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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심영섭의 ‘시네마 천국’

폭력과 싸우다 폭력에 물들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폭력과 싸우다 폭력에 물들다

폭력과 싸우다 폭력에 물들다

‘허트 로커’는 폭탄제거반원들의 아슬한 삶을 다룬 영화다.

처음부터 영화 제목이 궁금했다. 허트 로커(Hurt Locker), 직역하면 상처 가득한 사물함. 미군 속어로는 ‘남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남겨주는 어떤 것’이란 뜻이란다. ‘허트 로커’는 제목처럼 영화 중반부까지 참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첫 장면부터 그나마 가장 얼굴이 알려진 배우 가이 피어스가 폭탄을 제거하다 간발의 차이로 관객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여기서 폭탄이란 폭력 자체에 대한 잔혹한 남근적 상징이다. 폭탄 제거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폭탄의 뇌관을 쥔 누군가의 정체를 몰라서, 시야 반경의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폭탄이 놓인 먼지 가득한 바그다드의 도심을 카메라가 핸드헬드로 훑을 때는, 관객의 신경도 함께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은 두꺼운 방탄복에 갇혀 진공의 상태에 놓인 미 육군 폭탄제거반원들의 1인칭 시점과 3인칭 외부 시점을 적절히 섞어가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그들의 내면을 관객에게 묻는다.

특히 주인공 제임스가 제거한 폭탄에 연결된 전선을 따라가다 6개의 폭탄이 한꺼번에 매설된 것을 발견하는 장면의 부감 샷은 관객의 뇌리에 강렬한 기억의 뇌관을 심어둔다. 그만큼 미장센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 선보이는 5번의 폭탄 제거 장면이나 사막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벌이는 전투 장면 등은 모두 웅장한 스펙터클이라기보다 섬세하게 지휘된 서스펜스 심리극에 가깝다. 영화는 군인들의 보이지 않는 상흔과 내면의 상처에 개머리판 가져다 대듯 카메라를 바싹 붙인다.

결국 제임스에게 폭탄 제거의 긴장은 마약과 같다. 이것은 시뮬레이션이 아닌 진짜 전쟁게임이며 터뜨리려는 자와 제거하는 자의 숙명의 대결인 것이다. 폭탄의 비정함은 이 세상 모든 폭력의 속성과 마찬가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서 어린아이,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폭탄을 심을 수 있는 일종의 육체-상자가 되는 세상. 그래서 영화의 끝부분 제임스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수많은 냉장고 문과 시리얼 박스 속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을 때, 우리에게 일상인 삶이 제임스에게는 비일상이 돼버리는 모순을 관객은 자동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결국 제임스가 폭탄 제거에 광적으로 몰입할수록 폭탄제거반 동료들은 그의 돌출행동에 학을 뗀다. 그러나 거나하게 술 취해 서로의 배를 때리고 몸을 비비며 친근감을 드러내는 군인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순진한 새끼사자들처럼 보인다. 감독 캐스린 비글로가 ‘폭풍 속으로’와 ‘블루 스틸’에서 보여줬던 사내들의 의리나 폭력에 대한 매혹이라는 주제가 낯설지 않은 대목이다. 비글로는 전남편인 제임스 캐머런을 따돌리고 아카데미상을 탔을 뿐 아니라, ‘K-19’ ‘스트레인지 데이즈’의 부진 이후 오랫동안 받았던 비평적 홀대와 관객의 무관심을 ‘허트 로커’ 한 방으로 날렸다.



미국은 악마와 싸우다 악마를 닮아간다. 폭력과 싸우다 폭력에 경도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을 잃어가는 미국의 짙은 그림자는 영화의 마지막,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 귀신에 홀린 듯 폭탄을 제거하려는 제임스의 뒷모습과 온전히 겹친다. 그러므로 상처 가득한 사물함에 폭탄 대신 전쟁에 대한 사색을 집어넣어라. 캐스린 비글로는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래도 장르적 쾌감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간동아 2010.04.27 733호 (p84~84)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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