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2

2010.02.02

“맘 상하는 연봉협상 그게 뭐꼬”

롯데, 돈은 돈대로 쓰고 번번이 욕먹어… 선수들은 피해의식에 불만 고조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0-01-27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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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맘 상하는 연봉협상       그게 뭐꼬”

    해마다 연봉협상으로 진통을 겪는 롯데 자이언츠. 롯데 팬들은 연봉협상 난항이 선수단 사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

    롯데 자이언츠(이하 롯데)는 2001년 이후 계속됐던 부진을 털고 최근 2년간 가을잔치에 나서며 ‘구도(球都) 부산’의 야구 열기를 재점화했다. ‘2년 연속 100만 관중 돌파’라는 의미 있는 열매도 얻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는 포스트시즌에서 연속 좌절을 맛봤지만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긋나는 협상 ‘짠돌이 구단’ 오명

    그는 집권 2기, 3년째를 맞는 올 시즌 한국 시리즈 우승을 야심찬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돌아가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팀이 연봉 협상 잡음으로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1월15일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단과 올 시즌 첫 훈련을 소화한 뒤 “구단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대호, 가르시아 등 주축 선수들의 재계약이 지지부진한 것에 분통을 터뜨렸다.

    2009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KIA 타이거즈. 12년 만의 우승에 대한 논공행상을 따지느라 김상현 최희섭 등 간판스타들의 사인이 늦어졌다. 하지만 전지훈련 출발 전 모든 선수와 재계약을 마무리했다. 대부분 팀 역시 재계약을 완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스프링캠프에 나섰다. 하지만 롯데는 그렇지 못했다. 8개 구단 선수 중 유일하게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연봉 조정을 신청한 투수 이정훈이 구단 측의 ‘괘씸죄’에 걸려 1월20일 1차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것.

    롯데는 과거에도 연봉 협상과 관련해 잡음이 많은 구단 중 하나였다. 성적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큰 차이가 없다. 재계 서열 5위 그룹이 모기업임에도 ‘짠돌이 구단’이란 오명을 듣는 것도 그래서다. 매끄럽지 못한 구단의 일처리 역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3억6000만원을 받았던 4번 타자 이대호. 133경기 전 게임에 출장해 0.293타율, 28홈런, 100타점 성적을 올려 롯데 타자 중 연봉 고과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구단이 제시한 첫 조건은 2000만원 삭감. ‘고액 연봉자로서 기대치에 밑돌았다’는 것이 삭감론의 근거였다. 3루수라는 어려운 포지션을 소화하며 전 경기를 뛴 이대호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고액연봉을 받는 선수는 도대체 얼마나 더 하란 말이냐”며 이틀간 소집훈련을 보이콧했다.

    이대호가 예상 밖으로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롯데는 한발 물러나 ‘동결 수준에서 협상을 다시 시작하자’고 설득, 그는 결국 팀 훈련에 복귀했다. 롯데는 고과 1위인 이대호의 계약이 선수단 전체 사기 차원이나 팬들에 대한 구단 이미지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님을 간과했다. 처음부터 구단이 전략을 잘 세웠다면 훈련 보이콧 같은 불미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구단의 만류에도 연봉 조정을 신청한 이정훈의 경우도 마찬가지. 지난해 연봉 3600만원을 받았지만 불펜의 핵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던 이정훈에게 구단이 제시한 첫 금액은 6600만원. 이정훈이 “연봉 조정신청을 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서자 구단은 뒤늦게 600만원을 올려 7200만원을 불렀지만 이미 돌아선 마음을 되돌리진 못했다. 8000만원을 기대하는 이정훈은 “처음부터 구단이 7200만원을 불렀다면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라며 “돈을 떠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연봉 협상이란 구단과 선수 간의 줄다리기다. 주는 구단은 ‘적정선’이라고 하지만 받는 선수는 대부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 한다. 이를 위해 구단이 처음엔 적정 수준보다 낮게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롯데의 경우 매끄럽지 못한 협상 기술이 결국 화만 부른 셈이다. 반면 SK 와이번스는 2년 연속 우승 때도 별다른 잡음이 없었다. 구단은 냉정한 고과에 따라 처음부터 줄 수 있는 ‘최고액’을 불렀고, 선수들은 구단 제시액을 납득했기 때문이다.

    한 푼이라도 깎는 연봉 삭감의 귀재?

    1월18일 롯데가 뒤늦게 가르시아와 재계약에 성공했다며 밝힌 내용 역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가르시아의 올해 연봉은 지난해보다 13% 깎인 총액 32만5000달러(약 3억6578만원). 지난해 37만5000달러보다 5만 달러가 줄었다. 발표 내용만 놓고 보면 가르시아에게 ‘삭감 원칙’을 내세웠던 롯데는 구단안을 관철하고 가르시아라는 적잖은 매력을 가진 선수를 다시 손에 넣은 셈.

    하지만 용병의 경우 발표 연봉과 실제 연봉 사이에 적잖은 거리가 있다. 야구계에서는 가르시아 역시 지난해 발표 내용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받았다는 설이 파다하다. A구단 모 관계자는 “용병들 사이에서는 가르시아가 지난해 보장금액만 50만 달러를 받았고, 옵션은 따로 걸었다고 알려져 있다”고 증언했다.

    용병의 연봉이 불투명한 현실이 롯데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 연봉 발표 내용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구단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가령 ‘롯데가 발표만 삭감으로 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즉 야수 고과 1위인 이대호에게 1차 연봉 협상에서 삭감안을 제시, 질타를 받았던 롯데가 다른 선수들의 정서와 팬들의 여론을 의식해 가르시아 연봉 발표 내용을 조절했을 것이란 말이다.

    100만 관중 동원이 가능한 롯데는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흑자경영에 가까운 구단으로 평가받는다. 현금 동원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이정훈의 사례처럼 800만원을 더 쓰지 않아 KBO의 연봉 조정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공격적인 베팅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제대로 베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롯데는 2004년 프리에이전트(FA) 정수근과 이상목을 각각 40억6000만원(6년)과 22억원(4년)의 거액을 들여 영입했지만 둘 다 실패작으로 끝났다. 정수근은 그라운드 밖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잇따라 일으킨 뒤 결국 옷을 벗었다. 2008년 시즌이 끝난 뒤 FA 대박 계약을 맺었던 토종 에이스 손민한 역시 지난해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이대호에게 삭감을 통보했던 롯데는 1월19일 결국 3000만원을 올려 3억9000만원에 계약했다. 줄 돈을 주면서도 생색을 낼 수 없는 것은 자업자득. 롯데 팬들이 “구단이 돈을 쓸 땐 제대로 쓰지 못하고, 800만원 같은 적은 돈 때문에 욕은 욕대로 먹는다”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년 연속 4강과 100만 관중 동원을 이뤘음에도 고과 1위 이대호가 ‘삭감 대상자’로 분류됐을 때, 롯데의 모 선수는 “우리 팀이 그렇지 뭐”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수년간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구단이 내민 삭감안에 별 저항 없이 도장을 찍었던 롯데 선수들은 나름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이는 최근 2년 연속 4강을 이룬 올해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정훈이 연봉조정 신청을 하자 구단이 그나마 600만원 오른 7200만원을 제시한 것을 두고 또 다른 선수는 “역시 강하게 나가니까 구단도 지갑을 더 연다. 나도 더 강하게 나갔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롯데 선수들은 구단이 선수들에게 제대로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을 매우 섭섭하게 여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해의식이 더욱 커진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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