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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김지은의 Art & the City

예술은 창조가 아닌 존재의 재해석

가브리엘 오로즈코 ‘My Hands Are My Heart’ & ‘Piedra que cede’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예술은 창조가 아닌 존재의 재해석

예술은 창조가 아닌 존재의 재해석

‘My Hands Are My Heart’, 1991, Two chromogenic color prints, 각 23.2x31.8cm

1995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언뜻 보면 고구마 같은 정체불명의 덩어리 5개가 8만8631달러, 우리 돈으로 1억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됐습니다. 작품 제목은 ‘Socks(five)’, 양말 5짝이었는데요. 멕시코 출신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48)는 자신이 신던 양말에 ‘파피에 마셰’(papier-mache, 우리말로 혼응지. 펄프에 아교를 섞어 만든 종이 재질로 습기에 무르고 마르면 아주 단단해진다)를 넣은 뒤 완전히 마른 상태가 됐을 때 양말을 벗겨냈습니다. 이렇게 만든 작품 표면에는 양말의 질감이 고스란히 남아 있죠. 하지만 이미 양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양말에서 나왔지만 양말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새로운 추상적 오브제가 탄생한 거죠.

비슷한 예를 한 번 더 볼까요? ‘My Hands Are My Heart’(1991)라는 작품은 촉촉한 진흙을 두 손으로 움켜진 뒤 다시 손을 펼쳤을 때의 모습인데요. 완성된 오브제는 손가락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사람의 심장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 제작 과정이 너무 단순하다고요? 바로 이것이 오로즈코 작품세계의 특징입니다. 그는 제작 과정을 최소화하고 작품이 지닌 물성을 유지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오브제로 재탄생시키는데요. 그의 말을 빌리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작품 때문에 그는 멕시코뿐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는데요. 그의 작품들의 공통점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에 가장 단순한 행위만을 가한 뒤 사람들이 새롭게 경험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진흙덩이가 생명을 상징하는 심장으로 변형됐듯 말이죠.

예술은 창조가 아닌 존재의 재해석

‘Piedra que cede’, 1992, Plasticine, 36.8x39.4x40.6cm, Collection the artist

마지막으로 같은 맥락에 있는 작품 ‘Piedra que cede’(물렁한 돌, 1992)를 살펴보죠. 아이들이 주로 쓰는 공작용 점토인 플라스티신(Plasticine)을 작가 자신의 몸무게인 68kg만큼 준비한 뒤 공 모양으로 만들어 뉴욕 거리를 돌아다니며 굴렸습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 대신 도시의 먼지와 쓰레기 등 구르면서 접촉한 모든 것의 흔적이 남게 되죠. 도시를 떠도는 유목적 작가의 자화상을 이보다 단순하면서도 명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언뜻 보면 너무도 단순해 보이는 오로즈코의 작품은 실은 다양한 예술의 전통을 흡수하고 있는데요. 지극히 평범한 재료를 작품에 재활용하는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는 물론, 갤러리나 미술관이 아닌 장소에 작품 설치를 탐구하는 대지 미술, 그리고 작가의 신체를 작품에 참여시키는 행위예술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최근 초대형 고래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다음 주에 계속되는 오로즈코의 작품세계를 기대해주세요!



주간동아 2010.03.16 727호 (p81~81)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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