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1

2010.04.13

미군 기뢰… 아군 오폭… 북한 어뢰? 천안함 침몰 미스터리

각종 설과 의혹 난무 갈수록 혼란 … 해병대 전역자들 “그곳은 기뢰밭”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0-04-07 1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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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군 당국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한 설과 의혹이 범람하고 있다. 대부분의 설이 등장했다가 곧 힘을 잃었지만 ‘외부충격설’만큼은 갈수록 힘을 얻는다. ‘주간동아’ 취재 결과, 천안함 전역장병과 전·현직 초계함 함장, 조선공학자들은 한결같이 “함선의 노후화 또는 내부폭발, 암초 충돌로 배가 두 동강 날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전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합동참모본부 고위 관계자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의 답변과 언론 브리핑을 통해 내부폭발설과 함선 노후화설, 암초충돌설에 대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확인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기뢰와 어뢰 등 외부충격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

    일부에선 함선 용접 부위에 미세한 충격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면서 발생하는 ‘피로 파괴설’을 제기하지만 대세는 북한의 기뢰, 어뢰에 의한 사고설로 기울고 있다. 특히 보수적 북한문제 전문가와 전·현직 군 고위 관계자들의 반응은 이미 그쪽으로 고정됐다. 매우 민감한 문제인 탓에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들의 ‘북한 연루’ 주장은 확신에 가깝다. 함선이 두 동강 나 침몰할 정도의 폭발이 있으려면 기뢰나 폭뢰, 어뢰 등 강한 외부충격이 있어야 하고, 사고해역의 해저지형이 북한의 반잠수정이 레이더에 잡히지 않고 활동하기에 최적이라는 것이 그 근거다.

    “기뢰 수백 발 백령도 인근 떠돌아”

    심지어 사고 당시 인근 해역에 북한의 반잠수정이 출몰했다는 설까지 제기됐다. 일부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천안함이 사고지점에 간 것은 반잠수정이 사고 인근 해역에 나타났기 때문이며 그 반잠수정이 쏜 어뢰나 뿌린 기뢰에 천안함이 당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북한 기뢰, 어뢰 공격설에 대한 국방부와 합참, 해군의 공식 반응은 ‘북한이 방어용으로 뿌려놓은 기뢰가 남측으로 흘러내려와 사고가 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정도다.

    그렇다면 천안함이 우리 해군이나 미군이 뿌려놓은 기뢰에 당했을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천안함 사고 이틀 후인 3월 28일 “사고해역 인근에 미군이나 국군이 심은 기뢰는 없는가”라는 국회 국방위 김영우 의원(한나라당)의 질문에 김태영 장관은 “6·25전쟁 당시 북한이 뿌려놓은 3000여 발의 기뢰 중 제거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유실된 게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세월이 너무 흘러 (폭발) 가능성이 희박하다. 미군이나 해군이 심은 기뢰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즉, 아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일축한 것.



    하지만 “군사거점인 백령도를 방어하는데 인근 바다에 기뢰를 한 번도 심은 적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국방위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김 장관은 이틀 뒤인 30일 말을 바꿨다. “과거 폭뢰를 개조해 (백령도 인근에) 적의 상륙을 거부하기 위한 시설을 해놓았는데 모두 수거했다”는 답변이었다. 기뢰가 있기는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제거해서 천안함 사고와 아무 관련 없다는 얘기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일까.

    주간동아 취재 결과, 김 장관의 이 말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백령도 주둔 해병 6여단 출신 복수의 전역장병에 따르면 1960~70년대 심은 300파운드 폭발력의 해저기뢰 수백 발이 유실된 채 백령도 인근 해저에 떠돌고 있다는 것. 2002년에 전역한 해병대 출신 김모(31) 씨의 증언이다.

    “2001년 7, 8월경 해병대 윗선의 지시로 옛 미군 레이더 부대가 백령도 해안 5~10m 깊이에 심어놓은 기뢰가 그 자리에 잘 있는지 확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처음 심은 곳에 그대로 있는 기뢰는 수십 발밖에 안 됐다. 찾아보니 수심 15~20m까지 떠내려간 기뢰가 수십 발 있었다. 윗선에선 수백 발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유실된 기뢰를 포함해 얼마 되지 않았다. 좀 더 깊은 바다로 떠내려간 것이다. 우리는 20m 이상은 내려가지 못해서 더 이상 찾기를 포기했다. 이번 천안함 실종자 구조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백령도 앞바다는 조류의 차가 살인적으로 크고 한여름에도 물에 들어가면 머리가 깨질 만큼 차다. 유속이 너무 빨라서 대부분의 기뢰가 유실된 것이다. 그때 나 혼자 작업한 것도 아니고 같이 작업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김씨와 작업에 나선 이모(32) 씨도 이런 사실을 확인하며 “단독주택 옥상에 있는 물탱크 크기만 한 기뢰였고 폭발을 유도하는 도전선이 붙어 있었다. 500~600발을 심었다고 했는데 얼마 남아 있지 않았고, 떠내려간 것은 그곳의 위치를 부표 등으로 표시만 해두고 물에서 나왔다. 반잠수정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즉,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적어도 2002년까지 백령도 인근 수심 5~10m에 반잠수정 침입 저지용 기뢰가 있었고, 떠내려가 위치를 재확인한 기뢰도 있었으며, 많은 수의 기뢰가 백령도 해저 어딘가에 뿌려져 있다는 것.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해당 기뢰는 1960년대 백령도에서 레이더 기지를 운영하던 미군부대가 설치한 것으로 500~700발이 심어졌고, 1980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제거했지만 일부 유실돼 떠내려간 기뢰가 있었다. 2008년 2개월간 수거작업 끝에 10발을 제거했고 나머지는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병대 측은 “1990년대 이후 정밀 수거작업으로 미군이 설치한 수중 기뢰를 모두 제거했다”며 유실 기뢰를 찾지 못했다는 합참 관계자의 말을 공식 부인했다.

