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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味食生活

구색 맞추기 반찬, 굴비가 뒤집어진다

굴비정식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구색 맞추기 반찬, 굴비가 뒤집어진다

구색 맞추기 반찬, 굴비가 뒤집어진다

음식이 절반 넘게 남는 법성포 굴비정식. 우리 ‘한정식’ 상차림의 문제다.

한정식의 변형이 여기저기 지뢰처럼 흩어져 내 발목을 강타해온다. 이른바 ‘~정식’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음식이다. 관광지에서 파는 향토음식은 회정식, 꼬막정식, 산채정식, 떡갈비정식과 같은 ‘~정식’ 꼬리표가 붙은 경우가 많다. ‘~정식’ 앞의 이름에 따라 회 몇 점, 꼬막 요리 두어 접시, 산채 요리 몇 접시, 떡갈비 한 접시 등을 내면서 그 곁에 온갖 음식을 놓는데, 여느 한정식과 마찬가지로 절반도 먹지 못하고 나오는 일이 잦다 보니 돈이 아깝다.

최근 전남 영광 법성포에 굴비 취재를 갔었다. 법성포에는 식당이라곤 굴비정식 파는 집밖에 없는 듯이 보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굴비정식은 먹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 여기저기 비집고 다녔다. 여기도 다 한상차림으로 굴비정식이 1인분에 1만5000원 또는 2만원씩 한다지만 1인상은 역시 없었다. 2인상 또는 3인상이 기본이었다. 굴비정식이면 굴비구이나 찜 또는 찌개를 내놓고 간단하게 상을 차리면 될 텐데, 그럴 수 없다니 하는 수 없이 한 상을 받았다. 사진의 상차림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한 상을 받고 한참 동안 할 말을 잃었다. ‘굴비’정식을 먹으러 왔지 굴비‘한정식’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었는데, 굴비구이, 굴비찜, 굴비찌개, 고추장굴비 등 굴비로 할 수 있는 음식이 가득 나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상에 오른, 굴비로 굽고 찌고 끓이고 절이고 한 온갖 음식이 계통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굴비 음식을 빼놓고 보면 한정식집마다 구비해놓는 다 그렇고 그런 음식뿐이었다. 웬만한 한정식집에 가도 굴비구이, 굴비찜, 굴비찌개 정도는 나오니 이 상을 굳이 굴비정식이라 부를 것도 아닌 듯했다.

이런 것을 다 차치하고, 음식 맛의 조합만으로도 이 밥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굴비구이가 있는데 갈치구이는 왜 올리며 굴비찜이 있는데 장대찜은 왜 필요한가. 굴비구이 먹은 입으로 간장게장을 씹으면 얼마나 비린지 아는가. 게다가 온갖 나물에 장아찌는 다 올려놓았다. 음식을 찬찬히 살펴보면 식당에서 조리한 것이 아니라 어디 반찬 가게에서 사온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것도 있었다. 일행과 함께 음식이 아까워 밥을 두 공기나 억지로 먹었는데도 상 위에 절반 넘게 남자 “미쳤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식당을 나오며 사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 상의 음식 다 먹고 가는 손님도 있나요?



“없을 겁니다.”

주인 처지에서는 원가 부담이고 손님 처지에서는 다 먹지 못해 손해인데.

“손님들의 불만도 종종 듣습니다. 한때 반찬을 줄이고 1만 원짜리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데서 다 저런 식으로 하니 경쟁에서 밀리는 느낌이 들고….”

굴비는 밥만 있으면 다른 찬이 필요 없는, 참 맛있는 음식이다. 굴비구이든 굴비찜이든 정갈하게 딱 어울리는 서너 가지 반찬 곁들이면 완결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맛있는 굴비를 다른 음식과 뒤섞어 잡탕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건 법성포 굴비정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정식과 그 외 ‘~정식’이라 이름 붙은 한국의 모든 음식의 문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음식점이 거의 다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주는 ‘모범음식점’ 간판을 달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접대용으로 ‘모범’적인 음식점이란 뜻인가.



주간동아 2010.04.27 733호 (p82~82)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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