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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뇌 속 욕망을 꺼내라! 01

베일 벗는 ‘브레인 월드’

감정도 촬영할 수 있나요?

베일 벗는 ‘브레인 월드’

  • 우리는 왜 사랑하고, 울고 웃으며, 음악과 미술을 즐기는 걸까. ‘나’에 대한 탐구는 인류의 오랜 숙원. 숱한 역사 속 철학자, 과학자, 몽상가들이 마음과 정신의 실체를 갈구해왔다. 과거 이들은 가설을 세운 뒤 논쟁과 반박을 거듭했지만, 오늘날에는 실험적으로 이를 증명할 길이 열렸다. 영상기기의 발달로 두뇌와 마음의 작동 원리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 이른바 ‘뇌 혁명’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희섭 신경과학센터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조재원 박사, 한양대 의대 신경과 김승현 교수, 연세대 의대 신경과 남효석 조교수의 조언과 ‘앞쪽형 인간’(나덕렬/ 허원미디어), ‘두뇌 실험실’(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바다출판사) 등을 참고해 ‘뇌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베일 벗는 ‘브레인 월드’

뇌가 느끼는 신체를 표현한 ‘호문쿨루스’. 민감한 부위일수록 크게 나타냈다.

Part 1

뇌(腦)! 모든 생각과 감정이 명멸하는 장소

평균 1.2~1.5kg, 커봤자 2kg 안팎(칸트 1.65kg, 비스마르크 1.807kg). 꼬불꼬불 징글맞은 한 움큼의 회백질 고기. 이곳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이 태어나고 명멸한다니, 분초를 다투며 아등바등하거나 죽기 살기로 힘들어하던 시간들이 조금은 멋쩍고 허무하다.

뇌는 인간을 생각하고 움직이게 하는 사령탑이다. 뇌 없이는 생존은 물론, 관계를 맺고 창작하는 인간다움도 없다. 단순하게 보면 뇌는 정보를 들여온 뒤 그에 맞는 반응을 내보내는 일을 한다. 외부자극뿐 아니라 배앓이 등의 내부현상에도 적절히 반응한다. 뜨거운 물을 들이키면 “앗, 뜨거”라고 소리치며 얼른 컵을 내려놓고, 창피하면 얼굴을 붉히며 도망가는 것 모두 뇌의 지시에 따른 결과다.

당연하고 간단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뇌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뇌는 대표적인 복잡계. 계산기처럼 ‘1+1’을 입력하면 2가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복잡다단한 단계를 거쳐 2를 내놓는다. 뇌의 신경세포는 무려 1000억개. 뇌는 이 세포 간 연결 통로인 시냅스의 작동으로 기능한다. 신경세포 하나당 1000개의 시냅스를 만든다면, 모두 100조개의 시냅스가 있는 셈. 이 시냅스는 사용빈도에 따라 생성, 강화, 소멸을 반복하며 뇌 구조를 변화시킨다.



이런 뇌의 정보처리 경험은 기억으로 보관되는데, 이 기억은 다시 뇌의 작동에 영향을 준다. 한 번 배운 수영을 잊지 않거나, 한 번 가본 길을 더 잘 찾는 것은 이 때문. 이 기억정보들은 차곡차곡 쌓여 우리의 능력, 성격, 건강 등을 결정한다. 친구가 공부를 더 잘하고, 내가 싸움을 더 잘하고, 둘 다 성격이 나쁜 것은 사람마다 뇌 작동방식이 달라서다.

