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5

2010.03.02

상처 어루만지는 선율이 아름다워!

영화 ‘하모니’ 주인공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 … 20명 단원 오늘도 행복 노래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0-02-24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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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 어루만지는 선율이 아름다워!
    “주말에 와서 촬영하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봤는데, 아무래도 우리 얘기를 다루는 영화라니까 자꾸만 눈길이 가요. 다른 영화를 제치고 흥행 1위를 기록했다고 할 때는 뛸 듯이 기뻤는데 지금은 2, 3위로 떨어졌다고 하니 괜히 조바심도 나고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텔레비전에 잠깐 나온 걸 보니 우리가 노래하는 강당, 우리가 쓰는 피아노가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영화에 우리가 불렀던 ‘에레스투’ ‘이 세상 살다 보면’이란 노래도 나오니 정말 반갑죠. ‘만남의 집’도 잠깐 나오던데 거기에 머물렀던 모범수 가족들은 다 울었다고 하더라고요.”(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 A씨)

    “영화 덕분에 취재 요청이 많이 들어와 업무 진행이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런데 영화에 잘못된 게 있어요. 교도관이 수형자와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영화에서처럼 ‘언니’라고 부르진 않거든요. 수형번호로 부르죠. 그리고 교도소 내부에 녹음 가능한 인형이 반입된다고 나오는데 그것도 반입 금지 품목입니다. 물론 영화는 무척 좋았어요. 교도소 안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 영화가 흥행도 잘된다니 기분 좋죠. 자부심도 생기고요.”(청주여자교도소 교도관 B씨)

    국내 유일의 여자교도소인 청주여자교도소 내 합창단을 다룬 영화 ‘하모니’(감독 강대규·제작 JK필름)가 전국 관객 2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을 거두자 청주여자교도소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영화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하모니’가 인간의 희로애락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신파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어쩔 수 없는 사연으로 죄를 지은 여성 재소자들이 합창단을 결성해 분투하며 감동의 무대를 만드는 모습을 보노라면 누구나 눈물짓게 마련이다. 게다가 영화의 키워드는 ‘모성’. 여성 재소자는 법적으로 18개월 이내의 유아에 대해 대동을 신청할 수 있는데, 주인공은 규정에 따라 18개월짜리 아이를 입양 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주인공을 통해 엄마의 절절한 마음을 읽는다.

    “키울 수 있었지만 안 키웠다”



    영화가 실제를 미화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실제도 영화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는 교도소라지만 여자는 여자, 그것도 모성을 가진 엄마가 아닌가. 2월16일 가공되지 않은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원들을 만나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합창단원은 현재 20명이며,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8명이었다.

    무엇보다 합창단 안에 18개월 된 아이를 입양 보내야 하는 영화 주인공 같은 엄마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합창단원 중 그런 엄마는 없었다. 다만 아이를 이곳에서 키울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엄마는 여럿 있었다(참고로, 청주여자교도소의 전체 재소자 670명 중 현재 4명이 ‘대동유아’ 수형자로 아이를 키우지만, 가족이 있어 입양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대동유아 수형자는 아이 키우는 데 전념해야 하므로 합창단 활동을 하기 어렵다).

    1985년 당시 25세의 나이로 이곳에 들어온 수형자 C씨도 그랬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그는 사랑하는 남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업주에게 가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어 살인을 저질렀다. 막상 이곳에 와보니 뱃속에 3개월 된 아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냥 막 살자는 게 제 무기였기 때문에 항소 기간에 아기를 낳고는 바로 교화위원인 언니에게 맡겼어요. 그때도 18개월까지는 키울 수 있었는데 아기에게 좋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태어나자마자 이런 환경에서 자라게 한다는 것도, 정 떼는 것도…. 어차피 제가 못 키울 거, 좋은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선생님이었던 그 언니는 지금껏 찾아오지만 아이와는 왕래하지 않아요. 어렴풋이 제 존재를 아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그런지 눈치를 많이 본다고 해요. 알아서 공부 잘하는 것도 그래서 그런가 싶고….”

    상처 어루만지는 선율이 아름다워!

    영화 ‘하모니’는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을 소재로 ‘모성’을 그리고 있다.

    회칼로 위협하는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취중에 살해해 7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는 재소자 D씨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데려오지 않고 친정에 맡겼어요. 혹시나 나쁜 거 배울까봐. 여기 들어온 뒤로는 물론 아이 얼굴을 만진 적이 없죠. 면회도 못 오게 했으니까요. 지난해에 교도소 프로그램 덕에 영상편지를 받아 그때 처음으로 움직이는 아들 모습을 봤는데, 예쁘게 컸더라고요. 지금은 아홉 살이라 ‘엄마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말이 먹히는데, 자꾸만 미국에 가자고 졸라서 걱정이에요. 앞으로 5년이나 남았는데….”

    그럼에도 이들이 합창단에 열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가족 때문이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3시간 정도 연습해 예배시간에 성가를 부르며 신앙적으로 충만해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긴 하다. 그러나 공연을 보러온 가족과 5분이나마 손잡고 안아볼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행복이다. 공연을 갈 때는 재소자 한 명이 교도관 한 명과 짝이 되어 움직여야 하고, 일반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많지만 공연을 보러 온 가족을 생각하면 눈 한 번 질끈 감고 참을 수 있다는 것.

    그 손목 잡기 위해

    한 생명을 보낸 데 대해 사죄하며 산다는 제주도 출신의 30대 여성 E씨도 그런 경우다. 가족에게서 ‘다시는 집으로 편지 보내지 말라’는 전갈을 받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그에게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공연장이었다. 사서함 몇 번지라고 적힌 편지 때문에 행여 지역에 소문이라도 날까봐 두려워하던 가족들은 공연장만큼은 마음 편히 찾아왔다.

    무대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본 재소자도 있다. 목사님을 통해 초대권을 전해 받은 아버지는 변화된 딸의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으셨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떴다고 한다. 자신감 없는 눈망울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가 눈물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제가 아버지의 그 손목을 잡기 위해 노래했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모르셨을 거예요.”

    그러나 합창단원 모두가 가족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부부싸움 중에 남편을 살해한 마흔두 살의 수형자는 다 자란 아들들에게 매달 한 차례씩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가 생활고로 남편을 살해한 사람 역시 서른 살이 넘는 두 아들에게 초대권을 보내지만 얼굴을 마주하진 못한다.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이 생겨 일곱 살 때부터 거리를 전전하다 열다섯 살까지 식모살이를 한 수형자 F씨는 만날 가족이 없다. 고아라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했다가 고되게 시집살이를 한 그는 이혼하고 다방을 전전하면서도 아이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다방에서 손님과 실랑이 끝에 벌어진 사고로 여기 들어온 이후 그마저도 끊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서 가족을 보지 못해도 체념에 익숙하기 때문인지 슬픔도 느끼지 않는다. 노래를 부르며 신에게 아이들을 부탁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1997년도에 만들어져 많게는 49명의 재소자가 활동했다는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 영화 속 주인공들만큼이나 아린 상처를 가진 이들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 세상을 울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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