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6

2010.05.10

'신데렐라 언니’? 오빠 마음 끌려!

남성용 순정만화 문법에 충실한 모습 … 20, 30대는 선호, 40대 이상은 외면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입력2010-05-10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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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데렐라 언니’? 오빠 마음 끌려!

    ‘신데렐라 언니’에 출연 중인 문근영, 옥택연, 천정명, 서우(왼쪽부터).

    KBS2 ‘신데렐라 언니’ 시청률이 꾸준히 상승 중이다. 4월 29일 방영된 10회분은 19.2%(AGB닐슨)까지 올랐다. 그러나 대단한 성공이라 보긴 힘들다. ‘신데렐라 언니’가 그 ‘한 끝’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층의 압도적 지지에 반해 남성층의 반응이 워낙 떨어지기 때문이다.

    4월 다섯째 주 전체 시청률의 성·연령 구성비를 보면 이 같은 현상이 잘 드러난다. ‘신데렐라 언니’는 전체 프로그램 중 여자 10대에서 4위, 20대에서 3위, 30대에서 5위, 그리고 40대에서도 5위를 차지했다. 여성층을 ‘꽉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층의 반응은 냉담하다. 남자 20대에서 4위이고, 30대에서도 그런대로 반응이 나오지만, 40대부턴 아예 무시 분위기다.

    그러나 남자 20, 30대의 호의적 반응은 좀 더 분석해봐야 할 대목이다. 남자 20대 4위는 사실 꽤 큰 반향이다. 드라마 중에서는 KBS2 ‘수상한 삼형제’에 이어 2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남자 20, 30대는 상대적으로 트렌디 드라마에 잘 반응한다는 통계가 있다. 본래 신세대로 갈수록 여성 취향 콘텐츠를 쉽게 흡수한다. 점차 유니섹스화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40대 이상은 다르다. 여전히 선 굵은 남성 드라마, 역사 드라마나 가족 드라마에 반응한다.

    주연배우 문근영의 스타성이 남자 20, 30대에만 효력을 발휘한다는 측면도 있다. 애초 문근영이 스타덤에 오른 것도 20, 30대 남성층의 열렬한 지지 덕택이었다. 그렇다면 40대 이상 중장년층은? 그간 문근영 콘텐츠가 극장용 영화 중심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20, 30대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극장을 찾지만, 40대 이상 남성층은 사실상 가장 극장을 찾지 않는 계층이다. 중장년 남성층에게 문근영은 그저 방송과 신문지상에서 ‘빨치산 외손녀’로 보도된 ‘문제적 소녀’일 뿐이다.

    애초부터 20, 30대 남자가 타깃



    이 밖에도 이유는 많다. 자매 간 대결구도는 젊은 남성층에게만 관심거리라는 분석도 있다. 그 이상이 되면 딸이나 자매를 직접 키우기 때문이다. 첫사랑 노스탤지어를 젊은 층에 맞춰 다뤘다는 점도 얘기된다. 공동 주연배우 서우가 유난히 젊은 남성층에 어필할 만한 외모를 지녔다는 점 역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큰 맥락에서 ‘신데렐라 언니’의 방향성을 짚을 필요가 있다. 전반적인 구성과 인물 배치 등에서 남자 20, 30대의 열광을 짚는 식이다. 이런 점에서 결론부터 내리면 ‘신데렐라 언니’는 사실상 20, 30대 남자를 ‘노리고 만든’ 드라마다. 애초 그 계층을 끌고 갈 의도였고, 그에 집중하다 보니 40대 이상은 놓친 것이다. 또한 이것이 대담한 시도도 아니고, 이미 있는 성공 전략을 따랐다는 점도 중요하다. 전례가 국내에 없어 파악이 어려울 뿐이다. 좀 더 시각을 넓혀보면 이에 대한 실마리가 풀린다.

    일반 트렌디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반응 중 하나가 ‘순정만화 같다’는 것이다. 순정만화는 대개 10, 20대 여성 코드에 맞춰 진행된다. 거기에 약간의 현실성과 사회성을 불어넣은 게 트렌디 드라마라 봐도 좋다.

    그런데 순정만화라는 게 의외로 여성용만은 아니다. 특이하지만 ‘남성용 순정만화’도 존재한다. 주로 남녀의 사랑 얘기를 다루지만 이를 철저히 남성 판타지에 근거해 재구성한 것이 ‘남성용 순정만화’다. 일본에 이런 예가 많다. 그 초기 버전이 1980년부터 84년까지 주간 ‘빅코믹’에 연재된 아다치 미쓰루의 ‘미유키’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의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를 코믹 터치로 그렸다. 그리고 마쓰모토 이즈미의 ‘변덕쟁이 오렌지 로드’가 계보를 이었다. 로봇 애니메이션이긴 하지만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역시 일정 부분 남성용 순정만화 코드를 차용했다. 이 계보는 훗날까지 이어져 ‘오! 나의 여신님’ ‘전영소녀’ ‘러브 히나’ 등을 탄생시켰다. 물론 요즘도 인기다.