    미군 기뢰… 아군 오폭… 북한 어뢰? 천안함 침몰 미스터리

    북한 반잠수정

    속초함 오폭설과 북한 반잠수정 침투설

    2001년 당시 기뢰 탐색에 나섰던 전역 해병장병들은 “우리는 기뢰 수거나 해체작업을 한 게 아니다. 북한의 반잠수정 방어용 기뢰인데 왜 제거를 하겠나. 단지 기뢰가 제 위치에 있는지 살피고 유실 기뢰를 찾아 위치만 표시해두고 나왔다. 이번 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 30~40m 아래에 있는 1200t급 함선을 찾는 데도 며칠씩 걸리는데 수심 20m 더 아래로 떠내려간 유실 기뢰를 다 찾아 제거한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역 해병장병들은 천안함 사고에 대해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130t급 참수리함 같은 고속정도 잘 들어오지 않는 백령도 인근 1마일(1.8km) 사고지점에 1200t급 대잠 초계함이 왜 들어왔냐는 것. 초비상 상황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역해병 김씨는 “백령도 해병대 출신 누구에게 물어봐도 관할지역인 백령도 해안 1마일 사고지역까지 해군 함정이 들어오는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한다. 물론 나도 못 봤다. 인근이 모두 기뢰밭인 줄 안다면 누가 들어오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사실은 천안함에 근무한 전역장병들과 전직 초계함 함장들도 이구동성으로 증언하는 내용. 즉, 긴박하고 특별한 작전지시가 있지 않고는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 바다로 들어올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선 두 가지 설이 대두된다. 하나는 사고 당일 있었던 ‘2010 한미연합 독수리훈련’ 중 오폭설이다. 국방부는 3월 29일 오전 독수리훈련과 천안함의 사고지역 진출의 관련성을 묻는 김영우 의원의 질문에 “해상 독수리훈련은 3월 18일 모두 종료됐다. 천안함은 지금까지 15번이나 사고지역을 오갔다. 그날은 파도가 높고 날씨가 안 좋아 섬 사이 지역으로 피항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공개된 ‘서해상 한미 해군연합훈련’ 자료에 따르면 한미 해군은 천안함이 침몰하던 3월 26일 독수리훈련이 한창이었다. 미군 이지스함이 2척, 한국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최신예 전투함인 최영함과 윤영하함 등 2함대 배속 함정이 모두 참가했다.

    오폭설의 근거는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직후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속초함의 76mm 함포사격이다. 즉, 독수리훈련에 함께 참가한 속초함이 풍랑이 거센 악천후에서 천안함을 미확인 물체로 오인하고 함포사격을 해 침몰시키지 않았냐는 추측이다. 합참은 “두 함선은 독수리훈련과 관계없다. 속초함이 함포를 쏜 것은 레이더에 새떼로 보이는 물체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속초함이 사고현장에 도착한 것은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한참 후다. 경고사격으로 130여 발을 쐈다. 레이더에 잡힌 물체의 정확한 내용은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합참의 이런 해명은 의혹을 더했다. 76mm 함포는 비행물체를 맞히기 위한 대공포가 아니라 10km 반경 안에 있는 함선을 침몰시킬 때 쓰는 파괴력이 아주 큰 대함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설은 실제 천안함 사고지역에 북한의 반잠수정이 나타났고, 그 반잠수정이 쏜 어뢰나 기뢰에 천안함이 두 동강 났다는 의혹이다. 이 설은 천안함이 평소 잘 다니지 않던 백령도 인근 지역에 들어간 까닭과 속초함이 함포사격을 계속한 원인을 한꺼번에 해소해줄 수 있는 까닭에 날개가 달린 듯 퍼져나가고 있다. 정보 당국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이 의혹은 반잠수정이 실제 이 지역에 자주 출몰하고 레이더에도 잘 잡히지 않는다는 미확인 군 관계자의 설명, 실제 반잠수정이 출현했음을 확인했다는 미확인 보도를 등에 업고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속초함과 교신 내용을 공개하라”

    하지만 지금까지 대두된 어뢰설, 기뢰설, 오폭설 등의 최대 약점은 천안함 사고 생존자 대부분이 사고 당시 화약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증언한 대목이다. 또한 폭발 후 부유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기뢰든, 함포사격이든 1200t급 함선이 물 위를 벗어나 공중에 뜰 정도의 충격이 있었다면 화약냄새가 진동하고 파편이 튀어야 하는데, 그런 징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 언론이 사고 이전 천안함과 속초함의 무전교신 내용 전체를 공개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 국방부, 합참, 해군 어느 곳도 속 시원한 해명을 미룬 채 “천안호 함선을 인양해 절단면에 대한 조사를 해봐야 사고원인을 알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한다. 갈수록 “군이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의심이 커지고 각종 의혹이 고개를 들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 과연 천안함 사고의 진실은 무엇일까. 정부가 계속 모호한 자세를 보인다면 천안함 인양에 성공한다 해도 수많은 설과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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