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9

2010.05.31

월드컵의 추억과 악몽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05-31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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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한일월드컵이 가끔은 남의 일 같습니다. 축구를 누구보다 좋아하고, 열광적인 팬이라 자처하지만 같이 나눌 만한 추억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서둘러 군대를 간 탓에 2002년 6월 기자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좁은 내무실은 작은 TV 하나를 둘러싸고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안정환의 페널티킥 실축, 그리고 0대 1로 끌려가다 마침내 설기현의 동점골로 연장전에 들어선 상황. 그 중요한 순간에 초소 경계근무 차례가 왔습니다. “차라리 월드컵을 보고 군대를 올걸” 하는 후회감에 몸서리칠 때, 긴급히 초소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야! 이겼다, 이겼어. 안정환이 골든골을 넣었다!”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선임병과 얼싸안으며 환호를 질렀습니다. 한국팀이 승승장구하며 4강 신화를 만들 때 2차 연평해전이 일어났습니다. 해군은 바뀐 교전수칙 때문에 북한군이 영해를 넘어와도 선제공격을 하지 못했습니다. 선체를 밀어내는 식으로 대항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결과 6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월드컵의 추억과 악몽
    더 실망스러운 건 DJ 정부의 태도였습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불과 30분 거리인 국군수도통합병원을 애써 외면하고 다음 날 있을 터키전을 관람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장례식에는 대통령은 물론 총리,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자국의 젊은이가 공격을 받고 죽었는데도 군 통수권자가 빨간 넥타이를 맨 채 손뼉 치며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은 당시 군인이던 기자에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월드컵이 열흘 안으로 다가오면서 다시 한 번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릅니다. 공교롭게도 현재 상황이 2002년과 유사합니다. 천안함 침몰사고로 46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고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 되는 대한민국’은 월드컵 경기 때만 외치는 구호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월드컵도 좋지만 그 열기에 천안함 사고가 묻혀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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