 만든다. 사무실에는 각종 고전의상과 천 조각, 실, 페인트, 사포 등이 널려 있었다. 평소 기본 작업을 하다가 작품에 들어가면 2개월 정도 집중 작업을 한다. 옛날 느낌을 내기 위해 기름 묻히고, 사포질하고, 칼로 찢는 ‘올드 에이징(old aging)’ 작업이 가장 힘들다.

한국 영화계에서 의상 담당은 아직 개념 정리가 덜 끝났다. 의상감독, 의상보, 의상 등 자막에 올라가는 명칭도 가지가지. 자막에서 빠지는 일도 더러 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데다 변변한 협회도 없어 생긴 현상이다. 정 디자이너는 “몰아치듯 영화 한 편을 끝내면 허무한 마음이 든다. 그럴 때 영화를 보면서 위안을 얻지만 자막에 이름 한 줄이 없을 때는 서운하다. 의상감독보다 의상디자이너라는 호칭이 좋다”고 말했다.

앞만 보며 달려온 세월을 돌아보니 어느새 아이들은 훌쩍 자라 있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19세 아들과 중학생인 15세 딸의 이름은 세웅과 유경. “바쁜 엄마를 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외롭진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해요. 저는 대단한 의상디자이너가 아닌 잡초 같은 사람입니다.” 미묘하게 떨리는 그의 눈동자가 아이들에게 하고픈 속마음을 대신 전했다. 카리스마 있는 의상디자이너에서 인생 선배로 모드를 전환해 들려준 워킹맘 스토리는, 마음에만 담아두련다.



주간동아 2010.06.14 741호 (p92~92)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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