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1

2010.04.13

이 봄 사로잡는 ‘명품 선율’

현대캐피탈 초청 BBC심포니 & 110년 전통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 조윤범 현악4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입력2010-04-08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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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봄 사로잡는 ‘명품 선율’

    1 미국의 명문 교향악단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2 영국의 BBC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체코 출신의 지휘자 이리 벨로흘라베크. 3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아라벨라 슈타인바허. 4 2008년 9월부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샤를 뒤투아. 5, 6 BBC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지용과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BBC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한국에 온다. 이름만 들어도 오랜 전통과 높은 완성도가 느껴지는 교향악단이 두 번씩, 모두 네 차례 공연을 한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살아 있는 전설 샤를 뒤투아이고, BBC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체코 출신의 명지휘자 이리 벨로홀라베크다. 더욱이 BBC심포니는 한국 연주자 지용(피아노)과 김지연(바이올린)이 협연을 하는 데다, 1회 공연은 ‘산책 음악회’라고 일컫는 전통의 ‘프롬 콘서트’여서 기대가 크다.

    올해 들어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 연주자의 국내 공연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유명세만 보고 콘서트에 가는 것은 눈 감고 명품가방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연주하느냐다. 뻔한 레퍼토리로 우리를 실망시킨 해외 연주단체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쉽고 간단한 연주만 하고 일본에 가서 훨씬 정교한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걸 보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다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첫째 날 베를리오즈의 서곡과 라흐마니노프의 최후 작품, 라벨의 가장 어려운 왈츠들을 연주하고 둘째 날에는 스트라빈스키의 2개의 발레곡을 연주한다. BBC심포니도 첫째 날 체코 출신 지휘자의 자존심을 건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의 걸작들을 연주하고 둘째 날에는 티펫의 현대음악과 시벨리우스의 웅장한 협주곡, 브람스의 최후의 교향곡을 들려준다.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을 충분히 들뜨게 할 만한 선곡이다. 4차례 공연 모두 놓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레퍼토리다.

    #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첫째 날>>>4월 30일(금) 오후 7시 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환상교향곡’을 쓴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를 흔히 ‘표제음악 작곡가’라고 부른다. 그가 음악에 제목을 붙이거나 내용이 있는 작곡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대표작 ‘로마의 사육제 서곡’도 여기에 해당한다. 평생 기괴한 행동과 괴팍한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베를리오즈는 작품 세계 역시 독창적이다.



    러시아의 낭만음악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늘날 대중의 사랑을 받는 명곡으로 꼽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어려운 기교로 가득해, 이 곡을 헌정받기로 한 레오폴트 아우어가 이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오늘날엔 멘델스존, 베토벤, 브람스의 곡과 더불어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히는 중요한 레퍼토리다. 이번 공연의 협연자인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아라벨라 슈타인바허가 최고의 연주를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는 3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특히 마지막 3번 교향곡은 난해한 현대성에까지 도전한 작품이다. 이런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적 무곡’은 ‘춤곡’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교향곡의 구성에 도전한 독특하고도 심오한 작품이다. 역시 춤곡인 ‘라 발스’는 인상주의 작곡가 라벨이 작곡한 왈츠다. 그러나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같은 음악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오케스트라 전체의 엄청난 기교와 완벽한 호흡이 있어야만 가능한 난곡이기 때문이다. 이 곡을 들으면 고풍스러운 그랜드볼룸의 무도회가 생각날 정도로 흥이 나지만, 연주자들은 어려운 테크닉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연주는 이런 걱정을 뛰어넘어 라벨의 매력적인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둘째 날>>>5월 1(토) 오후 7시 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세기 스트라빈스키의 출현은 음악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913년 프랑스 샹젤리제 극장에서 그가 작곡하고 니진스키가 안무한 ‘봄의 제전’을 초연했을 때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관객들이 극도로 흥분했고, 음악이냐 아니냐를 놓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곡도 지금은 고전이라 부르는 멋진 레퍼토리가 됐다. 이번 공연에는 발레곡 ‘봄의 제전’을 연주회용 작품으로 다시 모은 것이 선보인다. 스트라빈스키의 청년작들은 구성이 매우 크고 격정적인데 대표작이 ‘봄의 제전’과 ‘불새’다. 난해하다고 하지만 두 곡 모두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 등장할 만큼 다채롭고 흥미롭다.

    # BBC심포니 오케스트라

    첫째 날>>>5월 15일(토) 오후 7시,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는 체코에서 가장 먼저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곡가다. 오페라 ‘팔려간 신부’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걸작인데, 오페라보다 서곡이 더 유명하다. 너무 빠른 앙상블이라 숙련된 오케스트라가 아니면 연주하기 힘들지만 신나는 선율은 관객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한다. 음반을 듣는 것보다 직접 연주를 보는 것이 훨씬 멋진 명곡이다. 어떤 이들은 서곡만 듣고 오페라를 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춤곡만 모아 ‘3개의 춤곡’이라는 단독작품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이번 연주회에서 감상할 수 있다.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은 매우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곡이다. 많은 협주곡이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전주를 하는데 이 곡은 시작부터 팀파니의 북소리와 함께 곧바로 피아노가 등장한다. 그 부분이 너무 강렬해서 시작과 동시에 빠져드는 곡이다.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이 작품을 피아니스트 지용이 어떤 연주로 들려줄지 기대된다.

    체코 출신의 드보르자크는 ‘신이 내린 작곡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름답고 절제된, 그러면서도 폭발력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정육점집 아들로 태어난 드보르자크는 스메타나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가 초연될 때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를 연주하기도 했다. 현악4중주, 피아노5중주 같은 실내악 분야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9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가장 유명한 곡이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다. 이 교향곡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신세계에서 자신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곡이다. 드보르자크의 다른 8개 교향곡과 비교해 독창적, 대중적인 면에서 우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둘째 날>>>5월 16일(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현대음악의 거장 티펫의 음악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하나 고전음악의 요소들을 명쾌하게 풀어내 현대화한 작품이 많다. 대표적인 곡이 ‘코렐리 주제에 의한 판타지아 콘체르탄테’다. ‘라 폴리아’라는 바이올린 곡을 쓴 바로크 시대 작곡가 코렐리의 선율을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고전적인 형식 ‘콘체르탄테’로 풀어낸 재미있는 곡이다.

    시벨리우스는 조국의 이름을 딴 ‘핀란디아’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이번에 연주되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매우 어려운 협주곡 레퍼토리로 알려졌는데, 작품성이나 기교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곡이다. 매력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과 BBC심포니의 연주로 직접 듣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협주곡은 교향곡 같은 웅장함을 지녀 관현악 사운드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수많은 곡을 남겼지만 자신이 만족할 수 없어서 많은 작품을 스스로 파기한 작곡가 브람스. 고뇌에 찬 그의 음악은 종종 베토벤의 작품과 비교된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4번 교향곡은 그런 브람스 음악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 오디션 시험곡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이 작품이야말로 이번 BBC심포니 연주의 백미가 될 것이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는 것 이상의 의미는 그들이 최고 레퍼토리를 연주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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