욕구의 마그마 ‘변연계’, 컨트롤타워 ‘전두엽’

그렇다면 뇌는 어떻게 생겼을까. 뇌는 크게 대뇌, 소뇌, 뇌간으로 나뉜다. 소뇌는 대뇌의 운동기능을 보충하며, 뇌간은 호흡하고 땀을 내는 등 생존에 필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주름처럼 내부를 둘러싼 대뇌피질과 안쪽 깊숙이 위치한 변연계로 구성된 대뇌는 소뇌와 뇌간이 하는 일을 제외한 모든 인간의 감정 및 인지활동에 관여한다. 대뇌는 정중앙을 기준으로 좌뇌와 우뇌로 나뉘고, 앞쪽에서부터는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 측두엽으로 나뉜다. 전두엽은 앞쪽 뇌, 나머지 부분은 뒤쪽 뇌에 속한다. 뒤쪽 뇌는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을 인식하고 저장한다. 이 뒤쪽 뇌는 사람과 동물 모두 발달해 있다. 앞서 말했듯 앞쪽 뇌는 인간다움을 만드는 뇌다. 그리고 측두엽에 있는 변연계에서는 식욕, 성욕 등 욕구가 들끓는다. 전두엽은 뒤쪽 뇌와 변연계에서 들끓는 감각, 욕구들을 파악해 판단한 뒤 적절한 명령을 내린다.

일상의 매초 매분, 어쩌면 삶 전체는 전두엽과 변연계 간 분투의 연속이다. 변연계에서 올라오는 ‘마그마’를 전두엽이 적절히 통제한다. 전두엽이 손상된 치매환자들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사이코패스도 전두엽의 이상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몇 해 전 4명의 젊은이를 바닷물에 빠뜨려 죽인 70대 살인범도 욕망을 조절하는 전두엽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본다. 극히 일부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뇌 기능을 ‘기자의 하루’를 통해 살펴보자.

Part 2

인생(人生)! 전두엽과 변연계 간 투쟁의 연속

베일 벗는 ‘브레인 월드’

‘진짜 웃음’과 달리 억지로 근육을 움직여 만든 ‘가짜 웃음’은 부자연스럽다.

상서로운 빛이 가득한 나무숲에 작은 새들이 날아다닌다. ‘아바타’ 행성에 온 듯 나른하고 달콤하다. 머릿속은 로맨틱하지만 현실에선 짹짹, 새소리 알람이 요란하다. 뒤쪽 뇌로 들어온 소리를 시상이 감지했지만, 아직 대뇌는 아침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숲으로 착각하고 있다. 소리는 모든 감각정보가 거쳐가는 ‘중계소’인 시상을 통해 측두엽에서 해석된다. 우측 측두엽은 음악 운율 뉘앙스 등 비언어적 소리를, 좌측 측두엽은 언어적 소리를 담당한다. ‘이성의 뇌’인 좌뇌와 ‘감정의 뇌’인 우뇌답게 소리도 사이좋게 나눠서 관장한다. 이렇게 모든 의식은 각성(비몽사몽)을 거쳐 인식(아침이 왔다는 사실)에 다다른다.

회사 가는 길. 멀리서 회색 점 세 개가 꿈틀거린다. 시각을 지배하는 후두엽에서 그것들이 ‘새’임을 인지하자 전두엽에서 세 가지 판단이 충돌한다. 눈을 감고 뛰거나, 다른 행인을 기다렸다가 붙어가거나, 샛길로 돌아가거나.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조류공포증이다. 공포증은 해마에 각인된 공포감이 비정상적으로 증폭, 지속되는 현상이다. 측두엽 안쪽에 위치한 해마는 단기기억 저장소다. 해마는 감정과 본능의 저장소인 변연계와 꼭 붙어 있는데, 변연계가 느낀 공포감을 해마가 기억해 같은 상황이 오면 적절히 대비하도록 한다.

