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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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에 어디 고기만 구울쏘냐

서울 삼각지 봉산집 차돌박이구이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입력2010-01-21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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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숯불에 어디 고기만 구울쏘냐

    단순하기 그지없는 차림에 손님들이 만족하는 이유는 뭘까.

    30년 정도 지나면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 식당에서 분명히 음식을 맛본 기억은 있는데 누구와 동석했는지 가물가물하는 것이다. 봉산집이 그렇다. 학창 시절 이 동네를 들락거리며 여러 음식을 먹었고 봉산집에서도 차돌박이에 소주잔을 기울였던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내 앞과 옆에 앉았던 사람들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애착이 음식에 대한 관심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나에게만 있는 일인가.

    몇 개월 전 대학 후배와 이런저런 말을 나누다 봉산집 이야기가 나왔다. 한 입맛 하는 후배이기는 하지만 ‘야, 이 녀석 봐라. 봉산집도 알고 있네’라고 생각했다. 곧 봉산집에서 ‘미팅’이 있었다. 그렇게 만난 자리에서 보니 후배는 나보다 봉산집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혹시 이 녀석과 그때 같이 있었던 것일까.

    情 넘치는 허름한 분위기와 격의 없는 서비스 여전

    삼각지에는 오래되고 허름한 음식점이 많다. 대부분 공력을 많이 쌓은 집이다. 특히 대구탕 골목이 유명한데, 냉동 대구를 얼큰하게 탕을 해 먹고 난 다음 밥을 넣어 죽을 끓여 먹는다. 대구탕 골목 곁으로는 오래된 고깃집이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다. 상호들은 북녘 땅 이름이다. 실향민들이 하는 식당인 것이다. 봉산집도 실향민이 한다. 지명은 낯설지만 ‘봉산탈춤’이라 하면 어딘지 짐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다, 황해도 봉산이다.

    삼각지에는 육군본부가 있다. 그래서 군인이 많다. 주머니 가벼운 군인들에게 음식을 팔자니 저렴한 메뉴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식성을 감안하면 양은 넉넉해야 한다. 그래서 이 동네 음식은 메뉴 구성이 단순하나 주 메뉴의 양은 많다. 깔리는 반찬 수가 적은 반면 양은 푸짐하다는 뜻이다. 그 덕에 한강 너머에 있지만 버스 타면 금방 닿는 중앙대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봉산집이 문을 연 지는 50년 정도 됐다. 몇 가지 메뉴가 있지만 대부분은 차돌박이를 먹는다. 숯불에 직화로 차돌박이를 굽는다. 반찬은 양배추와 김치가 전부다. 양배추 찍어 먹을 고추장과 차돌박이 양념으로 파를 넣은 간장이 따른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차림인데도 손님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허름한 분위기와 격의 없는 주인아주머니의 서비스가 맛을 더하는 것이다.

    봉산집에서 차돌박이 말고 꼭 맛봐야 하는 음식이 또 있다. 메뉴에는 된장찌개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막장찌개다. 막장은 메주에 보리나 쌀을 넣어 숙성한 장이다. 경상도와 강원도, 그리고 북쪽 지방에서 이런 된장을 만들어 먹는다. 봉산집 막장은 북녘 지방의 장이다. 메주를 가루 내고 같은 양의 보리밥을 넣어 띄운 것이라 한다. 막장은 메주 뜬내와 전내가 없으며 보리가 들어가 약간의 단맛이 있다. 찌개를 끓이면 구수함이 깊고, 된장의 잡내가 없으니 깔끔하게 딱 떨어진다. 다소 느끼한 차돌박이구이를 먹은 뒤 이 찌개로 마무리하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이 지역도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재개발 탓에 서울의 오래된 식당들이 자리를 옮기거나 사라져간다. 봉산집도 삼각지를 떠나야 하는 운명에 설 것이다. 그렇게 해서 봉산집이 사라지고 나면, 그래서 한 30년 지나면 내 머릿속에는 어떤 기억이 남을까. 함께 음식을 먹었던 사람들뿐 아니라 그 동네에 실향민의 차돌박이집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지 않을까.

    서울은 사람의 흔적이 쌓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도시다. 가뜩이나 부족한 인간의 기억에서 삶의 흔적마저 말끔히 없애 결국은 치매 수준에까지 이르게 한다. 입맛 떨어지는 도시다.

    찾아가는 길 삼각지 뒷길 모서리의 노상 공용 주차장 근처에 있다. 02-793-5022/ 서울 용산구 용산동3가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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