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8

2010.03.23

얄미운 반칙왕 오노, 미국서 ‘슈퍼스타’ 대접 왜?

강연회·사인회로 철저한 이미지 관리 … 에이즈 추방 등 자선활동에 열성

  • 스코츠데일(미 애리조나 주)=문상열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moonsytexas@hotmail.com

    입력2010-03-17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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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얄미운 반칙왕 오노, 미국서 ‘슈퍼스타’ 대접 왜?

    오노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스포츠 부문에서 나타나는 애국심은 어느 나라 국민이나 비슷하지만 한국인의 열정은 특히 대단하다. 한국 선수와 맞붙는 선수는 실력과 관계없이 혹평을 받는다. 예전 박찬호 선수 전성기 시절 그와 맞대결한 선수와 타자는 모두 저평가됐다. 박찬호 중심의 기사가 낳은 결과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디어 종사자들의 식지 않는 애국심 발동 때문이다.

    공정하게 경기해도 그런데 할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빼앗은 경우는 오죽할까. 아폴로 안톤 오노(28)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과장된 몸짓으로 김동성의 금메달을 사실상 빼앗았다. 그는 이후에도 한국 선수들과 악연을 이어갔고, 대한민국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다. 인터넷 공간에서 오노를 위한 변명을 하면 매국노라 손가락질 받는다. 하지만 미국 내 오노의 인기는 여느 종목의 슈퍼스타와 맞먹을 정도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LA타임스’가 ‘주목해야 할 스타와 이벤트 10’을 뽑았다. 그중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터 오노가 1위, 알파인 스키어 린제이 본이 2위에 올랐다. 미국은 본토 내에서만 3시간의 시차가 있을 정도로 땅덩어리가 큰 나라다. 그래서 슈퍼스타라고 해도 김연아와 같은 인기는 실감하기 어렵다. 대략 연봉이나 수입으로 그 위상을 측정할 뿐이다. 이런 사정임에도 오노는 슈퍼스타급이다. 스케이트 선수들에게는 롤 모델로 통하며, 그의 반칙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게임 요소가 강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은 몸싸움이 불가피한 종목이라는 것이다.

    미국 동계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

    오노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추가하며 역대 미국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 밴쿠버올림픽이 끝난 3월7일(한국 시간), 오노는 덴버에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하고 음주를 멀리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행사에 참석한 청소년에게 사춘기 때 긍정적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5개 도시에서 사인회를 겸한 강연회를 열어 올림픽의 인기를 팬과의 접촉으로 연결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스폰서가 있고, 그에 걸맞은 개런티를 보장받았다. 그는 또 인기, 용모, 퍼스낼리티를 두루 갖춰 해설자로도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노의 오락가락한 언행을 불안정한 성장 배경과 관련짓기도 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성추문 이후 성명서를 발표할 때와 흡사한 분위기다. 당시 미국의 미디어들은 이미지 전문가와 보디랭귀지 전문가를 동원해 우즈의 표정을 세밀히 파악했다.

    하지만 성장 배경을 끌어들이는 처사는 과하다. 올림픽 기간 중 NBC는 아버지 유키 오노가 아들 오노를 강하게 키운 점을 부각해 스타플레이어의 스토리를 방영했다. 수억 달러의 중계권료를 내고 동계올림픽을 단독 중계하는 NBC의 올림픽 준비는 완벽에 가깝다. 종목별 스타 탐구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NBC 방송은 오노가 어부지리로 쇼트트랙 1500m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뒤 1000m 예선 때 국내 언론을 인용해 “금메달리스트 이정수가 오노는 시상대에 설 가치가 없는 선수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또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를 거론하며 “오노는 한국 선수들과 사이가 나쁘다”는 지적도 했다. 미국 방송의 오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이 정도다.

