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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공천’이 국회의원 공깃돌이냐

지방선거 후보들 입맛대로 고르고 자르고 … ‘2억 신고’ 이범관 의원도 개입 논란

‘공천’이 국회의원 공깃돌이냐

‘공천’이 국회의원 공깃돌이냐

1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김종간 김해시장이 5월 3일 기자회견 이후 도당의 공천결정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2 노관규 순천시장 등 광주·전남지역 무소속 전현직 단체장 7명이 5월 3일 ‘7인 단체장 연대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3 5월 4일 부산 연제구 출신 시·구의원과 한나라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이위준 연제구청장(가운데).

5월 4일 오후 한나라당 경기도당의 한 사무원은 전화를 받자마다 급히 끊었다. 기자가 질문을 채 마치기도 전이었다.

“지금 전화 받을 상황이 아니다. (공천 탈락자와 그 지지자들의) 시위 때문에 도당 업무를 볼 수가 없다. 이해해달라.”

6·2지방선거 공천자가 발표되면서 여야(與野) 가릴 것 없이 공천 탈락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민주당 노관규 순천시장 등 전현직 기초단체장 7명이 무소속 연대를 선언했고, 한나라당 수원시장 예비후보와 도·시의원으로 구성된 ‘수원무소속연대’도 4월 27일 출범식을 가졌다. 백상승(경주), 최병국(경산), 이대엽(성남), 김한겸(거제) 시장 등도 공천 탈락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 공천 탈락자의 공통점은 대부분 국회의원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 김종간 김해시장과 김성호 함평군수 예비후보는 지역 국회의원의 경선 개입 의혹을 주장하며 “국회의원 개인 감정이 작용한 사천(私薦)”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 공천을 받으려면 후보는 배심원단 투표나 당원 여론조사 같은 경선 혹은 시도당과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이하 공심위)의 심사를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공천에 대해 ‘공심위는 후보자 추천방식과 자격심사와 관련해 관할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국회의원)과 협의한다’고 당헌·당규는 규정한다. 여기서 협의는 99% 국회의원 뜻에 따른다고 보면 된다. 공심위원들이 자기 지역구 외의 인사를 어떻게 알겠는가. 동료 의원의 뜻(사전 낙점)을 존중해주고 자신의 지역구 단체장 및 의원의 공천을 보장받는 ‘품앗이’ 성격이 강하다. 물론 ‘호랑이 새끼’(차기 국회의원 출마 예상자)를 키우지 않으려 하는 것도 문제다.”

민주당의 한 기초의원 후보의 말도 비슷하다.

“경선 방식을 정하는데 지역위원장(국회의원)의 개입이 절대적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후보를 밀고 싶다면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낮춰 경선 방식을 결정하는 식이다. 국회의원에게 줄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처럼 국회의원의 공천 개입은 자칫 지역사회의 분열과 민심에 반하는 공천이라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아킬레스 하나 드려라, 충성 맹세해라”

6·2지방선거 공천 심사를 앞둔 4월 16일, 현금 2억 원을 건네려 한 이기수 여주군수를 경찰에 신고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던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경기 이천·여주). “이번 일이 선거 문화가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깨끗한 선거’를 강조했던 이 의원도 요즘 공천 개입 논란에 휘말렸다. 지역구 행사장에서 달걀과 야유 세례를 받는가 하면, 광역·기초의원과 당원은 무소속 연대를 추진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이 의원 지역구에서 시장, 군수, 기초의원 후보로 나섰다가 낙천한 이들의 항변과 지역 언론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이번 공천의 난맥상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천시장 공천에서 조병돈 현 시장에게 고배를 마신 최병윤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정책단장(민추협 공동의장 비서)은 자신의 수첩을 펼쳐보며 경선 과정을 설명했다.

“3월 초 이 의원에게 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고, 15일 오전 다시 만났다. ‘경선을 할 거냐’고 묻기에 ‘당비 대납하는 당원 수백 명을 둔 사람과 경선이 되겠느냐’고 했더니, ‘이천에서 유지들이 추대하는 형식을 만들고 변화의 분위기 만들어달라’고 했다. 전략공천 얘기였다. 그러면서 경기도당 공심위원에 자신(이 의원)을 넣어달라고 해서 ‘14일에 이미 결정됐다’고 하니 ‘없던 일로 하자’고 하더라.”

