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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흔들리는 자본주의 공자 DNA를 찾아라 07

유학에 심취한 사람들

장로회신학대 배요한 교수·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서양철학자) 전헌 초빙교수

유학에 심취한 사람들

■ 유학에 심취한 사람들①

“예수 믿게 하려면 전통사상 알아야 합니다”

[장로회신학대 배요한 교수] “보수적인 신학자들에 특히 더 필요”


유학에 심취한 사람들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장로회신학대학교(이하 장신대) 배요한(40) 교수. 목사이기도 한 그의 박사학위 전공은 엉뚱하게 유교철학이다. 장신대에서 학부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성균관에서 유교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왜 목사가 동양철학을 기웃거리느냐” “신학자로서 마땅치 않은 행보다”. 남다른 길을 걸으며 그간 가슴앓이도 심했다. 3월5일 장신대 캠퍼스에서 그를 만나 신학과 유학의 길을 동시에 걷게 된 사연을 들었다.

부부의 신앙이 깊어가던 겨울, 아기 울음이 울렸다. 3형제 중 둘째, 이름은 요한. 뱃속에서 “목사가 돼라”는 부모의 기도를 들었고, 걸음을 뗀 직후부터 매일 새벽 5시 반 가정예배를 드렸다. 철없는 실수조차 하지 않는 경남 진해 제일의 ‘애늙은이’, 명문대에 갈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1988년 장신대에 진학했다. 꼬마 시절부터 ‘목사가 될 아이’였던 그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신학교는 ‘준(準)천사급’만 오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전국적인 데모 바람에 수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요. 울면서 기도하는 날이 늘었고, 자연히 문제의식이 싹텄습니다.”

인정받는 목회자. 신학대 학생은 대부분 같은 길을 꿈꾼다. 교회가 많고 사역지가 보장된 당시 다른 쪽에 관심을 두는 학생이 많지는 않았다. 배 교수는 1학년 2학기부터 문화신학을 고민하던 동아리인 동양사상연구회에서 ‘논어’를 읽고 ‘맹자’를 외웠다. 왜 하필 동양사상일까.

“마음 한구석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요. 저는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한국인이잖아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주로 서구신학만 강조할 뿐 한국적 뿌리에 대한 가르침은 거의 주지 않았죠. 근세 500년을 지배한 유학을 살피면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신학자로서의 고민도 있었다. 천주교를 포함한 한국 기독교는 조선후기 이래 유학자들이 도입했다. 주자학을 연구하며 느낀 염증이 새로운 가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 그가 한국적 신학을 정립하려면 먼저 유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서구의 기독교와 한국의 기독교는 시작과 발달과정이 달라요. 무속신앙, 유교, 불교 등 기존 한국정서를 모르고는 한국적 신학의 성격을 규명할 수 없죠. 그럼에도 신학계는 서구이론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경향이 있어요. 서구의 기독교는 이미 하향길에 접어들었는데, 그쪽 이론만 무작정 따라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죠.”

동양사상을 공부할수록 강한 확신이 들었다. 마음도 안정됐고 신앙도 제자리를 되찾았다. 다만 학문적 가르침을 구할 곳이 없어 아쉬웠다. 유학을 좀더 깊이, 체계적으로 알고 싶다는 욕심에 그는 1995년 성균관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학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친한 선배는 그에게 “마귀새끼”라며 눈을 흘겼고, 교수들은 “모범생인 줄 알았는데 엉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전공 교수들에게 제대로 듣는 유학 강의의 꿀맛에 시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기동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데 가뭄에 단비를 맞는 기분이었어요. 너와 내가 하나라는 ‘인(仁)’, 그들 사이에 지켜야 할 매너인 ‘예(禮)’의 개념을 알고 나니 왜 초코파이 ‘정(情)’이 그토록 인기인지, ‘나’가 아닌 ‘우리’라는 단어를 쓰는지 우리 사회를 읽는 눈이 생기더군요.”

유학을 공부하며 한국적 기독교를 이해하는 통찰도 얻었다. ‘왜 한국인은 주변에서 권하면 따지지 않고 교회에 갈까’ ‘한국인의 신앙생활이 유독 열정적인 이유는 뭘까’. 유학의 잣대로 바라보니 평소 품었던 의문이 단박에 풀렸다.

“한국 유학의 핵심은 ‘천인무간(天人無間)’, 즉 하늘과 나는 ‘간격(사이)’이 없다는 거예요. 하늘과 내가 간격이 없는데도 나는 하늘처럼 못하니까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수양을 하는 거죠.”

유학적 배경지식은 목회활동에도 도움이 됐다. 배 교수는 학생시절부터 교육전도사와 목사로 봉사해온 마천중앙교회에서 주일마다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때로 설교도 한다. 부모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효’ ‘예’의 개념과 상황을 버무려 설교를 하니 신도들이 입을 모아 “낯설지 않고 이해하기 쉽다”고 호응한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본인의 마음이 한결 편해진 점이다.