    오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목 자르는 제스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때의 할리우드 액션, 한국 선수의 실격을 바란다는 기사는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 또는 변명을 했다. 그에 대한 진실, 오노의 속은 아무도 모른다. 미국 스포츠 스타들의 ‘말 바꾸기 전략’과 ‘치고 빠지기’는 그 사례를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만큼 일반적이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보자. 로드리게스는 10년 계약에 미국 스포츠 사상 최다 액수인 2억7500만 달러를 받기로 한 슈퍼스타다. 그는 2007년 12월 아내 신디아(현재는 이혼)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CBS의 60분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은 한 번도 약물복용을 하지 않았다”고 천연덕스럽게 주장했다. 그러나 2009년 2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의 여기자가 “2003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MVP를 수상했을 때 로드리게스의 약물복용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는 폭로 기사를 터뜨렸다. 처음에 아니라고 발뺌하던 로드리게스는 ESPN을 통해 “당시 어린 나이에 심리적 압박을 받았고 자신이 너무 나약했다”며 사실을 시인했다.

    이 밖에도 대학 풋볼 감독들의 말 바꾸기는 신물이 날 정도다. 신시내티 감독을 지낸 뒤 노터데임 대학으로 이적한 브라이언 켈리, 앨라배마 대학의 닉 세이번, 아칸소 대학의 보비 페트리노 감독은 전날까지 다른 팀으로 이적하지 않는다고 학생들과 기자들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다음 날 기자회견을 갖고 현 소속 팀으로 옮긴 ‘말 바꾸기 대가’들이다.

    이런 오리발 내밀기 뉴스를 수없이 접한 오노이기에 국내에서 지적한 인터뷰 내용을 죄의식 없이 뒤집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노가 우리 식으로 진의가 와전됐다거나 미스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주장했다면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국내 언론이 인터뷰를 영상이나 녹음으로 담아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자 매체의 인터뷰는 오노에게 증거로 내밀 수가 없다. ‘동아일보’의 인터뷰에 따르면 오노는 “한국 선수들의 실격을 바란다고 말한 적조차 없다. ‘이호석이 성시백과 몸싸움이 있었는데 그 선수가 실격인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을 뿐이다. 왜 언론에 내가 실격을 바랐다고 나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스타플레이어들의 인터뷰와 발언을 TV 화면 혹은 라디오 녹음으로 기록해 ‘진의 와전’ ‘왜곡’ 등을 앞세워 해명할 수 없다.

    잇따른 CF 촬영으로 인기 증명

    오노는 2002년, 2003년, 2006년 설리번 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상은 스포츠맨십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마추어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반칙을 일삼으면 당연히 후보에 오를 수 없다. 또 오노는 2007년 ABC 방송의 리얼리티 쇼 ‘스타와의 댄스(Dancing with the stars)’ 프로그램에 출연해 1등을 차지했다. 이 프로에는 그동안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NFL(북아메리카 프로 미식축구 리그)의 스타들이 출연했다.

    미국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명예뿐 아니라 인기도 중요하다. 미국의 올림피언들은 메달을 따더라도 국내처럼 연금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종목별로 인기가 높은 선수는 CF 계약 등으로 거금을 챙긴다. 동계올림픽 여자 활강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린제이 본은 조만간 영화배우로 데뷔할 예정이다. 뛰어난 외모를 지닌 그는 이미 밴쿠버 대회가 열리기 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표지 모델로 등장해 “너무 선정적이다”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오노는 맥도널드, 제너럴 일렉트릭, 감기약 빅, 코카콜라 등과 스폰서 계약을 맺어 큰 수입을 올렸다. 명품시계 오메가도 오노의 스폰서다. 밴쿠버올림픽 기간에는 알래스카 항공사가 스폰서를 맡았다.

    그렇다고 그가 돈만 챙기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인기를 팬들에게도 돌려주고 있다. 그의 인기를 자선활동에 적극적으로 연계시키는 것이다. 에이즈 추방, 구세군 활동, 수학공부 돕기 등 수많은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그의 반칙 플레이는 밉지만 사람에 대한 한국 내 평가는 다소 가혹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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