도당 공심위는 도당 운영위 의결과 도당위원장 추천,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대표최고위원이 당내외 인사 20인 이내 위원으로 구성된다. 국회의원과 당원, 변호사, 교수 등 다양하게 구성하는데, 이 의원은 최 후보에게 자신을 공심위에 들어가도록 힘써주면 전략공천을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천의 ‘거대 악’(토착세력)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이천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이 의원의 정의감에 공감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말이 달라졌다. ‘(최 후보가) 친이(친이명박)계 낙하산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유지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며 ‘현직 시장을 꺾을 방안을 가져오라’고 했다. ‘이천은 친박(친박근혜) 정서가 강해 (이 후보의 주요 직책인) 대운하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최 후보는 행정체제 개편으로 이천-여주-양평이 통합되면 이 지역 한강 71.7km 유역을 지능형 수변도시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여러 차례 이 의원에게 밝힌 바 있지만, 이 의원의 지적을 듣고는 바로 자신의 명함에서 ‘대운하 단장’ 직책을 뺐다.

출마 권유하고는 나 몰라라

이후 최 후보는 이 의원을 두 차례 더 만났으나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했다. 이 의원은 2년 전 18대 총선 때 이규택 전 의원과 최 후보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을 줄 알았더니 이범관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지역에 돌아 불쾌하다고 했고, 최 후보의 지역 활동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처음에는 “최 후보와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기자가 날짜와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묻자 일부 내용을 시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두어 번 만나 출마한다기에 열심히 하라고 했을 뿐이다. 지역에서의 공천은 청렴성과 당선가능성 등을 종합해 결정한 개혁공천이었다.”

최씨는 4월 초 이천지역 당원협의회 신동용 사무국장에게 사퇴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신 사무국장은 사퇴를 만류하면서 “(이 의원에게) 충성맹세 좀 하라”는 말을 했다. 덧붙여 “아킬레스건을 하나 드려라”는 충고도 했다.

“아킬레스건은 나의 약점을 말한다. 차기 총선에 나오지 않겠다는 뜻의 안전장치를 가리킨다. 결국 2년 뒤 총선 불출마와 충성맹세가 관건이었다.”

이에 대해 신 사무국장은 “최 후보를 잘 알지도 못한다. 최근 지역 축제에서 한 번 본 게 전부이고, 공천과 관련해 얘기할 위치도 아니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기자가 통화내역을 확인한 결과 3월 2일~4월 16일 최 후보는 이 의원과 10회(2회는 보좌관), 신 사무국장과는 46회에 걸쳐 통화를 했다.

현직 군수의 구속까지 부른 여주군수 공천도 사정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 한나라당은 유용태 전 노동부 장관(15, 16대 국회의원·서울 동작을)이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현직 이 군수와 불꽃 경합이 예고됐다. 이에 부담을 느낀 이 군수가 이범관 의원에게 2억 원을 건네는 ‘악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한나라당 여주군수 후보는 4월 28일 김춘석 전 청와대비서실 행정관으로 확정됐다.

같은 날 한나라당 중앙 공심위 심사장에서 ‘후보 사퇴’를 선언한 유 전 장관은 기자에게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난해 연말부터 여주지역 유지와 전직 군수, 군 의회 의장 등이 다섯 번이나 우리 집으로 찾아와 출마를 권유했다. 이 의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마음으로 봉사하고픈 마음도 있어 다섯 번째 권유 자리에서 ‘예스’를 했다. 장관 출신이 읍장, 면장도 할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권유자들의 말과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고 한다.

“이 의원이 ‘절차상’ 예비후보 등록을 하라기에 ‘당에 전략공천을 얘기했느냐’고 물었더니 ‘했다’고 하더라. 그러나 정작 경기도당 공심위는 ‘한나라당으로 당선돼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게 해당 행위 아니냐’며 따져물으면서 다른 후보들과 똑같이 심사를 했다. (이 의원에게) 듣던 분위기와 달라서 2차 중앙당 공심위 심사장에서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그때 이미 다른 후보를 낙점한 분위기였다.”

