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3

2017.04.12

사회

르네상스호텔 피트니스클럽에서 무슨 일이?

전 총리·법무부 장관 등 회원 면면 화려…호텔 철거 후 회원 간 ‘이전투구’

  • 입력2017-04-12 09: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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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재건축에 들어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벨레상스서울호텔(옛 르네상스호텔) 스포츠센터 회원권 예치금의 반환과 관련해 회원 간 갈등을 빚고 있다. 르네상스호텔은 모기업인 삼부토건이 재정난에 시달린 끝에 지난해 5월 토목공사업체 VSL코리아에 신탁공매로 매각됐다. VSL코리아는 이르면 2020년 르네상스호텔과 뒤편의 삼부오피스빌딩 자리(대지 1만8489㎡)에 38층짜리 쌍둥이 복합빌딩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 ‘라마다르네상스호텔’로 처음 문을 연 르네상스호텔은 강남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특히 멤버십으로 운영된 스포츠센터가 유명했다. 88년 회원권을 구매해 최근 호텔 폐쇄 전까지 28년간 이 스포츠센터를 이용했다는 한 회원은 “당시 르네상스호텔과 인터컨티넨탈호텔이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었는데, 르네상스호텔은 회원만 이용할 수 있어 아내와 함께 각각 700만 원씩 내고 회원권을 구매했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수준’도 비슷해 골프, 마라톤, 요가 등 소모임도 따로 만들어 친목을 도모해왔다”고 말했다.  



    일부 회원 “변호사 수임료 이해하기 어렵다”

    이곳 스포츠센터 회원은 전직 장·차관, 정재계·법조계 인사 등이 상당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애용하는 곳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한때 회원권 가격은 2000만~3000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호텔이 본격적으로 재건축에 돌입하면서 회원권 예치금 반환을 둘러싼 호텔 측과 회원 간 분쟁이 시작됐다.

    총 500여 명에 달하는 스포츠센터 회원은 호텔 매각이 결정된 후에도 매수자와 매입자 모두 회원권 예치금 반환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자 지난해 9월 자체적으로 ‘르네상스 스포츠센터회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렸다. 비대위원장은 변호사인 K씨가 맡았고, 비대위원 10여 명도 대부분 법조계 출신이다.



    이들은 즉각 호텔을 상대로 가처분소송을 제기하고, 재건축 허가권을 쥐고 있는 강남구청에도 끊임없이 민원을 넣었다. 회원끼리 순번을 정해 스포츠센터에서 밤샘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비대위는 협상 진행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자 회원당 30만 원, 부부는 인당 20만 원씩 받아 총 8000만 원가량의 회비를 거뒀다.

    이후 K변호사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온라인 커뮤니티 ‘밴드’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공지를 띄우는 형식으로 회원들에게 협상 진행 상황을 알렸고, 1월 무렵 드디어 시행사로부터 회원권 예치금(개인 1000만 원, 부부 1100만 원, 법인 1400만 원)을 보상하겠다는 확답을 얻어냈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1월 16일 K변호사는 ‘밴드’에 ‘여성회원님들의 의견을 공지합니다’라는 머리말과 함께 ‘예치금을 돌려받으려면 (K변호사 사무실에서) 위임장을 접수할 때 개인 40만 원, 부부 각 30만 원, 법인 100만 원씩 먼저 입금하라’는 내용을 올린 것. 그러자 회원들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비대위 구성 당시 거둔 돈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추가 비용이 왜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익명의 한 회원은 “이때부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K변호사가 회원들을 위해 앞장선 건 고맙지만 시행사가 회원 전원에게 예치금을 돌려주기로 한 마당에 왜 별도의 회비가 필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회원 대부분은 빨리 보상받으려는 마음에 K변호사의 공지대로 일정 금액을 입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비대위 수입은 약 1억3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이 무렵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밴드’에 공지되진 않았지만 일부 회원 사이에서 시행사가 합의금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눠 시간 차를 두고 지급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한 것. 그러자 회원들은 K변호사에게 A, B그룹으로 나눈 기준이 무엇인지를 따져 물었지만 비대위 측이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

    익명의 한 회원은 “비대위는 협상 과정을 회원에게 모두 공지해야 하지만 그때까지도 시공사, 강남구청, 비대위 등 3자 간 합의 내용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B그룹은 언제 돈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 얘기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2월 3일 K변호사는 비대위 회의를 열어 최종합의서를 처음 공개했다. 이날 드디어 비대위가 추가로 회비를 거둔 이유가 밝혀졌다. 그동안 다수 회원은 알지 못했던 변호사 수임료 지불에 대한 안건이 처음 상정된 것. 비대위원장 외에도 비대위원인 H변호사에게 지불하는 수임료도 함께 거론됐다.

    익명의 한 회원은 “갑자기 비대위원 몇 명이 변호사 수임료 얘기를 꺼냈고, 얼떨결에 수임료 금액에 대한 논의까지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는데, 이후 몇 번의 회의가 더 열린 뒤 결국 두 변호사에게 각각 4000만 원씩 수임료를 주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비대위 측 “총회 거쳐 법적 문제 없다”

    그 와중에 비대위는 B그룹에 대한 보상 일정과 내용을 모든 회원에게 알리지 않은 채 A그룹과 마찬가지로 배상 관련 위임장을 작성하면서 인당 50만 원에 해당하는 회비를 요구했다고 한다. 나중에 B그룹 회원은 시행사가 돈을 주면 회비를 제하고 지급받는 것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B그룹 회원들은 자신이 왜 그렇게 분류됐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더욱이 K변호사의 경우 처음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될 때부터 “같은 스포츠센터 회원으로서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수임료를 받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몇 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을 변호사라고 밝힌 한 회원은 “회원들이 비대위원장을 맡은 K변호사에게 수고비를 지급할 수는 있으나, K변호사가 변호사로서 수임료를 받아야 할 근거는 없다. H변호사 역시 협상단 3명 중 1명으로 세 차례 협상장에 나가 노력한 것은 인정되지만, 회원으로서 한 일인 만큼 다른 비대위원이나 협상단원과 달리 과도한 보수를 받을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B그룹이 언제 돈을 받을지 끝까지 밝히지 않아 회원 개인이 시행사를 통해 보상 내용을 직접 알아내기도 했다. 모든 내용이 총회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총회에 참석한 회원은 3분의 1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민법상 비대위는 ‘비법인사단’으로 분류되며 총회에서 의결이 통과되려면 전체 회원의 절반 이상이 참석하고 참석 인원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  

    하지만 두 변호사는 “모든 일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H변호사는 “나는 처음부터 변호사 수임료를 받겠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회원 전체로 따지면 인당 10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이다. 이 비용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건 ‘화장실 가기 전과 후 마음이 다른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편 K변호사는 통화 대신 서면 질의에만 응했다. K변호사는 수임료에 대해 “비대위 회의와 총회에서 수임료를 주기로 결정해 받았을 뿐, 관련 내용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공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차후에 들어오는 B그룹의 수임료는 예전부터 방글라데시에서 봉사하는 지인에게 병원 건립 기금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모든 결정은 비대위 총회에서 한 사안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하루 뒤  K변호사는 기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A그룹 회원들에게 받은 수임료 전액도 방글라데시 병원 건립 기금으로 내겠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일부 회원은 “기부는 자기 돈으로 하면 될 일로, 수임료와는 무관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10년간 르네상스호텔 스포츠센터 회원이던 한 중견사업가는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들이 돈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히며 힐난하는 상황에 처한 게 같은 회원으로서 부끄럽고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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