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2

2010.02.02

“너 죽고 나 살자” … 진보의 충돌

진보신당 vs 민노당 주도권 싸움 가열 … 지방선거서 국민의 심판, 총력 채비

  • 유성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polaris@donga.com

    입력2010-01-27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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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흘러간 물은 다시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한다.”

    1월14일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국회에서 가진 신년기자회견에서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의 ‘통합’ 제안에 이렇게 답했다. 전날 민노당 강기갑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1월 안에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를 비롯한 제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를 찾아가 진보대통합 추진을 공식 제의하겠다”고 말한 데 대한 ‘거절 통보’였다. 6·2 지방선거까지 앞으로 4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노 대표의 기자회견으로 진보정당 간 통합은 상당 부분 동력을 잃었다는 전망이 많다.

    “다시 합치자” vs “무슨 소리”

    민노당은 새해 벽두부터 ‘통합’을 들고 나왔다. 그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이른바 ‘반MB 연대’. 강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진보대통합으로 분열의 아픔을 씻고, 반MB 연대로 국민 승리의 결실을 맺어 새롭게 도약하는 대안정당이 되겠다”고 말했다. 정책이나 노선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반MB 연대’라는 틀 안에서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 진보진영의 토론회에 참석한 민노당 이정희 의원은 이를 좀더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연대 과정에서 정책 논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그 때문에 지방선거 연합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즉, 그 어떤 조건도 ‘반MB 연대’라는 가치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노 대표는 “야권 정치세력의 연대가 필수여도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연대를 이뤄야 한다”며 “정책과 이념이 다른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연대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말해 민주당이나 민노당이 주장하는 ‘반MB 연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감추지 않았다.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은 “과거처럼 ‘묻지 마’ 식의 ‘반MB 연대’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그렇게 해서 설령 선거에서 이긴들, 이긴 자들끼리 정책 노선을 갖고 대립할 텐데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신년기자회견에 대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중스타’의 부재로 고민하는 민노당의 처지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진보신당의 처지가 그대로 반영됐다고 본다.

    2006년 진보신당이 민노당과 결별하고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민노당보다 진보신당의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진보진영에서 10년간 키워낸 ‘대중 정치인’ 노회찬 심상정을 비롯해, 진중권 홍세화 등 진보진영의 스타들, 문소리 봉준호 등 막후에서 진보진영을 지원하는 연예인까지 모두 진보신당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2008년 총선 결과는 이러한 예상과 완전히 빗나갔다. 진보신당은 1석도 얻지 못한 채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가, 2009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1석을 얻어 겨우 턱걸이로 원내에 진입했다.

    그러나 2008년 총선 당시 수도권의 ‘뉴타운’ 신드롬이나 집권 초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도를 감안한다면 진보신당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진보신당은 이번 지방선거야말로 자신들에 대해 정당한 성적표를 받아볼 수 있는 기회라며 벼르고 있다. 이미 서울시장 노회찬, 경기지사 심상정, 울산시장 노옥희 등 진보진영의 거물급 인사들이 출마 선언을 마치고 선거 준비를 다지는 중이다.

    반면 민노당의 경우 후보 선정조차 못한 상태다. 서울시장에 민주노총 이수호 전 위원장, 민노당 정형주 2010 기획단장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여론조사 결과 진보신당 후보들에 비해 지명도나 지지도가 떨어지는 형편이다.

    “너 죽고 나 살자” … 진보의 충돌

    1월17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참여당 창당대회식장에 강기갑 대표와 노회찬 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이 때문에 진보신당은 자당 후보들이 모두 당선되긴 어려워도 최소한 진보신당에 대한 인지도와 지지도를 한껏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민노당보다 낮은 현재의 당 인지도와 지지도를 역전시켜 진보진영의 대안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만일 수도권과 울산, 광주 전남 등에서 민노당보다 선전한다면 진보신당은 2008년 총선 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재통합론’의 유령을 완전히 떼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진보신당의 핵심 관계자도 “민노당이 통합론의 군불을 때는 것은 이 같은 인물난에 따른 고민 때문일 것”이라며 “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뒤라면 모를까 선거 전에 우리가 민노당과 통합 논의를 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민노당 부성현 부대변인은 “진보신당의 라인업이 우리보다 화려한 것은 인정하지만 정작 진보진영이 현실적으로 도전해볼 수 있는 울산과 경남에서는 다르다”며 “진보신당의 인물 브랜드가 민노당의 당 브랜드를 앞서는 곳이 없다”고 반박했다.

    ‘종북주의’와 ‘파벌’ 갈등 현재진행형

    물론 이 같은 선거공학적 계산만이 이들의 통합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좀더 근원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진보신당 김 대변인은 “민노당은 분당이 ‘자주파’와 ‘평등파’ 간 세력 다툼에서 나온 파생물이고 이 문제만 잘 정리되면 통합이 어렵지 않다고 보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면서 양측의 화학적 결합이 어려운 이유로 ‘대북인식’을 꼽았다. 그는 “우리가 민노당에서 떨어져 나올 때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이 ‘종북주의’ 논쟁 아니었나. ‘자주파’와 ‘평등파’ 사이의 대북인식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노 대표도 통합에 앞서 정책연대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대북인식 차이는 지난해 4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성명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당시 민노당 우위영 대변인은 “발사체가 북한이 예고한 대로 시험 위성통신인 것으로 밝혀진 마당에 한반도 주변국과 우리 정부의 모든 군사적 조치는 해제돼야 할 것”이라고 발표한 반면, 진보신당 김 대변인은 “핵무기 개발을 선언하고 핵무장을 한 상태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은 그것이 인공위성이라 하더라도 결국 북한의 핵무장력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도구로, 동아시아 평화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적지 않은 인식의 차를 드러냈다.

    웬만큼 알려진 진보진영 내 ‘자주파’ 대 ‘평등파’의 반목도 여전히 통합의 큰 장애물이다. 민노당 시절 소수세력으로 당내 파워게임에서 밀려야 했던 진보신당 사람들의 가슴속 응어리는 여전히 크다. 진보신당의 핵심 관계자는 “지금 민노당과 통합하면 다수를 점하는 ‘자주파’의 들러리 노릇이 반복될 뿐이다. 그때보다 의석이 줄고 조직도 약하지만 지금이 마음은 훨씬 편하다”며 돌아갈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김 대변인은 “진보진영이 통합되려면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해체한 후 진보세력을 다 결집해 모든 기득권을 버린 상태에서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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