목표는 비슷하되 방법론은 다른 ‘성경’과 ‘사서삼경’

“어릴 적 어딜 가나 별명이 ‘목사’였어요. 목사로서 흠이 없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그 틀에 스스로를 맞춰가면서 답답함도 느꼈죠. 하지만 동양학을 공부하면서 내 마음을 자연스럽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유학은 누구나 자연스러운 절제를 타고나며 ‘중용’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해요. 희로애락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르라는 것이죠. 공자가 일흔에 ‘마음먹은 대로 했지만 하나도 법을 넘어서지 않았다’고 말한 것처럼요.”

유학이 자연스러운 감정을 인정한다면 기독교는 어떨까. 이에 배 교수는 “성경도 다르지 않지만, 유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그 점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느냐’며 엄격하게 성격을 해석할 뿐, 인간을 기쁘게 하는 복음의 진면목은 보지 못했다는 것.

그는 기독교와 유학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목표는 거의 비슷하다. 둘 다 공자와 예수가 걸어간 길을 따라 더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존재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방법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유학이 나의 수양만으로 성인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반면, 기독교는 예수의 도움 없이는 완전한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다. 신학자이자 유학자인 그의 생각은 어느 쪽일까. 질문에 그는 “본인의 결정적인 정체성과 연결되는 대목”이라며 조심스레 생각을 골랐다.

“저는 기독교의 구원관이 매우 설득력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가능성과 한계성이 있고, 한계성 때문에 죄를 짓고 실수를 하죠.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런 인간이 완벽한 존재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성경은 정확하게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목사로 남을 수 있는 거겠죠.”

유학을 공부하는 목사에게 신학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이유를 묻기 전 의심부터 했다. 비판의 도마에 오를 때마다 그는 “모든 목회자, 특히 보수적인 신학자에겐 꼭 유학 공부를 권한다”고 말한다.

“제사를 거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예수를 못 믿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유학에서 제사는 ‘정성’이에요. 내가 정성을 다하면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이 함께 있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죠. 기독교인이라 제사를 지내는 동안 절은 하지 않더라도 기도를 하거나 음식을 더 많이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행사에 동참하면 문제 될 게 없어요. 예수를 믿게 하려면 전통종교를 알아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저런 비판은 ‘그 사건’ 이후 수그러들었다. 2001년 배 교수와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가 함께 ‘도올의 일본 베끼기’(現 ‘도올논어 바로보기’)라는 책을 출간한 뒤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됐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2000년경 TV유학 강의를 하면서 기독교를 희화화했어요. 문제제기의 필요성을 느낀 개신교에서 그와 관련한 포럼을 계획했고, 장신대 교수 한 분이 제게 관련 글을 요청했죠. 이후 개신교에서도 동양철학을 알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그의 꿈은 한국에서 새로운 종교개혁의 싹을 틔우는 것. 신학적 전통과 유학적 전통의 조화 위에 기독교가 부흥한 한국이야말로 21세기 신학의 보고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 소리를 듣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철저한 신앙교육으로 동서양 사상이 융합된 기독교의 발전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유학에 심취한 사람들②

“만물은 하나, 다양성과 변화는 즐기는 것”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서양철학자) 전헌 초빙교수] “차별 않고 돌보는 것이 바로 종교”


유학에 심취한 사람들
‘깨달음’이란 뭘까. ‘완전한 지혜를 얻는 경지’에는 어떻게 오를까. 한국 현대불교계의 큰 족적을 남긴 성철 스님은 생전에 그 해답을 ‘돈오돈수(頓悟頓修)’라고 했다. 수행을 정진하다 보면 ‘갑자기 깨닫고 갑자기 닦는다’는 의미다. 그 깨달음의 경지는 더 이상 수련이 필요 없는 최고의 경지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3년 10월16, 17일 이틀간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성철스님 열반 10주기 기념 국제학술회의’의 주제는 ‘돈오돈수론’이었다. 회의에는 세계적인 불교학자 로버트 지멜로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쿠옹 뉴옌 조지메이슨대학 교수, 찰스 뮬러 일본 도요가쿠엔(東洋學園)대학 교수 등 불교를 비롯해 유교와 도교, 기독교, 인지과학 등 국내외 각 분야 권위자가 대거 참가해 자신들의 주장을 폈다. 이 가운데 돈오돈수론에 대한 한 재미 한국인 학자의 재해석이 주목을 끌었다.

“성철 스님은 돈(頓)을 통해 종교의 제자리 매김을 했다. 부처님도 돈의 한 지칭이요, 하나님도 돈의 이름이다. 돈오돈수론은 단번에 사이비 종교와 사이비 학문을 척결하고 종교의 제자리를 찾았다.”