    그렇다면 남성용 순정만화의 형식이란 무엇일까. 이를 알려면 먼저 여성용 순정만화부터 살펴봐야 한다. 장르 중심인 10대용 순정만화는 사실상 구성과 인물 설정이 천편일률적이다. 주인공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녀다. 그런데 이 소녀를 알 수 없는 이유로 두 미남자가 사랑한다. 한 명은 온화한 성품의 남자고, 또 한 명은 차갑지만 내면에 순수함을 간직한 남자다. 둘 사이에서 갈등하다 대부분 차갑지만 순수한 남자를 택한다. ‘캔디캔디’ 시절부터 수없이 반복된 전형이다.

    양성용 트렌디 드라마로 시장 재편을

    남성용 순정만화는 정확히 그 반대다. 주인공은 평범하다 못해 어딘지 덜 떨어지기까지 한 소년이다. 그러나 그에게 역시 서로 다른 타입의 두 소녀가 애정을 쏟는다. 귀엽고 앙증맞고 애교 많은 소녀와, 어딘지 어둡지만 진지하고 성숙한 소녀다. 소년은 결국 어둡지만 성숙한 소녀를 택한다. 이 전형이 결국 순문학까지 침범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등을 낳기도 했다.

    ‘신데렐라 언니’로 돌아가보자. 이 드라마는 여성용 순정만화의 전형에서 비껴나 있다. 겉모습은 기존 트렌디-여성용 순정만화처럼 보이나 사실상 남성용 순정만화의 속성을 뚜렷이 지닌다. 극중 홍기훈(천정명 분)은 ‘별 볼일 없는 남자’다. 여성 시청자의 구미에 맞추려 전통주 그룹 최강자 ‘홍주가’의 자손으로 설정됐지만, 어디까지나 ‘서자’고 별다른 힘도 없다.

    그러나 그는 두 명의 소녀에게 사랑을 받는다. 구효선(서우 분)은 어릴 적부터 그를 애타게 사랑했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 연심을 품고 있다. 효선은 남성용 순정만화의 귀엽고 앙증맞고 애교 많은 소녀 계보를 잇는다. 거기다 악녀 기질까지 갖췄다. 그러나 홍기훈의 마음은 구효선의 양언니인 송은조(문근영 분)에게 향한다. 송은조 역시 홍기훈을 마음에 두고 있으며, ‘어두운 과거를 지닌 성숙한 소녀’라는 남성용 순정만화 계보를 액면 그대로 계승한다.

    문제는 이런 남성용 순정만화 스타일로 중장년 남성층을 잡을 수는 없다는 데 있다. 고우영, 이현세, 허영만 등을 중심으로 만화 붐을 일으킨 게 현 40, 50대인 건 맞지만, 386세대에게 만화란 기본적으로 ‘극화’다. 이들에겐 남성용 순정만화라는 형식 자체가 낯설다. 그러나 현 20, 30대는 다르다. 이들은 1990년대 초·중반에 초중고생이었다. 이 시기 한국 만화시장은 ‘슬램덩크’ 붐과 함께 라이선스 일본만화로 초토화됐다. 다양한 일본만화가 시장에 쏟아져 나왔고, 그 탓에 이들은 남성용 순정만화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1992년 한국형 남성용 순정만화 시초인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을 히트작으로 만들어낸 세대이기도 하다. 즉 남자 20, 30대는 남성용 순정만화에 익숙하며, 충분히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도록 ‘학습’된 세대다. 그래서 ‘신데렐라 언니’에 바로 반응했다.

    더군다나 ‘신데렐라 언니’는 전문직 드라마의 틀 안에서 양조업을 다루고 있다. 이미 일본에서 오제 아키라의 만화 ‘명가의 술’이 같은 콘셉트로 주목받아 1994년에 드라마까지 성공시킨 바 있다. 당시 ‘명가의 술’ 인기는 남성층의 열광 덕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신데렐라 언니’는 애초부터 남성층을 ‘안고 갈’ 준비가 된 드라마라는 것이다.

    최근 드라마의 시청률 저하가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다. 상당 부분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 탓이라는 견해다. 그러나 또 다른 견해도 있다. 레저생활이 다양해진 현시점에 특히 젊은 세대는 TV 앞에서만 여가를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TV 시청층 자체의 축소라는 분석이다.

    이럴수록 남성층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교집합을 찾아내 시청층을 확대해야 한다. 문화현상의 흐름을 잘 파악해 ‘양성용 트렌디 드라마’로 드라마 시장을 재편해야 한다. ‘신데렐라 언니’는 그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비록 전체 시청률 10등짜리의 ‘그렇고 그런 성공작’으로 보이지만, 예상외로 한국 드라마 흐름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지 모를 콘텐츠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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