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4

2010.05.04

어깨탈구 병역면제 또 흐지부지?

일산署, 200여 명 소환에 10여 명 불구속 … M병원과 유착 혐의 진실 밝혀지나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4-26 16: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실업팀 축구선수 임모(27) 씨는 1급 현역판정을 받은 뒤 고민에 빠졌다. 결국 입대하면 축구를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 어깨탈구로 병역을 면제받아 선수생활을 연장하기로 했다. 임씨는 2006년 10월 초부터 무거운 아령을 들어올렸다가 내려치는 ‘아령치기’와 버스 앞좌석을 잡은 채 어깨에 힘을 빼고 상체를 뒤로 젖히는 ‘의자빼기’로 ‘견관절 다방향성 불안정’ 상태, 즉 어깨탈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의 수술 뒤 5급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

    고의 탈구 뿌리치기 힘든 유혹

    2009년 어깨질환 관련 군면제자는 5급자 전체 9755명 중 79명, 4급자 3만1143명 중 1402명에 이른다. ‘어깨탈구로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한 프로축구 선수는 “주변에서 어깨탈구로 군대에 가지 않은 경우를 종종 봤다. 일부러 다친 뒤 수술해 군대에 안 가려는 사람도 있었고, 운동하다 다치자 이를 이용해 군 면제를 받을까 고민하는 사람도 봤다”고 털어놓았다. 2008년에는 프로축구 선수 90여 명이 고의로 어깨를 탈구한 뒤 수술하거나, 멀쩡한 어깨를 수술하는 방법으로 4, 5급 판정을 받았다가 적발됐다. 2010년 1월에는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가 임씨와 같은 고의탈구 병역기피자들을 적발했다.

    고의탈구 병역기피자들이 여전한 가운데, 경기도 일산경찰서(이하 일산서)는 2009년 9월부터 어깨탈구 병역법 위반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대상자는 무려 200여 명. 당초 이 수사는 규모도 크거니와 프로축구 선수, 연예인, 강남 부유층 자녀 연루설 등이 얽혀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이들 모두가 서울 강남구 M병원에서 어깨질환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병원의 불법 가능성이 제기됐다.

    M병원은 2005년 4월 개원 이래 급속한 성장을 해왔다. 김모 병원장은 정형외과 교수들이 뽑은 ‘어깨관절 베스트 닥터’에 오르는 등 어깨질환 분야에서 명성이 높았다. M병원의 환자 수가 늘면서 ‘부적절한 수술로 환자를 모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M병원 관계자는 “경찰이 문제 삼은 수술은 다른 어깨질환 전문의를 통해 부적절한 수술이 아님이 입증됐다. 그리고 200여 명의 매출액이 전체 병원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에 그친다”며 병역위반 혐의가 없음을 주장했다.



    일산서는 약 7개월 동안 200여 명을 소환해 조사했지만, 10여 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데 그쳤다. M병원을 압수수색하고 병원장과 의사 2명을 소환 조사했는데도 병원의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

    병역비리 관련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경찰은 “M병원에서 수술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 혐의가 있다고 생각해서 수사를 했을 것이다. 병원이 환자에게 수술을 권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환자들의 자백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수사가 길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수사를 지휘하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관계자도 “병원과 환자가 의기투합한 경우와 환자가 고의로 탈구해 수술받은 경우로 나눠 수사했다. 의기투합한 부분은 입증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강압수사 의혹 vs 잘 모르는 사람의 오해

    병원 측은 어깨탈구 환자가 고의로 탈구했는지, 사고나 질병으로 탈구가 됐는지 가려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은 환자의 상태에 맞는 수술만 한다는 것. 병무청 측도 “병사용 진단서에 의존해 판정을 내릴 뿐, 의료진이 부적절한 수술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산서 측은 의사들이 환자 상태를 보고 상담하다 보면 고의성 여부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반박한다. 따라서 병원과 환자가 결탁했다는 혐의를 밝히지 못하면 환자의 자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깨질환 병역비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간부는 “어깨탈구를 조사할 때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 자백이 중요했다. 치료 기록을 면밀히 살핀 뒤 ‘거짓말하지 말라’는 식의 설득으로 자백을 받았다”고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산서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수사 과정에서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수사대상자들의 주장이 불거져나왔다. A씨(26)는 “조사받는 사람이 많아 공간이 부족하자 건물 옆 주차장으로 불러 감옥에 보내겠다는 투로 협박했다. 조서를 쓸 때도 ‘하고 싶은 말’ 부분에 ‘잘못했습니다’라고 먼저 쓰라고 해 썼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2차 조사 때 경찰은 “조서에 ‘잘못했습니다’고 썼으니 혐의를 인정한 것 아니냐. 말 바꾸지 말라”며 심하게 다그쳤다고 한다. B씨(23)는 “수사관이 보험 가입 시 다친 날짜를 틀리게 기입한 사실을 문제 삼더니 보험사기로 징역 5년 살지, 그냥 인정하고 징역 1년에 군대 2년 갈지 선택하라고 했다”며 당시 수사 분위기를 전했다.

    이 밖에 △수사대상자 중 99%가 병원이 수술을 권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니 너도 빨리 인정하라고 경찰이 회유하거나 △10시간 동안 똑같은 질문을 반복해 수사대상자를 지치게 만들거나 △인터넷을 통해 M병원의 명성을 알았다고 답하면 인터넷으로 병원과 공모한 혐의가 있다고 몰아가거나 △덩치 큰 형사가 수사대상자 주변을 돌아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등의 주장이 거론됐다. 한 수사대상자는 “난 양쪽 어깨 모두 탈구됐는데,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양쪽 다 뺏겠느냐”며 억울해했다.

    당시 일산서 형사과장으로 수사를 담당했던 주정식 현 종로경찰서 형사과장은 “원칙대로 수사했다. 진술을 녹화하고 입회자도 있었다. 강압수사를 했다고 우리에게 항의한 사람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수사대상자는 1차 조사는 CC(폐쇄회로)TV가 없는 곳에서 했고, 2차는 1차 때 잘못했다고 했으니 혐의를 인정하라는 식으로 수사가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수사전담반이 40여 명에서 7명으로 크게 축소된 까닭은 “강압수사 의혹이 있는 수사관을 뺐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일산서 윤희석 형사과장은 “수사를 모르는 사람의 오해”라고 잘라 말했다. 강력 수사가 아닌 자료 분석이 필요한 지능범죄 수사여서 압수수색할 때만큼 많은 인원이 필요 없고, 자료를 분석할 전문가만 있으면 된다는 것.

    4월 말 일산서는 어깨병역 비리 수사 브리핑을 통해 모든 것을 밝힐 방침이다. 명쾌한 수사결과를 내놓지 못한 채 용두사미로 끝날지, 마지막 반전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울지 경찰의 향후 발표에 관심이 쏠린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