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5

2010.05.03

북한 군부의 급부상, 본때를 보여준 공로인가

천안함 침몰과 동시에 대남관계 전면에 등장 … ‘호전적 병영국가’ 국제사회에 선언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0-05-03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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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운의 천안함 함미가 4월 15일 북한 고(故) 김일성 주석의 98회 생일에 인양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수면 위로 떠오른 함미의 처참한 외양은 침몰 원인이 외부 충격이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렸고, 이번 참사가 북한의 계획적인 해저 공격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을 키웠다. 북한의 천안함 공격설이 힘을 얻으면서 부상한 집단이 하나 있다. 바로 북한 군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4월 15일 이후 북한 매체의 전면에 군부가 등장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가 군부에 집중됐으며, 군부 주요 인사들의 승진이 잇따랐다. 대남 사업의 전면에도 군부가 나섰다.

    최근 북한 매체들을 분석해보면, 김 위원장은 3월 13일을 끝으로 공개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천안함 침몰 하루 전인 3월 25일 천마전기계공장과 대흥산기계공장을 시찰하면서부터다. 그는 이를 포함해 4월 12일까지 모두 여섯 차례의 현지지도를 군대가 아닌, 외교행사나 문화행사에서 가졌다. 당시는 남한과 국제사회가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 ‘외부 공격’과 ‘내부 폭발’ 등 다양한 원인을 검토하던 때였다.

    김정일 공개 활동 절반에 군부 등장

    이후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것으로 여론이 모아지던 4월 13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제567대연합부대 종합 훈련을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포함해 28일까지 김 위원장은 모두 12회의 공개 활동을 외부에 공개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인 6회가 군부에 집중됐다. 주목되는 것은 횟수뿐이 아니다. 김 위원장의 잇따른 시찰 과정에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영철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 등이 수행원 자격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천안함 격침 및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살해할 목적으로 대남 공작원을 파견한 배후 집단으로 지목된 정찰총국의 지휘 라인이다.



    오 부위원장은 조선중앙통신이 4월 14일 보도한 김 위원장의 제567대연합부대 시찰 장면 사진에 등장했다. 오랫동안 노동당 작전부장을 역임하며 음지에서 대남 간첩파견 등 공작사업을 담당하던 그가 김 위원장의 수행원으로 매체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인민군 창건 기념일인 4월 25일 김 위원장이 589부대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김 위원장을 사진 왼쪽에서 수행하는 한 군부 인사는 김영철 상장이었고, 이에 따라 589부대가 정찰총국의 대외명칭이라는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4월 14일 김 위원장이 대장 승진자 4명을 포함해 군 장성 100명의 승진을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승진 인사는 김 위원장이 김 주석 사망 후 3년의 유훈 통치를 끝낸 뒤 1997년 군 장성 129명을 승진시킨 이래 최대 규모다.

    이번 인사에서 북한 체제유지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수석부부장(국방위원)이 상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대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패배의 책임을 지고 경질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정명도 해군사령관도 대장으로 승진해 건재를 과시했다. 리병철 공군사령관과 정호균 전 포병사령관도 대장으로 승진했다. 김 위원장의 신변안전을 책임지는 윤정린 인민무력부 호위사령관도 4월 25일 인민군 창건기념일을 앞두고 대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1월 돌연 상장(별 셋) 계급장을 달고 나와 대청해전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강등된 것으로 알려졌던 김명국 작전부장도 25일 다시 대장(별 넷) 계급장을 달고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

    한편 이보다 조금 앞선 4월 19일 박임수 국방위원회 정책국장이 예고 없이 개성공단에 나타나면서 북한 군부가 대남 공세의 한 갈래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등 ‘남북의 접촉면’에서 남측을 압박하리라는 우려를 낳았고, 이것이 현실로 드러났다. 군부 인사 8명과 함께 20일까지 개성공단에 체류한 그는 남측 민간단체들이 김 주석의 98회 생일인 15일 ‘태양절’에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대북 전단(삐라)을 북쪽으로 날린 것에 대해 격렬히 비난했다. 또 개성공단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높은 건물과 우수관 등이 북한 체제유지에 해가 된다고 지적하고, 남측 인사들이 음란물 등 풍속을 어지럽히는 물품을 들고 온다고 불평했다.

    무력 시위와 도발하겠다는 신호

    박 국장 등은 4월 22~23일 금강산에 나타나 마찬가지로 ‘실태 요해(파악)’를 했다. 이들이 금강산 관광코스를 돌아보던 23일 오후 1시 반경 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은 돌연 담화를 내고, 이미 동결한 금강산 내 남한 정부와 한국관광공사 소유의 5개 부동산을 몰수한 뒤 30일까지 현대아산 등 민간 소유 부동산도 모두 몰수할 것임을 밝혔다. 북한이 11년 동안 지속한 남한과의 금강산관광 사업을 끝내는 순간에도 군부를 앞세웠다는 것은 상징적인 조치임이 틀림없다.

    북한 군부는 금강산에서 현대아산을 내보낸 뒤 중국인 사업자들을 모아 직접 금강산관광 사업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가 관광 사업으로 군사비를 챙기는 ‘쿠바 모델’을 따른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4월 하반기 전면에 군부를 내세운 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먼저 국제사회가 천안함 침몰사건의 원인을 북한의 게릴라식 해저 공격 쪽으로 좁혀가는 상황에서 군을 중심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만일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계획적인 소행이라면 군부를 앞세운 ‘위세 전술’ 역시 시나리오에 따른 준비된 ‘쇼’였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천안함 침몰사건과 무관하다고 해도 군부의 재등장은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와의 대화 및 협상이 아닌, 무력시위와 도발을 수단으로 국내외적 난관을 뚫고 나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7~11월 미국과 남한 등에 평화공세를 펴는 동안 군부가 아닌 노동당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김 위원장은 7월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 백화원 초대소로 불러 만찬을 베풀었고, 그 자리에 군부 핵심 인사들을 모두 배제시켰다. 이날 만찬이 형식상 국방위원회 주최라는 점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은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북한이 호전적인 ‘병영국가’가 아니라 민간인이 다스리는 보통 나라라는 사실을 과시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당시의 해석이 맞는다면, 올해 4월 북한 군부의 재등장을 놓고 북한이 호전적인 ‘병영국가’이며 체제유지를 위해서라면 천암한 침몰사건처럼 언제 어디서든 무력 도발을 감행할 수 있는 특수한 나라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신호라고 분석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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