가짜웃음과 진짜웃음의 차이

기억 기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기억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 반복적으로 오가면서 새로운 기억이 구성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런 단기기억이 반복되면 장기기억으로 넘어가 뒤쪽 뇌에 저장된다. 주소, 이름, 가족 등 핵심정보는 모두 장기기억으로 넘어간다. 뇌는 감미로운 음악, 맛난 케이크, 쌀쌀한 날씨 등 사소한 정보들을 받아들이지만 전부를 기억하진 않는다. 해마는 꼭 필요한 것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도록 진화했는데, 감정을 입힌 정보를 더 오래 담아둔다. 시험 전날에 외운 내용이나 좋아하는 선생님의 과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이유도, 인생의 최악과 최고의 순간을 평생 잊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뇌과학’ 관련 취재를 위해 만난 모 선생님. 내용이 어려워 머리에서 김이 난다. 용량이 부족해 전전두엽 바깥쪽 면의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것 같다. 전전두엽은 앞에서 바라볼 때 세 개의 면으로 이뤄져 있는데 아래 면은 충동억제센터, 세로 면은 의욕센터, 바깥 면은 계획센터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독창적인 전략을 세우는, 소위 머리 좋은 사람들은 바깥 면이 발달해 있다. 의욕 없고 잠만 자는 ‘귀차니스트’들은 세로 면이 부실한 사람들이다.

내용이 어려우니 농담도 즐겁지가 않다. 그래도 예의상 입꼬리를 올리는데 표정이 영 부자연스럽다. 진짜웃음과 가짜웃음은 다른 기제를 거친다. 자발적 웃음은 웃음회로를 만드는 기저핵으로 가서 필요한 근육들을 조절한다. 하지만 지시에 따른 웃음은 운동피질로 중계된다. 운동피질은 머리를 빗거나 설거지를 하는 숙련된 움직임에 특화된 곳. 웃음은 수십 개의 근육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고도의 작업이다. 운동피질이 내보내는 웃음은 서툴고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베일 벗는 ‘브레인 월드’
모 선생님이 전두엽을 다친 사례를 들려준다. 50대 회사원인 A씨는 승진 소식에 동료들에게 2차까지 한턱 쐈다. 하지만 3차를 가기 위해 술집 계단을 내려가던 중 굴러떨어져 머리를 다쳤다. 의식은 찾았으나 앞쪽 뇌(전두엽)가 많이 손상됐다. 다행히 뒤쪽 뇌는 예전과 같았다. 하지만 A씨는 회사생활을 할 수 없었다. 방향감각, 계산능력, 기억력은 예전과 같았지만 성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 어딜 가나 ‘양반’ 소리를 듣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막말을 퍼붓거나 욱하며 화내기 일쑤였다. 자신의 의견과 조금만 달라도 감정이 폭발해 욕설을 퍼부었다. 여성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식당에 가서도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치근댔다. 예쁜 목소리의 텔레마케터가 전화를 걸어오면 끊지를 않았다. 이는 전두엽 아래 면인 충동억제센터가 손상을 입었을 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절제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감정 충동, 성욕, 식욕이 여과 없이 분출된 것.

취재 후 모 선생님이 추천해준 ‘두뇌 실험실’을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예전 미국 드라마 ‘하우스’에서 본 ‘환상사지’ 관련 내용이었다. 극중 하우스 박사는 잘린 왼팔이 여전히 있다고 느끼는 환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에게 이상한 처방을 내린다. 거울상자를 만들어 정상적인 오른팔을 ‘환상팔’이 위치한 왼편에 자리하도록 하자 고통이 말끔히 사라졌던 것. 이는 일종의 트릭이다. 팔이 사라져도 신체감각을 느끼는 대뇌 두정엽은 활동을 계속한다. 없는 팔의 감각을 인지하려니 ‘환상사지’로 나타났던 것이다. 뇌가 거울에 비친 팔을 진짜라고 믿으면서 고통도 사라졌다.

