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5

2010.03.02

경상도식 고디국 아, 구수하고 개운해

서울 인사동 풍류사랑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입력2010-02-24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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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식 고디국 아, 구수하고 개운해

    긴 세월을 버티면서 인사동의 터줏대감이 돼가는 풍류사랑의 고디국.

    다슬기는 우리나라의 계곡과 강, 호수 어디에든 있는 민물고둥이다. 이렇게 흔한 먹을거리는 지역마다 각각의 이름이 있게 마련이다. 경남에서는 고둥, 경북에서는 고디,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강원도에서는 꼴팽이,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등으로 부른다. 서울 등 도시의 외식업체에서는 올갱이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충청도 쪽의 다슬기 음식이 외식업계에 먼저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슬기의 살은 푸르다. 전통의학에서 이렇게 푸른빛을 내는 것은 간에 좋다고 한다. 다슬기를 국으로 조리해 해장용으로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의학적인 근거를 대지 않더라도 다슬기로 국물을 내 마시면 속이 시원해짐을 느낀다. 갈증이 확 가시는 감도 있다. 적어도 내게는 해장용으로 다슬기국만 한 것이 있나 싶다.

    인사동은 술 마시기 좋은 곳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 잡설을 풀어놓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벽이 온통 낙서로 뒤덮인 한옥 방에 앉아 있으면 문화계 변두리에서 밥벌이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처럼 술 마시기 좋은 동네이니 당연히 속을 풀어줄 음식도 있어야 한다. 인사동에 딱 어울리는 해장 음식이 있는데 바로 다슬기국이다.

    인사동의 풍류사랑이 문을 연 지도 벌써 20년이 돼가고 있다. 출판사를 경영하던 최동락 씨가 고향의 어머니 음식이라는 다슬기국을 내놓으며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를 아는 이들은 잠시 ‘외도’를 하다 본업으로 돌아가겠지 했다. 그런데 긴 세월을 버티면서 풍류사랑은 인사동의 터줏대감이 돼가고 있다. 이 정도에 이르면 쉬 문을 닫을 수 없는데, 노포는 주인의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가게에서 오랜 세월 술과 끼니를 해결하며 수많은 만남을 가졌던 단골들도 그 가게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이므로 가게에 대한 ‘일종의 권리와 의무’도 같이 지는 것이다.

    풍류사랑에서는 다슬기국을 고디국이라 한다. 경북 사투리다. 다슬기로 끓이는 국은 사투리만큼 지역마다 요리법이 다양하다. 전라도에서는 말갛게 끓여 시원한 다슬기 맛을 즐기고, 충청도와 경기도에서는 옅게 된장을 풀어 구수한 맛을 더한다. 근래 서울에 진출해 인기를 끌고 있는 다슬기국은 충청도식이 대부분이다. 아욱이나 부추 등을 넣은 맑은 된장국인데, 해장에 그만이다. 풍류사랑의 다슬기국은 경북 영천식으로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다. 조리법은 이렇다. 먼저 다슬기를 삶은 뒤 건져낸다. 다슬기 국물에다 고춧가루, 들깨, 불린 쌀을 함께 넣고 간 가루를 풀어 끓이다가 한 번 데쳐서 결대로 찢은 파와 부추를 넣은 뒤 다시 한소끔 끓인다. 건져놓은 다슬기의 살을 꼬챙이로 뽑아 고명으로 올린다. 들깨와 쌀이 들어가 걸쭉하고 구수한 맛이 좋다.



    인사동이 예전 같지 않다. 인사동 큰 골목은 상술 밝은 장사치들이 어줍지 않은 관광상품으로 진을 치고 있으며, 작은 골목에는 인사동 본래 정서와 맞지 않는 가게들이 구석구석 박혔다. 전반적으로 세련됨만 더해가고 세월의 흔적은 쌓이지 않는다. 인사동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바뀌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다슬기는 홍수가 나면 강바닥을 10여m씩 파고들어가 버틴다고 한다. 인사동이 다슬기처럼 서울의 급한 탁류에도 깊이 숨어 잘 버텨주기를 바란다.

    찾아가는 길 인사동길의 인사아트센터 옆 골목으로 가면 막다른 곳에 있다. 02-730-6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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