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6

2010.05.10

입학사정관제 학원 강남에서 맥 못 추는 이유는

대학들 ‘학교교육 충실히 반영’에 성과도 없어 사실상 개점 휴업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5-10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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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학사정관제 학원 강남에서 맥 못 추는 이유는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입학사정관제 학원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 2년 전에는 입학사정관제 학원 전단지도 많이 오더니 요즘은 딱 끊겼어요.”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 대치동의 터줏대감 박미희 씨(41)는 고2와 중2 두 아들의 대입, 고입을 위해 각 네 군데씩 학원에 보내고 있다. 최근 토플점수가 높은 큰아들의 입학사정관제 수시전형을 생각해 학원을 알아봤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원하는 대학에 100% 합격하게 해준다는 학원도 있었는데 다 없어졌네요.”

    입학사정관제 대비 사교육이 사라지고 있다. 스터디마스터 공부법 연구소 신진상 소장은 “최근 입학사정관제 학원들은 거의 개점휴업 상태”라고 말했다. 여전히 언론에서는 입학사정관제 확대가 이슈지만, 학원 현장에서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처음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2008년 이후 강남 학원가에 ‘입학사정관제 합격 보장’을 내세운 학원이 많이 생겼다. 이 학원들은 구술, 면접, 자기소개서 작성, 포트폴리오 제작, 외국어 등을 입학사정관제에 맞춰 가르치고 준비시켰다. 언론에서는 연일 ‘수백만 원짜리 입학사정관제 사교육이 성행한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교육컨설팅 전문학원도 고전



    하지만 5월 초 실제 강남 학원가에서는 입학사정관제 학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한다’고 내건 몇몇 학원도 알고 보면 일반 교육컨설팅 업체로, 입학사정관제를 마케팅 차원에서 언급하는 수준이거나 토익과 토플을 가르치는 기존 영어 전문학원이었다. 유일하게 ‘입학사정관제 전문’을 내세운 학원이 있었지만, 학생의 적성을 찾아준다는 내용을 강조하다 보니 여타의 교육컨설팅 업체와 프로그램이 똑같았다.

    한편 교육컨설팅 업체들도 학생들을 유치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한 사교육 전문가는 “지난해 한 유명 사립대 입학사정관을 맡았던 사람이 교육컨설팅 업체를 운영했지만 상담자가 없어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관련 학원이 강남의 비싼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낼 만큼 쪼들리고 있다는 것.

    ‘교육 정책 하나 생길 때마다 강남에는 새로운 사교육이 생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활성화된 사교육 시장에서 입학사정관제 학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정부의 입학사정관제 관련 사교육 억제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4월 초 감사원은 “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의 관리 감독이 부실하다”고 발표했다. 대학이 종전 입학전형의 이름만 바꾸거나 입학사정관들이 자격 또는 서류심사에 참여한 수준을 가지고 ‘입학전형관제’로 포장한 경우가 많다는 것. 또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우선선발 전형 등 단순 점수를 비교한 뒤 입학사정관이 기계적으로 점수만 환산한 경우도 많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입학사정관제에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반영해 공교육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골자의 ‘입학사정관제 운영 공통기준’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토익, 토플, JPT 등 공인 어학시험 성적이나 교과 관련 교외 수상 실적을 주요 전형 요소로 반영하는 경우, AP(대학과목 선이수제) 여부를 지원 자격 제한요건으로 두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대학들도 변화하고 있다. 먼저 연세대가 나섰다. 4월 24일 연세대에서 열린 입학설명회에서 김동로 입학처장(사회학과)은 “모집인원의 80%를 수시전형으로 선발하고 글로벌 전형에서 텝스 770점, 토플 IBT 100점 이상은 무조건 만점을 주겠다”고 밝혔다. 또한 “AP나 SAT는 시간 낭비고, 포트폴리오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대로라면 포트폴리오 제작과 관련해 조언을 하거나 직접 만들어주는 컨설팅 업체 또는 영어공인능력시험 학원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자주 바뀌는 전형 따라잡기 어려워

    입학사정관제 학원이 문을 닫는 또 다른 이유는 지난 2년간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다수 사교육 종사자는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한 2009, 2010학년도 신입생 중 사교육을 받은 학생은 많지 않았다고 교육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서울시내 사립대 입학사정관은 “학생들이 써오는 자기소개서 첫 문장만 봐도 사교육 업체에서 써준 건지, 첨삭을 받은 건지, 아니면 학생이 혼자 힘으로 쓴 건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만일 사교육의 힘을 빌렸다는 의혹을 받으면 아무리 내용이 뛰어나도 ‘괘씸죄’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실제 한 입학사정관제 학원 운영자는 400만 원을 받고 2010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어느 학생의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줬는데, 이 학생이 전형에서 모두 떨어지자 학부모가 운영자를 사기혐의로 고소해 현재 수배 중이라고 한다.

    실제 입학사정관제 학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기존 언론보도, 각 대학의 전형 발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다. 수시전형이나 수능, 내신의 경우 그동안 데이터베이스(DB)와 경험이 많이 축적돼 기존 학생과 대비해 예측이 가능하지만, 입학사정관제는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는 상태. 그러다 보니 수십, 수백만 원을 들여 컨설팅을 받아도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가 사교육 시장에서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실제 한 학부모는 “비싼 돈 들여 컨설팅을 받는 것보다 네이버 ‘수만휘’(‘수능 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자’의 줄임말로 회원 수가 100만 명이 넘음) 카페에 정보가 더 많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 관련 정책은 지난 3년간 많이 바뀌었다. 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임진택 회장은 “그간 학교별로 전형이 너무 자주 바뀌었다. 그래서 학원들도 정확한 예측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가 사교육 시장을 키우지 않는 대신 사실상 고교등급제로 나아갈 가능성은 높다. 신 소장은 “대교협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학교 선생님의 인성평가와 추천서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면 입시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학교가 유리하고, 그러다 보면 고교 간 등급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가 사교육 시장을 잡을 수 있다는 징조는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까.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는 55개 대학의 입학사정관제 사업에 지난해보다 114억 원이 늘어난 350억 원을 확대 지원한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은 “내 임기 막판에는 대학 신입생 100%가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3년 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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