유 전 장관은 ‘정치 도의’를 꺼내며 이번 공천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출마하신다기에 ‘열심히 해보세요’라고 말한 게 전부”라며 만남 자체를 부인했다. 이어 “낙천한 사람은 별 얘기를 다 할 수 있다. 지금은 민감한 시기여서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다. 선거가 끝나면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 공천 문제 해결에 앞장설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천시의원 무소속 후보 이모 씨도 앞서 두 기초단체장 후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 지역 이규택 전 의원(현 미래연합 대표)의 보좌관과 당협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냈고, 4월 24일 오후 이천도자기 축제 개막식에서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며 이 의원에게 달걀을 던진 인물.

“(달걀 투척에 대해) 답답해서 그랬다. 나는 20년 당인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지난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이규택 의원 대신 당이 결정한 후보(이범관)의 선거를 도왔다. 광역·기초의원 모두 동참했다. 이번에 시의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이 의원은) ‘빚을 갚겠다’고 두 번 얘기했다.”

‘공천’이 국회의원 공깃돌이냐

4월 24일 이천 도자기축제 행사장에서 공천 탈락에 반발한 이모 씨가 던진 달걀에 맞은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오른쪽). 이천시장, 여주군수 공천 탈락한 최병윤, 유용태 후보(작은 사진 위쪽부터).

“선거 끝나고 낱낱이 밝히겠다”

4월 30일 이천지역 한나라당 당원 150여 명이 탈당계를 내고 “공천 발표를 앞두고 한 후보가 선거구를 바꾸어 공천을 받는 등 공천이 공정하지 못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천 광역 2선거구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가 추가공모에서 광역 1선거구에 나왔고, 그 자리(2선거구)에는 전략공천 명분으로 이천시청 전 국장이 얼굴을 내밀었다. 기초의원 다 선거구에선 김모 씨가 접수했는데, 결과적으로 이천지역은 광역·기초의원 모두, 여주지역은 6명 중 4명이 물갈이된 것. 이천지역 한 언론인의 말이다.

“한 후보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또 다른 후보는 상대당 후보가 너무 강해 지역구를 옮겼다. 그중 한 후보는 ‘당에서 공천 신청을 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출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가공모를 하면서 이미 내천설, ‘짜고 친 고스톱’ 얘기가 돌았는데 그대로 됐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달걀을 던진) 이 후보가 나를 도운 건 맞다. 그러나 선거 때 열심히 한 사람만 추천할 수는 없고 여성 공천도 해야 했다. 예비후보 대부분이 나무랄 데 없는 경력이라 그중 한 명을 고르는 일은 어렵다. 공천을 하다 보면 반발도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으로선 민감한 시기에 자신의 지역구 공천 과정의 전말을 다 밝힐 수 없어 억울함도 있을 것이다. 출마를 권했던 인물이 막상 당선 가능성이 낮아 바꿀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 공천에서 영향력이 큰 국회의원이 섣불리 후보에게 출마를 권유하고, 선거전략을 조율하고, 보좌관(사무국장)까지 공천에 개입해 혼란을 초래한 행태는 비판의 여지가 많다.

한나라당 배은희 의원(6·2지방선거 공심위원)은 “공심위원을 해보니 공천은 ‘고차원 방정식’이다. 청렴도와 여론조사 등 여러 근거를 놓고 판단하는데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본선 경쟁력을 판단할 수도 없다. 그래서 지역 민심을 아는 당협위원장 얘기를 참고한다. 그만큼 공심위원과 국회의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당헌과 당규만으로는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현 공천방식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국회의원들의 개입 여지가 지나치게 크다. 이는 공심위와 지역 국회의원, 후보자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공정성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채원호 정부개혁위원장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추천권을 당원과 주민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경선을 전면 의무화하고 경선 방식도 통일적인 방식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간동아 2010.05.10 736호 (p18~20)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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