이처럼 대뇌 두정엽 표면은 신체감각을 느끼는 곳이다. 성기, 발, 몸통, 손, 엄지, 얼굴, 입술, 목구멍 순으로 표면마다 느끼는 신체부위가 다르다. 또 각 부위는 민감도가 다 다른데 얼굴과 손, 입술이 민감하고 몸통과 다리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손, 입술의 움직임과 감각이 예민한 이유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박사는 갈 곳 잃은 팔의 신경말단이 통증을 일으킨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실험을 했다. 팔 하나를 잃은 환자의 눈을 감게 한 다음, 면봉으로 신체 부위를 골고루 자극해 간지러운 부위를 물었다. 환자의 대답은 놀라웠다. 윗입술을 만지니 집게손가락, 아래턱을 치니 새끼손가락을 만진다고 답했다. 손가락과 입술, 턱의 감각을 느끼는 두정엽의 지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팔(손가락도 같이)이 사라지면서 손가락의 감각을 관장하는 신경이 옆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로써 뇌지도는 바뀔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퇴근 후 회식.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이 풀린다. 목소리가 커지는 이도 있고 웃음이 많아지는 이도 있다. 술을 마시면 사람들이 좋게는 인간적, 나쁘게는 동물적으로 변하는 이유. 알코올이 전두엽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전두엽이 느슨해진 틈을 타 변연계가 욕구를 충동질한다. 이 요구가 꼭 나쁜 건 아니다. 무서우면 도망가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 등 자신을 보호하는 구실도 하기 때문이다.

첨단 기기의 등장과 연구

뇌과학, 미래를 바꾸다!


언제부턴가 누리꾼 사이에서 ‘뇌 구조도’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캐릭터를 토대로 머릿속을 해부한 그림이다. 예를 들어 ‘바람둥이 난봉꾼’은 ‘오빠 믿지’ ‘술 먹이려는 생각’, ‘내숭 100단녀’는 ‘엄마 속이는 능력’ ‘화장발 유지기술’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식이다.

심심풀이라지만 이 ‘뇌 구조도’에는 중요한 이해가 깔려 있다. 바로 한 사람을 결정짓는 게 뇌라는 사실이다. 일반인 사이에서 뇌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풍부해진 것은 최근의 일. 학문의 대상으로 뇌를 연구하는 뇌과학 역시 막 발걸음을 뗐다.

1662년 영국의 신경해부학자 토머스 윌리스가 대학 강단에 섰다. 대뜸 뇌를 꺼내든 그는 쭈글쭈글한 그것이 인간을 꿈꾸게 하고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인간의 영혼이 심장이 아닌 뇌에 있다는 첫 주장이었다. 이후 뇌에 대한 다양한 탐구가 이어졌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살아 있는 뇌를 열어젖혀 실험하는 일이 윤리적으로 불가능했던 것. 하지만 뇌과학계는 영상기기의 발달로 한계를 극복하며 날개를 달았다. 1895년 뇌를 평면으로 찍는 X선이 등장한 뒤, 1972년 뇌의 단면을 볼 수 있는 CT(컴퓨터단층촬영), 75년 PET(양전자방출 단층촬영), 80년대 초 CT보다 해상도가 좋은 MRI(자기공명영상)가 차례로 개발됐다. 그리고 92년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가 개발되면서 뇌과학 발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fMRI는 뇌가 활동하는 동안 소모되는 산소량과 혈류량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특정 행동을 하거나 감정에 사로잡힐 때 활동하는 뇌 부위를 알 수 있다. fMRI 개발 이후 언어, 운동, 감각 등 특정 기능과 관련한 뇌 영역을 보여주는 ‘뇌지도 작성’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1928년 개발된 EEG는 뇌파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영상기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

선진국들이 앞 다퉈 뇌과학에 투자하는 이유는 뭘까. 뇌를 통해 인간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이는 곧 혁명이기 때문일까. 뇌를 이해하면 정신현상은 물론, 각종 불치병에 대한 치료법도 그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의사들은 알츠하이머, 루게릭, 파킨슨, 뇌졸중, 정신분열증 등을 연구하고 과학자들은 천재의 탄생, 뇌의 세부기능 등 좀더 근본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오늘날 뇌과학은 사실보다 공상에 의지한 초기 연구단계를 통과하고 있다. 뇌와 마음에 대한 거대 통합이론을 제시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일지도 모른다. 일부 전문가는 뇌의 비밀이 모두 밝혀지면 인간도 로봇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무서운 속도로 뇌가 정체를 드러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주간동아 2010.02.16 724호 (p34~37)

  •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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