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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길게 누운 철길 위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달린다

세계 최장 9334km, 59개 역 거쳐 … 러시아 역사, 문화와 ‘짜릿한 만남’

길게 누운 철길 위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달린다

길게 누운 철길 위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달린다

세계에서 가장 긴 철로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베리아의 눈 덮인 마을.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지역 주민들이 만든 간식거리를 사먹을 수 있다(왼쪽부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올라타는 순간 순백의 대설원을 달리는 ‘시베리아 문화’ 체험은 시작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동(東)시베리아의 울창한 산림과 광야 그리고 초원지대를 감상하는 낭만 여행길 중에 우리와 외모가 비슷한 부랴트 족이 사는 울란우데, 세계 최대의 호수인 바이칼 호, ‘시베리아의 파리’라 부르는 이르쿠츠크, 러시아의 심장부 모스크바 등을 만날 수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334km를 달린다. 지구 둘레의 4분의 1, 기차로 꼬박 6박7일이 걸린다. 주요 역(驛)만 해도 59개. 7번이나 시간대가 바뀌는 세계 최장의 기찻길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동방에 얼지 않는 항구인 부동항을 건설하고 나아가 시베리아의 철, 석탄, 목재, 모피 등 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건설했다. 유럽에서 들여온 차관을 이용, 착공 25년 만인 1916년 완성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시베리아의 가장 큰 항구인 동시에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洲都)이기도 하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과거에는 군사도시라 외국인은 항구 부근에서 사진촬영은 물론 출입조차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며 사진촬영 역시 특별한 곳을 제외하곤 어디서든 가능하다. 해변에는 레스토랑이 많아 갓 잡아온 신선한 해산물과 바닷가재 요리를 먹을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기차는 자작나무 숲과 드넓은 스텝 지역을 번갈아 지나며 시베리아의 광활함 속으로 달려간다. 아름다운 장관을 담으려고 기차 창문을 열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복도의 창틈 사이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풍경에 빠져들었다. 객차마다 러시아 구리 주전자 사모바르 물통이 있는데 항상 뜨거운 물이 준비돼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차나 커피를 마시고, 한국 사람들은 컵라면을 먹는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잠들지 않은 6박7일

횡단열차에선 차장이 아침, 저녁 식사를 가져다주는데, 흑빵에 치즈나 베이컨을 섞은 것이 꽤 괜찮았다. 매운 것이 먹고 싶을 때에는 흑빵에 고추장을 발라 먹으면 된다.

열차가 중간 중간 역에 정차하면 밖으로 나가 사진촬영을 하고 현지 주민들이 만들어 파는 음식물을 사먹을 수도 있다. 보드카와 음료수, 찐 감자, 말린 물고기, 빵 등 다양하다. 열차에도 식당이 있지만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었다.

차창 밖 풍경에서 점차 호기심이 사라지면 많은 사람이 독서나 음악 감상을 하거나 맞은편 사람들과 보드카를 나눠 마신다. 맨정신에 대화를 하면 10분 정도밖에 못할 사이도 보드카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면 밤을 새운다. 러시아 남자들은 보드카를 벌컥 들이마신 후 타는 목을 달래기 위해 맥주를 마시곤 했는데, 안주로는 바이칼 호수에서 잡는 ‘오물(omul)’이라는 생선과 소시지를 특히 좋아했다.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에 눈이 시리다

길게 누운 철길 위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달린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4인승 침대칸 모습.

시베리아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곳이었으나 열차가 개통되자 많은 사람이 오가고 곳곳에 도시나 마을이 생겨났다. 여기에 지하자원의 보고(寶庫)라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관심도 높아졌다.

횡단열차를 타고 지나쳐온 도시 중 하바롭스크는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하바롭스크라는 이름은 이 도시 건설에 공이 큰 탐험대장 하바로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우수리 강과 아무르 강의 합류 지점에 자리한 이곳은 일제 치하에서 피난 온 조선족이 많이 살았던 곳.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은 이곳의 많은 조선족을 일본 스파이로 의심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사실 하바롭스크는 많은 애국지사가 항일운동을 한 본거지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총리를 지낸 이동휘(李東輝) 선생이 1918년 한인사회당을 조직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에서 몇 시간을 달리면 바다처럼 드넓은 바이칼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기차에서 내려 바이칼 호수로 향했다(시베리아 횡단열차는 타고 가다가 며칠 머물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내려서 일을 본 뒤 다음 열차를 탈 수 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숲, 그리고 호수 주변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는 3000만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경이로운 곳이다. 바이칼 호수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1741m나 되며 남북으로 뻗은 길이는 640km에 이른다. 바이칼 호수에 담긴 물은 얼지 않는 세계 담수량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부르는 이르쿠츠크는 안가라 강과 바이칼 호수를 잇는 정기선 및 시베리아 철도가 다니는 교통 요지다. 시내에는 바이칼 호수의 근원인 안가라 강이 흐르며 200~300년 된 고풍스런 건축물이 많다. 나폴레옹전쟁 후 러시아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한 ‘데카브리스트의 난’으로 이곳에 귀양 온 청년 장교들과 그들의 가족이 정착하면서 도시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들은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유배를 와서도 모스크바 귀족들의 생활 방식대로 살았다.

그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의식도 높고 지적인 자부심도 강했는데, 이러한 전통이 지금도 남아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에서 문화 수준이 높은 곳으로 손꼽힌다. 인구는 58만4442명(2006년 기준)으로 목재와 섬유가 주요 산업이지만 천연가스도 많다. 안가라 강 하류 오른쪽에 이르쿠츠크 중심부가 자리한다. 행정기관과 각종 상업시설이 많고 여러 종류의 극장과 공원, 키로프 중앙광장 등이 있다.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미술관과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이곳만의 독특한 전시품이 관광객을 기다린다.



주간동아 2010.03.16 727호 (p74~75)

  • 글·사진=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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