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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학부모 가슴 졸이는 하굣길

숭인동 숭신초등학생들 복잡한 ‘벼룩시장’ 위태롭게 지나서 귀가

학부모 가슴 졸이는 하굣길

학부모 가슴 졸이는 하굣길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에도 거리는 노점으로 붐빈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묘지역. 서울 지리에 밝은 사람에게는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유명한 이곳의 한가운데에는 1959년 개교한 숭신초등학교가 있다. 벼룩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과거 낭만을 느끼며 온갖 신기한 물건들을 볼 수 있는 명소지만, 학부모들에게는 가슴이 떨리는 불안한 곳이다. 학교 앞에서 만난 학부모 김모(38) 씨는 “첫애가 이 학교를 나왔지만 둘째를 보낼 때 한참 망설였다. 노점 때문에 주변 환경이 좋지 않다. 이 학교로 배정받으면 빼서 다른 학교로 보내는 부모도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오후 1시 30분경 학생들이 하교를 앞둔 시간임에도 학교 앞은 이미 노점들로 북적였다. 헌책, 헌옷, 낚싯대, 성인용 비디오를 늘어놓은 노점들이 학교 인근에 깔렸고 학교 입구도 장사를 준비하는 노점들로 어수선했다. 학교를 빠져나온 학생들이 오토바이와 자동차, 노점 사이를 위태롭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학생들 하굣길 안전을 돕는 자원봉사자는 “주변 환경을 생각하면 학교가 있으면 안 되는 곳이다”고 했다.

딸을 가진 학부모는 걱정이 더 크다. 6학년 여자아이를 둔 박모(40) 씨는 “아이가 저학년 때 딸을 둔 엄마들끼리 치마를 입혀서 보내지 말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어떤 아저씨가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봤을 때 혹시나 싶어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벼룩시장 특성상 노숙자들이 모이고, 성인용품 간판을 내건 노점도 있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특히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로 붐벼 키가 작은 아이들이 담배에 화상을 입을까 염려한다.

노점상들은 자체적으로 자율질서위원을 두는 등 학교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국노점상연합회 동묘지역장 양영한 씨는 “우리 상인 중에도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에서 계획표를 받아 학생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운영하고 있다. 학교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다”라고 해명했다. 학교 주변에는 자율질서위원들이 교통통제를 하고 인도에는 좌판을 깔지 못하도록 하는 등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탁영 교장은 “상인회가 질서를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부 상인들이 목숨을 걸고 나오니 힘들다”며 속상해했다.

학교 앞 가득 채운 노점상들



관할 경찰, 종로구청, 중부교육청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인근 파출소는 “교통질서를 잡는 게 우리 일이고, 아이들이 다친 경우는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종로구청도 “강제적으로 정비하면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하다. 서로 상생하는 차원에서 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청도 구청에 협조만 구할 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학교는 노점상과 직접 협의해 2시 이후 장사를 시작하도록 했다. 하지만 노점상들은 장사 준비를 이유로 학생들이 하교하기 전에 이미 좌판을 깐다.

통학로를 두고 학부모와 상인 간 마찰이 심해지자 흉흉한 뒷말들도 흘러나온다. 한 상인은 “폐교하는 게 맞다. 주택가도 사라져 입학생이 한 반밖에 없는데 왜 예산낭비를 하냐”고 주장했다. 이들은 인근 새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이 집값을 올리기 위해 학부모로 위장한 뒤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뚜렷한 해법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아이들의 하굣길은 오늘도 불안하다. 이 동네에서 오랜 세월 살고 있는 김문성(72) 할아버지는 “서울시가 청계천을 만들면서 밀려난 상인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더 복잡해졌다. 상인들을 당해낼 수 없다고 하굣길을 저리 놓아두면 되냐”며 걱정했다.



주간동아 2010.05.17 737호 (p49~49)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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