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9

2010.03.30

통렬한 현실 비판, 유쾌한 웃음

차이무극장 ‘B언소’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0-03-23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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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렬한 현실 비판, 유쾌한 웃음

    온갖 ‘깊숙한’ 이야기가 해학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변소’.

    변소는 ‘배설’의 공간이다. 신진대사로 인한 배설뿐 아니라 가슴에 쌓아놓았던 감정과 억압돼 있던 정신활동을 해방시키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런 곳을 배경으로 하는 도발적인 작품이 있으니, 바로 연극 ‘B언소’다.

    ‘B언소’는 중의적인 의미로, ‘변소’인 동시에 ‘소위 B급 언어(言)로 떠들어댈 수 있는 곳(所)’이기도 하다. “막말로”라고 운을 띄우며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은 도발적인 연극 간판은 변소의 낙서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변소에는 남의 눈치 보느라 꺼내지 못했던 온갖 ‘깊숙한’ 이야기가 해학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B언소’는 변소라는 공간을 활용하며 가치의 전복을 통해 카니발의 웃음을 유감없이 자아내는 희극이다. 일관된 스토리는 없다. 그러나 콘셉트에는 확실한 주관과 통일성이 있다. 작가이며 연출자인 이상우가 규정했듯 ‘연극 콜라주’인 것이다. 즉 변소라는 배경에서 벌어지는 짤막하고 이질적인 극을 수없이 이어붙인 구성이다.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 사회, 정치에 대해 동시적이면서도 통시적으로 건드리고 있다. 이전의 정권뿐 아니라 현 정권의 유명 인사들에 대해서도 매우 용감하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주목할 점은 이를 은유적인 언어와 이미지로 (어렵지 않게) ‘빗대어’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는 사실이다.

    인물들은 양복을 입고 변기를 차고앉은 채 정치 언쟁을 벌이며 문을 밀치는 신경전을 보여주기도 하고, 궤변을 펼치면서 저열한 줄서기를 행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서민들의 한을 풀어내기도 하는데, 책 읽는 행위를 가장해 욕을 내뱉기도 하며, 힘든 일상을 하소연하다가 옆 사람의 ‘거시기’와 자신의 것을 비교하곤 주눅 들기도 한다. 거시기는 서열이나 권력과 같은 사회적인 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반짝이 옷을 입은 채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노래 부르는 여인도 간간이 등장하는데, 가사가 매우 시니컬하다. 이처럼 풍자적으로 묘사되는 장면들 끝에는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은 잠옷 가운 바람으로 공공 변소의 한 칸에서 ‘죽 때리는’ 한량이다. 네이버 지식인을 떠올리게 하는 ‘뭐든지 물어보세요’에 전화하다가 ‘강퇴’당하는 이 사람은, 잘 보면 알겠지만,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관찰자적 인물이다.

    이런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에 기괴한 장면들이 유쾌한 웃음으로 소화된다. 문성근, 강신일, 김승욱, 이대연, 김중기, 민복기, 이성민, 박원상, 최덕문, 박지아, 오용, 서동감, 공상아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5월 2일까지 차이무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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