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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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물에 잠긴다, 탈출하라!” 사지에서 꽃핀 전우애

천안함 생존자들 쓰러진 동료 구하기 … 대부분 불면과 악몽, 죄책감에 시달려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04-08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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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만 바다는 여느 날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사고 당시 김현용(27) 중사는 천안함 앞쪽 상황실에서 레이더 탐지 업무를 하던 중이었다. 레이더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펑’ 하는 폭발음이 들렸고 중심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벽에 머리를 부딪힌 김 중사는 잠깐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여전히 배는 요동치고 있었다. 함께 근무하던 동료는 벽과 장비에 얼굴이 부딪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곧 물에 잠긴다, 탈출하라!” 사지에서 꽃핀 전우애

    천안함 침몰 후 구조 장면. 긴박한 당시 상황이 느껴진다.

    맨몸으로 겨우 기어 나와 구명조끼 착용

    ‘뭐지? 전쟁이 났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일단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그는 쓰러진 동료를 부축해 겨우 배 갑판으로 나왔다. 사지에서 탈출한 병사 20명 정도가 이미 나와 있었는데 팬티 바람으로 나온 병사도 있었다. 배 뒷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놀람도 잠시, 그는 배에 남아 있는 다른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흔들리는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누구 없냐? 빨리 탈출해야 돼.”



    배 가장 아랫부분에서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니 탈출하던 병사 한 명이 허리를 붙잡은 채 쓰러져 있었다. 김 중사는 먼저 그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너는 살았어. 내가 왔어.”

    병사는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했다.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김 중사는 병사의 몸에 밧줄을 묶은 뒤 이미 탈출한 병사들에게 위에서 잡아당기라고 말했다. 밧줄에 매달린 병사가 소리쳤다.

    “윽, 아파 죽겠어! 차라리 죽을래요.”

    하지만 김 중사는 멈추지 않았다.

    “야, 정신 차려! 여기는 곧 물에 잠길 거야. 너를 살리려면 어쩔 수 없어.”

    김 중사 덕에 목숨을 구한 두 동료는 현재 성남 국군수도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같은 시각, 평소 안경을 쓰는 장병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직 갑판으로 올라가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갑판 밑 목욕실에서 씻고 있던 입대 두 달차 이은수(21) 이병은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시력이 좋지 않은 데다 안경을 못 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맨몸으로 겨우 기어 나오는데 한 선임이 옷을 입혀주고 길도 알려줬다. 갑판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다가 소방호스를 잡고 내려와 해경 구조선에 탑승했다.

    침대에서 쉬고 있던 육현진 하사는 갑자기 배가 흔들리면서 굉음이 들리자 손을 뻗어 벗어둔 안경을 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정전까지 된 상황에서 그는 더듬더듬 손으로 벽을 짚으며 겨우 갑판에 올라섰다. 갑판에서 그는 동기와 몸을 비비며 체온을 유지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준 육 하사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안도감과 걱정이 서려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배 뒤쪽 체력단련실에서 운동할 시간인데 그날따라 일찍 쉬고 싶었대요. 만일 그날도 운동을 했다면? 상상하기도 싫네요.”

    갑판도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일부 장병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댔다. 신은총 하사 역시 작은아버지에게 “갑판 위에 있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배는 점점 침몰해가고, 갑판으로 올라온 장병들은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멈칫거렸다. 육 하사의 회상에 따르면, 당시 바다 경험이 많은 장병이 “저체온증으로 죽으니 절대 물에 뛰어들지 말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곧 물에 잠긴다, 탈출하라!” 사지에서 꽃핀 전우애

    사고 이튿날 최원일 함장이 실종자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면회 오지 말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

    생존자 일부는 천안함 내의 구명보트를 탔다고 전한다. 배성모(22) 하사는 문병 온 사촌동생에게 “선체에 있던 구명보트를 펼쳐 탔다”고 말했다. 당시 해경은 “당시 어업지도선이 구조한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생존자 56명은 모두 천안함 앞쪽 갑판에 모여 있었다”고 발표했다.

    생존자들은 공통적으로 “굉음과 함께 배가 매우 흔들렸고 폭발음이 들린 지 5분도 안 돼 절단된 함미는 바다에 가라앉았다”고 진술한다. 함장 최원일 중령 역시 사고 다음 날 브리핑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오른쪽으로 90도 기울면서 심하게 흔들렸고, 5분 후 함장실에서 탈출해 보니 함정 반쪽이 이미 없어졌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생존자들도 있다. 서보성 하사는 배가 흔들릴 때 왼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은 것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축을 받아 배 바깥으로 나왔다는 것은 알지만 누가 부축했는지는 모른다. 서 하사의 외삼촌은 “흔들리는 배에서 충격을 받고 정신이 혼미해진 것 같다”며 걱정스레 말했다.

    사고는 순식간이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깊다. 많은 장병이 당시의 끔찍한 현장을 잊지 못한 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강태양 병장의 형은 “태양이가 후임들을 챙기지 못해 많이 힘들어 한다”고 전했다. 강 병장의 형에 따르면, 3월 25일 면회 온 가족에게 강 병장이 “죄를 지은 것 같다. 면회를 자주 오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현용 중사를 비롯해 많은 생존자가 불면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기억상실, 자책, 불안, 수면장애 등.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PTSD)’의 대표적 증상이다. 국군수도병원 신경정신과 과장 출신인 서울대 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지뢰나 다른 폭발사고를 겪은 군인들은 여지없이 PTSD를 호소한다. 약물을 투여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아지지만 증상이 6개월 넘게 지속되면 심각한 문제”라면서 사고 직후 심리치료 등을 통해 PTSD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료들의 생사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에 살아 돌아온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은 마음 놓고 기뻐할 수도 웃을 수도 없다. 이번 사고로 천안함의 동료이자 고향(울산) 선배인 손수민 하사를 잃은 육 하사는 더욱 애가 탄다. 육 하사의 어머니는 “휴가 때면 집에 함께 오고 훈련을 나가면 서로 의지하며 잘 지냈다. 같이 살았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며 말을 아꼈다.

    “그래도 참 밝고 강한 아이니까 우리 아들처럼 꼭 살아올 거예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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