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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시골의사’의 책장

대중에게 온 ‘철학사의 아이폰’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

대중에게 온 ‘철학사의 아이폰’

대중에게 온 ‘철학사의 아이폰’
‘철학 vs 철학’(그린비 펴냄)의 저자 강신주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학문의 근본이 수학과 철학이라고 말한다. 수학은 과학적 구조를 가진 모든 학문의 기초다. 이를테면 과학기술이나 건축, 설계, 기계공학, 심지어 계량경제학 같은 분야 말이다. 이렇게 수학적 지식이 바탕을 이룬 학문의 발전은 탑을 쌓아올린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것이다. 누군가가 쌓아올린 지식과 이론이 부정되면 누군가는 다른 돌을 얹어간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탑의 높이는 점점 더 까마득해진다. 소위 과학문명의 발달이다.

반면 철학을 바탕으로 한 학문의 특징은 수평적이고 산발적이다. 문학, 사학, 철학 같은 인문학이 그러하다. 데카르트를 알아야 칸트를 알고 칸트를 알아야 헤겔과 라캉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데카르트, 칸트, 소쉬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모두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미적분을 모르면 로켓을 발사할 수 없지만, 데카르트를 몰라도 데리다를 논할 수 있다.

인문학의 존재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과학기술의 시대에 첨탑만 쌓아올리면 정작 이 탑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용도가 무엇인지 고민할 여유가 없다. 그저 높이, 더 높이만 외친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사유의 힘이고 통찰이다. 결국 수학적 학문과 철학적 학문의 교집합만이 높이와 넓이 이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인 셈.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당위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과학기술의 경쟁에 내몰려 통찰과 안목이 소멸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식의 첨탑 쌓기 경쟁이 전부가 되면서 문명은 이성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과학 우위의 시대에 철학 부재가 낳은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문학을 논하기 전에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물리학을 위해 수학이 필요하듯, 인문학을 하려면 철학부터 접해야 한다는 사실. 인문학 특강을 듣기 위해 최고경영자(CEO)들이 호텔에 몰려봐야 철학적 바탕이 없으면 헛일이다. 철학적 사유를 도외시한 채 인문학을 논하는 것은 인수분해를 모르면서 혜성의 궤적을 추적하는 것만큼이나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 철학으로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철학을 논하는 언어들은 생경하고 철학자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는 불편하다. 이런 철학적 사유와 언어들에 쉽게 접근하는 방식이 바로 철학사를 읽는 것이다. 난해한 철학자들의 개별적 사유를 공부하기에 앞서 철학의 조류가 변하는 과정과 배경을 이해하고, 그들 철학의 논점과 요지를 이해한다면 자신에게 적합한 철학자를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

한데 철학사 책을 읽다 보면 미로의 입구 찾기는 고사하고, 도처에서 미궁에 빠지고 만다. 연대기적 구성을 중심으로 한 천편일률적 형식의 철학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갈증이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만한 역저가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이다. 저자는 이 시대의 고민들을 논제로 내세워, 이 논제에 대립적인 또는 비교될 만한 논지를 전개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병렬로 배치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철학적 사유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철학에는 정답이 없는지, 정답이 없음에도 우리는 왜 철학을 가까이해야 하는지를 철학자 간의 논리싸움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철학사 책에서 느끼게 되는 갈증을 일거에 해소한 걸작이자, ‘철학사의 아이폰’이라 하겠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철학사의 주요 논점이 현대의 화두로 변신해 부활하는 실상을 목도하고, 인류사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간파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철학 입문자뿐 아니라,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른다. 구름 위에서 고아한 단어들만 쏟아내며 철학을 ‘그들만의 학문’으로 끌어안던 철학자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주간동아 2010.03.30 729호 (p87~87)

  • 박경철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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