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7

2010.05.17

사진작가 전민조 ‘담배 피우는 사연’展

인생 굽잇길 한 모금 … 시대가 권했나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0-05-17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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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끽연가들에게 왜 담배를 피우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냥, 끊지 못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미 습관이 된 담배.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얼굴과 손을 보면 그가 왜 담배를 피우는지 알 수 있다. 긴 한숨에 실려 나오는 담배연기에는 독한 인생살이의 회한이 묻어난다. 지금이야 ‘날아다니는 독극물’ ‘공공의 적’이라고까지 불리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담배는 낭만과 고뇌의 상징이었다. 정치, 예술, 사업하는 사람치고 담배 안 피우는 이가 드물었다.

    5월 1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선 담배와 관련된 이색 사진전이 열린다. 원로 사진작가 전민조(66) 씨의 ‘담배 피우는 사연’전이 그것. 전 작가가 1970년 이후 30여 년의 사진기자 생활 동안 만났던 인사 50여 명의 담배 피우는 사연이 사진에 담겨 있다. 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에 열 받아 담배를 피우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부터 파이프 담배를 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다양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전 작가는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날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하지만 담배가 결코 현실을 극복하는 수단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사진전의 제목 앞에는 ‘금연운동에 바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김수환

    1982년 9월 23일 명동성당 집무실에서 담배를 들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세상이 너무 소란스러워 건강에 나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던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지금 사회는 인권을 옹호해야 할 공권력에 의해 오히려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전민조 ‘담배 피우는 사연’展




    사진작가 전민조 ‘담배 피우는 사연’展
    1 김대중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후인 1979년 12월 29일, 정치 동지이자 맞수였던 상도동 김영삼 씨의 저택을 방문해 파이프 담배를 꺼내 문 김대중 전 대통령.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그의 표정에서 당시 정국의 난맥상을 읽을 수 있다.

    2 조용필

    국내 가요계 최초로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가수 조용필. ‘창밖의 여자’로 단숨에 앨범 100만 장을 판 그가 1988년 8월 11일 기자들 앞에서 이혼을 발표했다. 질문에 답하기가 고통스러운지 꽁초가 되도록 뻐끔 담배를 피운다.

    3 천경자

    화가 천경자는 그림을 그리다 잘 안 되면 붓을 놓고 멍하니 담배를 피웠다. 1983년 11월 6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찍은 사진. 그는 “예술가로서 어느 날 한계를 느낄 때면 자살한 예술가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소설가는 쓰고, 화가는 그려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전민조 ‘담배 피우는 사연’展
    4 최규하, 5 노태우

    고인이 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최근 건강 악화설이 나도는 노태우 전 대통령.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6 양정모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국제그룹이 공중분해 되자 기자들 앞에서 울먹이던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느라 연신 담배를 피웠다(1987년 11월 9일).

    7 이맹희

    삼성그룹 창립자인 이병철 회장의 맏아들이자, 현 이건희 회장의 형인 이맹희 씨.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1971년 동생에게 경영권을 내주고 두문불출한 후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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