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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무공해 ‘다큐’가 맛있다

진한 감동과 소설보다 더한 재미 ‘예능’도 누르고 시청률 대박 행진

  • 이설 기자 snow@donga.com

무공해 ‘다큐’가 맛있다

“아플 텐데 턱은 왜 뚫었대?” “정말 실오라기 하나 안 걸쳤네!”

눈 동그랗게 뜨고 추임새를 연발하며 다큐멘터리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지난 1월8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1부는 흡입력 100%였다. 말로만 듣던 아마존 원주민의 신기하고 진기한 일상. 드라마 마니아인 엄마도, 바둑채널만 보는 아빠도 “그거 재미있더라”는 소감을 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시청률은 22.5%(TNS 미디어코리아).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2편을 제친 놀라운 기록이었다.

‘아마존의 눈물’뿐이 아니다. 최근 2, 3년간 극장과 안방에는 다큐멘터리 바람이 몰아쳤다. 극장다큐멘터리(이하 극장다큐)로는 지난해 개봉한 ‘워낭소리’와 올해 개봉작인 ‘위대한 침묵’, 방송다큐멘터리(이하 방송다큐)로는 2008년 KBS ‘차마고도’와 MBC ‘북극의 눈물’, 2009년 KBS ‘누들로드’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다큐멘터리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뭘까. 이에 ‘송환’을 감독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동원 교수는 “관객 수준도, 다큐멘터리 작품 수준도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GDP(국내총생산) 2만, 3만 달러의 선진국에서는 골든타임에도 다큐멘터리를 방송해요.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인문학적 욕구가 강해지는데, 우리도 그런 단계에 들어선 거죠. 이런 호응 덕분에 제작환경이 좋아져 다시 장기 기획물을 낳는 선순환이 이어지는 겁니다.”

‘사실의 기록’을 특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는 극장다큐와 방송다큐로 나뉜다. 장르적 차이는 없다. 스크린에 걸리면 극장다큐, TV에서 방송되면 방송다큐다. 다만 방송다큐는 제작 기간과 방송 시간이 비교적 짧고, 주제도 대중적이다. EIDF(EBS 국제다큐영화제) 성기호 사무국장은 “극장다큐는 초기의 운동정신을 잇는 반면, 방송다큐는 남녀노소를 대상으로 하기에 무거운 주제는 피해왔다”고 설명했다. 극장다큐와 방송다큐를 통틀어 작품성, 대중성, 상업성까지 아우른 ‘명품 다큐멘터리’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새롭고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어요. 첫 생리 후 1년간 집에 머무는 풍습이 신기했고, 다툰 사람들을 간지럼 태워 화해시키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났어요. 또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덟 살 소녀를 볼 때는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다양해진 형식과 소재, 수준도 높아

직장인 김세나(29) 씨는 ‘아마존의 눈물’을 보고 다큐멘터리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딱딱하고 교훈적이라는 생각은 오해였다. 스토리는 드라마만큼 극적이었고 영화 같은 화질에 눈이 번쩍 뜨였다. 최근 다큐멘터리의 ‘재미지수’가 높아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따른다. 다큐서울 정수웅 대표는 먼저 “제작자의 노력으로 소재와 형식이 다양해졌다”고 말한다.

“과거 제작자는 소재와 방식에서 안이한 측면이 있었어요. ‘인간극장’처럼 사각지대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거나 묵직한 역사 속 사건사고를 충실히 재현할 뿐이었죠. 하지만 최근 다큐멘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성은 다큐멘터리의 생명이다. 1922년 다큐멘터리의 아버지인 로버트 J. 플래허티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 촬영한 ‘북극의 나누크’를 내놓은 이후, 행위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미학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고 편집도 최대한 자제한다. 형식도 단순 서사가 일반적이었다.

무공해 ‘다큐’가 맛있다

왼쪽부터 ‘차마고도’ ‘아마존의 눈물’ ‘워낭소리’ ‘누들로드’ ‘북극의 눈물’.



사흘간 한 공간을 들여다본 ‘3일’, 짤막한 길이의 ‘다큐 30분’, 사회 트렌드의 이면을 분석한 ‘감성다큐 미지수’ 등은 이런 법칙을 깬 프로그램들이다. 최근 방송다큐계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본격 진행 중이다. 성 사무국장은 “제작환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재연, 추리, 모험담, 애니메이션 등의 형식은 극에 긴장감과 재미를 더한다”고 말했다. 소재도 풍부해졌다. 과거 휴먼스토리나 고발성 주제에서 심리 탐구, 연구 결과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발품과 인내도 작품의 재미 및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 ‘차마고도’는 무려 3년간 중국과 인도를 잇는 장대한 풍광을 섬세하게 담아내 각종 방송 관련 상을 휩쓸었다.‘아마존의 눈물’은 1년간 아마존의 독충, 재규어와 사투를 벌인 산고로 탄생했다. ‘위대한 침묵’의 촬영지인 프랑스 그랑 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문고리를 잡기까지는 15년이 걸렸다. 성 사무국장은 “지나고 보면 낭만과 무용담이지만, 당시에는 창작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1년간 아마존에서 산다고 생각해봐라. 기분이 어떨지”라며 제작의 고충을 들려줬다.

‘짝퉁’ 몰아낸 진짜 이야기

“TV만 틀면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이잖아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데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짜고 치는 것 같고. 무공해 음식처럼 꾸미지 않은 볼거리에 목마른 거죠.”

대학원생 김호정(28) 씨는 ‘자연스러움’을 다큐멘터리의 매력으로 꼽았다.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보다 실제 상황에 마음이 더 간다. 정 대표는 “잘 짜인 ‘짝퉁’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질린 시청자들이 ‘진짜 이야기’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편집해달라며 감독과 갈등을 빚은 ‘예술가와 수단 쌍둥이’의 주인공이자 예술가인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사례는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현장성과 치열함도 다큐멘터리의 고유 강점. 성 사무국장은 “정의를 고민하는 저널리즘적 성격은 다큐멘터리에 깊이를 더한다”고 말했다.

“2007년 일본 저널리스트가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모습을 찍다가 사망했잖아요. ‘버마 VJ’는 그때의 상황을 담은 작품이에요. 화면이 흐르는 내내 목숨을 내걸고 찍은 치열함과 정신을 느낄 수 있죠. ‘그리즐리 맨’은 현장성이 극대화된 작품이에요. 회색곰과 동거하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늙은 곰이 그를 잡아먹는 장면까지 기록했죠.”

인기 바람을 타고 다큐멘터리의 ‘원 소스 멀티 유스’ 행보도 활발해지고 있다. 2008년 EBS의 히트작 ‘한반도의 공룡’은 지난해 단행본과 DVD로 제작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MBC도 3월 말 ‘아마존의 눈물’을 스크린에 걸기로 했다.

그럼에도 아직 국내 다큐멘터리는 갈 길이 멀다. 김 교수는 “취재와 촬영 등 다큐멘터리 장르는 긴 제작 기간이 필요한데, 우리는 1년이면 장기 기획물로 본다”며 열악한 제작환경을 지적했다. 성 사무국장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 인구가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지만, 해외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며 성급한 다큐멘터리 열풍을 경계했다.

“네덜란드나 캐나다 페스티벌은 개시하자마자 표가 동이 나요. 우리는 관객 1만명이 들면 축하파티를 열죠. ‘워낭소리’를 제외하고 극장다큐 중 성공한 작품은 거의 없어요. 방송용으로 제작한 ‘북극의 눈물’도 상영관에 걸렸지만 실패했고요. 꾸준한 관심과 방송사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주간동아 2010.02.02 722호 (p56~57)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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