이 학자의 해석대로라면 각 종교에서의 ‘신’은 곧 깨달음이라는 최고 경지에 오른 존재들이고, 이들은 모두 ‘돈’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보기에 따라 종교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적’ 발언인 것. 그 장본인이 바로 당시 미국 뉴욕주립대학에서 동·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던 전헌(68) 교수다.

신학과 철학 구분은 ‘인간 지성사의 오류’

전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에 있다. 국제학술대회 이듬해인 2004년 성균관대에 초빙교수로 와서 7년째 강의를 맡고 있다. 학술대회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현재 그는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양철학을 가르친다. 또 국민대에선 학부생을 대상으로 책읽기와 영화 속의 철학사상을, 대학원에서는 문화교차학을 강의한다.

전 교수는 시인 전병택 씨의 아들이다. 지난해 아시아계 최초로 미국 다트머스대학 총장에 오른 김용(미국명 Jim Yong Kim·50) 하버드 의대 교수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전 교수는 김 총장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1964년 서울대 철학과(서양철학)를 졸업한 전 교수가 유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독특한 사상적 흐름과 무관치 않다. 1966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텍사스 주 댈러스 시에 자리한 남부감리교대학(SMU)에서 신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또다시 신학석사 과정을 밟았다. SMU는 부시 미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여사가 졸업한 학교로 유명하고, 프린스턴신학대학원은 프린스턴대학의 전신이다. 그가 신학을 선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신학과 철학에 구분이 생긴 것은 인간 지성사의 오류이자 ‘사고의 착오’다. 신학과 철학에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철학의 연속선상이라고 생각했다.”

전 교수가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강의를 선뜻 맡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성균관대에 서양철학을 가르칠 만한 교수가 없었겠느냐. 굳이 나를 초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학과 유교는 구분이 없다. 유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신학과 철학을 구분하지 않고 연구한 학자에게 서양철학을 배우면 뭔가 공유하는 ‘광장’이 있지 않겠느냐. 성균관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명륜동에 자리한 것도 나의 한국행에 영향을 미쳤다.”

전 교수가 미국 생활 내내 학문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다. 유학생활 6년 만인 1972년 공부를 접고 친형과 함께 가발사업에 뛰어들었다. 가발 수입도매상을 하던 그는 2년 후 동생에게 사업체를 물려주고 중동으로 진출했다. 한국 건설회사들이 중동으로 진출하면서 기술과 물자, 자재 등을 공급하는 회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교학 구분하지 않는 유학이 진정한 학문

전 교수가 1974년부터 89년까지 15년 동안 운영하면서 회사는 한 해 수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에서 사실상 학자라기보다는 기업가로 자리매김했던 것. 하지만 인생의 반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1974년부터 미국 시카고 매코믹신학대학원(장로교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와달라는 연락이 왔던 것. 110년 전통의 매코믹신학대학원은 우리나라에 개신교 선교사들을 보내 장로교를 뿌리내리게 했던 학교다. 전 교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학교를 떠난 지 15년이 지났는데 왜 갑자기 자신에게 연락을 했는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매코믹신학대학원에서는 그때 이미 ‘더 이상 서양이 주도하는 세계가 아니다. 세계화를 위한 준비를 학교가 나서서 해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학교는 먼저 자체평가를 하고 신학교육의 구조를 새롭게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 그 일환으로 철학과 신학을 구분하지 않았던 나를 필요로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평소 하고 싶었던 ‘철학신학’ 분야를 맡아달라고 해서 결국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렇게 2002년까지 13년간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들과 학생들을 거들어주면서 내 공부를 하는 맛”으로 강의를 하다가 2003년 뉴욕주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매코믹신학대학원에서는 2005년이면 정년퇴임을 해야 하는데, 뉴욕주립대학은 정년이 없었던 것. 하지만 1년 만에 그는 성균관대의 초청으로 한국행을 선택했다. 유학은 1989년 이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학문을 연구하면서 풀어야 했던 ‘숙제’를 한순간에 해결해줬다.

전 교수는 평소 지론인 ‘철학과 신학은 같다’를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로 유학을 꼽고 있다. “교학을 구분하지 않는 유학이야말로 진정한 학문”이라는 것. 전 교수는 ‘만물은 하나’라는 유학의 가르침도 자신의 철학과 통한다고 말한다.

“어떤 종교든 ‘만물이 다 하나’라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온 우주, 만물을 차별하지 않고 돌보는 것이 바로 종교다. 다만 부처와 하느님, 알라 등의 이름으로 나뉜 것일 뿐이다.”

전 교수는 사회적 갈등과 전쟁은 ‘만물이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만들려는 잘못된 생각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불평등과 차별주의도 같은 이유라는 것.

전 교수는 “만물은 하나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 다 다르고 달라져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서로에 대한 다양성과 창의성, 변화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주간동아 2010.03.23 728호 (p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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