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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 6·2지방선거 현장 속으로 03

“추모는 추모고, 선거는 선거지예”

‘盧風 진원지’ 경남 김해시 ▶ 노무현 1주기 민심은 아직 뜨뜻 미지근

“추모는 추모고, 선거는 선거지예”

5월 18일 오전 김해국제공항. 막 착륙한 비행기 창밖으로 빗물이 아롱거린다. 김해 시내를 가로질러 봉하마을로 향하는 동안 조금씩 굵어지던 빗줄기는 도착 즈음 장대비로 변했다. 그럼에도 마을 주차장은 각종 번호판을 단 대형 관광버스로 빼곡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떨어진 부엉이 바위가 여기가, 저기가?”

부엉이 바위로 향하는 등산로 출입구. ‘마을 한 바퀴’를 끝낸 어르신들이 투어를 마무리하는 곳이다. 경남 사천, 경북 칠곡, 전북 정읍…. 서거 1주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전국에서 하루 2000여 명이 마을을 찾는다. 1주기인 5월 23일에는 다양한 추모행사도 열린다.

김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고 자라고 잠든 도시다. 그에 대한 지역민의 애정과 자부심도 각별하다. 이런 특성은 김해의 독특한 정치색을 낳았다. ‘1번’이면 만사형통인 한나라당 텃밭 경남에서 김해는 ‘경남이되 경남이 아닌’ 별종이다. 2004년 노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갑을지역 모두 열린우리당이 승리했고, 최철국 현 의원(2선)은 경남 유일의 민주당 의원이다.

김해시장 선거는 현재 3강 구도다. 한나라당 박정수(64) 후보, 민주당 김맹곤(64) 후보에 현 시장인 무소속 김종간(59) 후보가 가세했다. 5월 16일 KBS 창원총국 여론조사 결과는 박빙. 세 후보는 차례로 28.2%, 23.7%, 21.1% 지지율을 보였다. 김맹곤 후보는 “생전 노 대통령이 출마를 권했다”며 노골적으로 노풍 활용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6·2지방선거에서도 ‘노풍’이 불까. 김해 시장선거로 풍향과 풍력을 가늠해봤다.



“1주기인 이번 주말 지나면 분위가가 확 바뀔 겁니더.”(내외동 재래시장 한약재 가게 A씨)

“추모는 추모고, 선거는 선거지예. 김해는 원래가 한나라당입니더.”(내외동 문구점 이수범 씨)

하루에 2000여 명 봉하마을 방문

내외동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민심은 오히려 오리무중이었다. 한 집 걸러 의견이 엇갈렸다. ‘저 집은 한나라, 그 건너편은 노무현.’ 집집마다 색깔을 공유할 정도다. A씨는 “올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봉하마을에 갈 것”이라며 ‘노풍’을 확신했다.

“김해는 한나라당이 강세지만 2000년부터는 여야가 ‘삐까삐까’ 했심니더. 탄핵 때부터는 노 대통령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예. 이번 주말에 언론에서 추모 보도를 하고 하면 분위기가 학실히 바뀔 깁니더.”

이수범 씨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노풍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노무현이라는 특수성보다 한나라당이라는 전통이 우세하리라는 것.

“김해지역에서 노풍이 불었다고 해도, 재·보궐선거 한 번에 최철국 의원 정돕니더. 유시민을 봐도 노풍 파괴력이 별 거 아닐 거 같네예. 술자리에서도 그래 간 거는 안타까워도 노무현은 아니라는 사람이 많습니더.”

생선가게를 하는 강정숙(49) 씨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는 “노 대통령 생전에는 한나라당을 지지했는데, 지금은 조금 흔들린다. 그래도 중앙과 연결이 잘 돼야 우리한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정치에 관심 많다는 김해 토박이인 40대 공무원 A씨는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노무현 좋아하던 사람은 (노풍이) 분다 카고, 아닌 사람은 안 분다는 기라예. 노풍이 김해로부터 불어나갈 것 같지만 아닙니더. 중앙에서 매스컴도 타고 노풍노풍 해야 실감하지, 여기서는 잘 모르지예. 봉하마을도 외지인이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이 주로 찾지….”

“추모는 추모고, 선거는 선거지예”

김해 봉하마을에는 지금도 하루 평균 2000여 명의 방문객이 다녀간다.

김해는 지역별로 정치색이 확연히 갈린다. 선거구로 치면 김해갑은 여당, 김해을은 야당세가 강하다. 현재 지역구 의원도 갑은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 을은 민주당 최철국 의원이다. 이런 지역 온도차로 “노풍은 외곽에서 불어온다”는 말도 나온다. 봉하마을 근처 식당에서 일하는 박성완(46) 씨는 김맹곤 후보의 약진 이유를 노풍이 아닌 지역색에서 찾았다.

“장유·진영 신도시는 젊은 외지인이 많습니더. 부산, 창원에서 온 근로자가 태반이라서 민주당과 민노당이 강세지예. 호남권에 본적 둔 사람도 많고예. 거기에 노 대통령 당선까지 더해져서 시 전체적으로다 야당 지지도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심니더.”

한나라당 표가 갈리는 것도 민주당으로선 호재다. 현직 김해 시장인 김종간 후보는 이번에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를 두고 각종 루머가 떠도는 가운데 김 후보는 시장직을 내놓고 출마 의사를 밝혔다. 5월 18일 열린 사무실 개소 행사에서 그는 “억울하게 공천에서 밀렸다. 도와달라”며 눈물로 동정표를 호소했다. 한나라당 박정수 후보 캠프의 고준석 사무장은 “김종간 후보와 한나라당 표가 갈리면서 어부지리 격으로 민주당만 호재다. 당분간 김종간 후보를 신경 쓰겠지만, 20일 이후에는 당 대 당 구도로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 갔는데 덕 볼 거 있겠나”

하지만 민주당 후보의 파괴력은 다소 약하다는 평가다. 김 후보는 사업가 출신이다. 김혁규 도지사 시절 경남개발공사 사장을 하다가 탄핵 정국 때 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금세 자리에서 물러났다.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택시기사 권기태(40) 씨는 “후보가 좀 그래서 아쉽다”며 담배를 물었다.

“노 대통령 좋아하는 게 순수해서 그렇다 아입니까. 근데 김 후보는 그게 의심스럽습디다. 노 대통령이랑 정치철학을 같이하는 것도 아이고, 어쩌다 보이 민주당 후보가 된 기고. 노사모들도 김맹곤 후보 비난하고 했다 아입니까.”

취재하면서 만난 김해시민들은 지지 정당과 별개로 “노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애정을 투표와 연결 짓겠다는 사람은 드물었다. 떡가게를 하는 김외용(52) 씨는 “노 대통령 생전이면 몰라도, 지금이야 덕 볼 거 있겠나. 원래 한나라 지지 세력이 노풍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지사 선거는 무소속 김두관 후보가 약진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를 오롯이 ‘노풍’ 덕으로 보기에는 무리다.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붙긴 했지만 다른 이유도 많다.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가 오랜 기간 고향을 떠나 생활한 점, 김 후보가 뚝심으로 경남지사 문을 두드려온 점 등이다. 경남지사와 김해시장 선거 모두 ‘1번’으로 밀어붙여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주간동아 2010.05.24 738호 (p26~27)

  • 김해=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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