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6

2010.05.10

묻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운가요?

이창동 감독의 ‘시’

  • 강유정 문학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05-10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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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묻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운가요?

    영화 ‘시’는 담담하게 ‘시도, 삶도 고통’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모든 훌륭한 예술작품은 생의 아이러니를 표현한다.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 ‘시’ 역시 그렇다. ‘시’에는 단순히 대답으로 환원할 수 없는, 생의 아이러니가 가득 들어차 있다. 그래서 보는 내내 먹먹하고, 보고 나서도 한동안 갑갑하다. 이 감독이 던지는 질문에는 애초부터 답이 없다. 가을에 왜 단풍이 드느냐는 질문엔 답이 있지만, 사는 게 왜 이리 복잡하냐고 아무리 물어도 답은 없다. “어떻게 시를 써야 하나요”라고 간절히 물을 때 누구도 대답해줄 수 없는 까닭 또한 마찬가지다.

    이 감독의 ‘시’는 아름다운 여름날, 개울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너머로 떠내려오는 시체 한 구로 시작한다. 첫 장면부터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름날,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 너머로 시체가 아무렇지 않게 떠내려온다.

    예순일곱이 된 미자는 소녀처럼 순수하고 싶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고운 옷을 입고 일주일에 두 번 시 창작교실에 나가는 소녀 같은 여자다. 자신의 바람처럼 그는 참 곱다. 생활보조금과 도우미 일로 생계를 연명하지만, 그의 얼굴에 삶의 고통은 드러나지 않는다. 예순일곱쯤 되면 사지육신 멀쩡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 말이다.

    그가 가진 아름다운 것 가운데 하나는 코밑이 시커메지기 시작한 손자 욱이다. 미자는 욱이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이 사랑스러운 손자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일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학생 성추행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사건을 무마하고자 아들들의 아버지들이 모여 합의금을 마련한다. 아버지들은 자식의 창창한 미래에 그늘을 드리울 수 없다며, 한편으론 “사내 녀석들이 그깟 일 정도쯤이야”라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소녀는 자살하고 소녀의 엄마는 넋을 잃었지만, 그들은 소중한 자기 아들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다.



    여자, 미자는 혼돈스럽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손자의 앞날을 지켜줘야 하지만 손자가 한 일을 도대체 납득할 수 없다. 소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강물 위 다리에 서니 소녀의 고통이 자신의 것만 같다.

    그리고 시 창작교실에서는 시에 대해 알려준다. “시를 쓰려면 지금까지 보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봐야 한다”고. 미자는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시로 쓰고 싶다. 하지만 현실 깊은 곳에서는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세상은 살기엔 대략 순수할 수 있지만, 바라보기엔 전혀 아름답지 않다. 외면한 채 투명한 햇빛이나 꽃을 노래하고 싶지만, 도저히 시가 나오지 않는다.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치매로 잃어가는 언어를 다른 한쪽에서는 시의 이름으로 간절히 요구한다. 미자는 손자를 위해 아름답다고 여기던 가치들을 거스른다. 아무렇지 않게 훌라후프를 돌리며 서 있는 손자는 범죄자이기 전에 철없는 소년이다. 그래서 그는 협박도 하고, 몸도 판다. 아름다움은 조화(彫花)에서나 간직된다. 살아 있는 모든 순수는 훼손되게 마련이다.

    시 창작교실에서는 한 달 후 모든 수강생에게 시 한 편을 써오라고 숙제를 내준다. 누구도 쓰지 못하고, 아무도 써오지 않는데 미자만 시 한 편을 남긴다. 그리고 그는 사라진다. 김용택 시인의 목소리로 낭송되던 미자의 시는 어느 순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네스, 소녀의 목소리로 오버랩된다.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 가녀려서, 지켜주지 못한 우리를 미안하고 부끄럽게 만든다. 미자는 결국 보고 싶은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세상을 시로 쓴다.

    영화도 그렇지 않을까. 수많은 영화가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1%의 아름다움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기억은, 삶은 어떤가. 사라진 미자는 어디로 갔을까. 대답이 없기에 더욱 간절한 작품, 바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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