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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66세 ‘무죄효과’ 딜레마

민주당, 한명숙 前 총리 지지도 상승에 희색 … 구시대 인물·검증 미흡 고민도 깊어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66세 ‘무죄효과’ 딜레마

66세 ‘무죄효과’ 딜레마
요즘 정치권에선 한명숙(66) 전 총리를 민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만든 ‘1등 공신’은 검찰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한 전 총리가 뇌물수수 의혹사건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상승세를 탄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ARS 방식) 결과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한나라당)과의 가상대결에서 그동안 20%포인트 전후의 열세를 보이던 한 전 총리가 무죄선고 이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전 총리가 유죄판결을 받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 오히려 호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민주당 관계자들은 희색이 만면하다. 마땅히 경쟁력 있는 서울시장 후보가 없고, 한 전 총리로도 그다지 승산을 점치기 힘들었는데 검찰 ‘덕분에’ 한번 싸워볼 만해졌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민주당 진성준 전략기획국장은 한 전 총리의 경쟁력으로 크게 4가지를 꼽는다. 먼저 한 전 총리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친노세력과 재야 시민사회 진영을 포함한 범민주개혁세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정치적 위치를 지닌 인물이라는 것.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국민참여당)이 서울시장에서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로 선회한 이유도 그 때문이며, 특히 야권연대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장 선거 출사표를 던진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양보할 만한 연대대상으로 한 전 총리만 한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 덕에 한번 싸워볼 만

두 번째는 풍부한 행정 경험이다. 한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1월부터 2003년 2월까지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2월부터 2004년 2월까지 1년간 환경부 장관에 이어 2006년 4월부터 2007년 3월까지 국무총리를 지냈다. 최근 연임 도전을 선언한 오 서울시장은 물론 원희룡, 나경원, 김충환 의원 등 한나라당 예비후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행정능력을 갖추었다는 게 진 국장의 주장이다.



세 번째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노선과는 정반대의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상징성이다. 한 전 총리의 환경부 장관 경험은 현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대척점에 있다. 또 오랜 시민사회단체 활동과 여성부 장관 등의 경험에서 비롯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한 전 총리의 정책 지향점은 현 정부의 기업 및 성장 중심의 정책과는 정반대에 놓여 있다. 여기에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최초의 여성 서울시장에 도전한다는 정치적 의미도 추가된다.

진 국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핵심 정책이슈로 부각될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 세종시, 그리고 정치적 변수로 등장한 천안함 사건, 야권연대, 한 전 총리의 뇌물수수 의혹사건 무죄판결 중 천안함 사건을 제외하면 모든 이슈와 변수의 중심에 한 전 총리가 있다”면서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돌입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측이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바는 한 전 총리가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민심이 현 정부의 중간 심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한 전 총리 ‘무죄효과’가 서울시장, 인천시장, 경기도지사 등 지방선거의 승부를 판가름할 수도권에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하는 것이 민주당의 희망사항이다. 과연 민주당의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를 들여다보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의 이야기다.

“당내에서 한 전 총리를 서울시장 후보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재판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지 않았나. 더구나 검찰에서 새롭게 시작한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과정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면 어떻게 되겠나. 그게 아니더라도 비리의혹을 끊임없이 몰고 다니는 후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솔직히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리라고 자신하는 의원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당내에서 한 전 총리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한 전 총리 측은 경선을 거치지 않고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해주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이명박 정권 정치공작분쇄 및 정치검찰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해찬 전 총리가 만든 ‘시민주권모임’이 총대를 멨다. 그동안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경선을 준비해오던 김성순 의원과 이계안 전 의원 등 예비후보들은 물론, 당내 의원 중에서도 한 전 총리 측의 서울시장 후보 추대 요구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재선 의원은 “한 전 총리는 그동안 제대로 검증받은 적이 없다. 정책 지향점이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낸 적도 없다. 당내 경선을 통해 약점을 걸러내는 과정이 필요한데도 서울시장 후보 추대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처사”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 전 총리는 주택공급과 부동산가격 안정 문제, 강남·북 균형발전 문제, 일자리 문제, 도시경쟁력 문제 등 서울시 현안과 관련해 정책대안이나 고민의 결과물을 내놓은 적이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 전 총리가 현재의 시대 흐름에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김대중 정권 때는 민주화세대가 시대의 중심이었다면, 노무현 정권 때는 영남개혁세력이 시대 흐름을 이끌었다. 이제 새로운 흐름을 이을 차세대가 등장해야 할 시기인데, 한 전 총리가 과연 여기에 해당하는 인물이냐는 것.

장기적으로 손해볼 것 전망도 나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이철희 컨설팅본부장은 “김대중 시절 정치에 입문한 민주화세대인 한 전 총리의 재등장은 민주당이나 민주개혁세력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이 본부장의 전망은 어둡다.

“20, 30대 젊은 세대를 투표장으로 얼마나 이끄느냐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민주개혁진영의 승리를 결정할 가장 큰 변수다. 그런데 한 전 총리는 그럴 만한 힘이 없다. 민주당도 아직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검찰이 한 전 총리를 수사하면서 젊은 세대들을 자극하는 구실을 대신하고 있다. 검찰의 자극이 줄고, 야권연대가 실패해 민주개혁진영이 분열하면 전략적 투표 심리가 감소해 결국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율은 저조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거 결과는 뻔하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이현우 교수는 또 다른 차원에서 민주당의 현 상황을 비판적으로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수사 문제를 앞세워 선거를 치른다면 정책 개발이나 제시를 통해 당의 정체성을 살리고 선거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한 전 총리가 유죄를 받았다면 선거에서 ‘정치탄압’을 이슈화하고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세대교체를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한 전 총리는 올해 만 66세다. 오 서울시장과 원 의원, 나 의원 등 40대 중·후반인 한나라당 예비후보들과는 세대차이가 난다. 이 교수는 “일반적으로 여당후보보다 야당후보가 더 젊고 참신한데 거꾸로 됐다”고 말했다.

선거는 정당이 정체성을 드러내고 지지층을 확보하는 기회다.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차기 총선까지는 1년 10개월, 차기 대선까지는 2년 반도 채 남지 않는다. 이 교수는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수사 문제에만 지나치게 함몰하다 보면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한 전 총리의 ‘무죄효과’에 가려진 암울한 민주당의 현주소다.



주간동아 2010.04.27 733호 (p20~21)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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